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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01. 2017

우리 부부의 영어 불만증

영국인과 미국인의 해외여행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글로벌 시대’란 말은 끔찍하다. 지구의, 세계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글로벌은 온전히 자라지 않은 세대에게 영어라는 짐을 안겨줬다. 각 나라와 문화, 특히 언어와 관계없이 ‘글로벌’이란 이름으로 묶이는 또 다른 문화는 익숙한 모국어가 아닌 영국인의 모국어를 바탕으로 한다.


나라와 관계없이 모국어란 모든 개인에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는 언어,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말, 말을 가지고 노는 것도 모국어일 때 가능한 것. 모국어를 두고 세계의 국경을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써야 한다는 건 누굴 위한 일일까?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엄마를 따라 어느 학원에 방문했다. 그때까진 사교육 없이 나를 자유롭게 뒀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뭐라도 가르쳐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 엄마는 입소문이 난 학원에 날 데려간 것이다. 그곳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배웠다. 국어는 재미가 있었다. 수학은 재미는 없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영어였다. 영어 내용은 어렵지 않았는데, 영어 선생님이 너무 징그러웠다. 걸친 옷이 언제나 피부처럼 온몸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영어 선생님은 굉장히 뚱뚱한 체구의 30대 남자였다. 얼굴엔 늘 땀인지 기름인지 알 수 없는 광채가 잔뜩 흘렀다. 가뜩이나 신경 쓰이는 외형인데, 말투가 느글느글했다.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미성년자가 듣기엔 살짝 야한 이야기도 떠들었다. 나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연구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겐 통하지 않았다. 영어 수업이 끝나면 나를 포함해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한숨을 쉬었다. 집에 가는 길에서 늘 영어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털었다.


징그러운 영어 선생님의 그늘에 놓여있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갔다. 일단 속으로 유행하는 노래의 랩 가사를 읊조리거나, 주말의 일과를 미리 계획해서 시간대별로 적어두는 등 딴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어도 귀로 듣는 것을 차단하니 느글거리는 기분은 덜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공평하게 주고받는 것. 딴짓을 한 대신, 영어의 발음기호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읽기가 느리고 엉성하다.

학교에서 토킹 테스트를 할 때 조금 혼났고, 가끔 길에서 누군가 영어로 질문을 하면 크게 당황하지만 독해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취업을 위해 준비한 토익시험도 듣기와 독해만 잘 하면 얼추 점수를 받을 수 있어 요령 있게 영어를 피해 잘 지내왔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글로벌’을 지향하는 시대 방향에서 가끔 답답하고, 불만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토킹에 약하고 외국인과의 대화를 즐기지 않는 내게 시대는 ‘영어울렁증’이라는 특이한 병까지 진단했다.

나는 ‘영어울렁증’이라는 불쾌한 병명 대신 ‘영어 불만증’이라는 말로 고쳐 쓰곤 한다.




오랜만에 문제 발생은 지난해 여름휴가. 우리 부부는 오스트리아와 체코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여름을 막 마치고 초가을로 넘어가는 오스트리아는 낮에는 살짝 덥지만 오후부터는 매우 쾌청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멋진 계절이었다. 체코는 오스트리아보다 조금 추웠고, 마침 비가 내려서 서늘한 공기가 한결 강했다.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아주 알맞은 날씨였다.


오스트리아에서 내 짧은 영어로 주문해서 마신 커피.


나보다 영어를 잘 한다고 자부하는 남편이 있어 나는 걱정이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돈 관리는 내가 하고, 영어를 비롯한 소통은 남편이 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기 때문에 지갑만 잘 간수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간 여행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남편의 자신 있는 영어는 신경질적인 영어로 바뀌어 있었다. 항공사에 맡긴 짐을 찾는 표가 없기에 승무원에게 물어보자는 내 의견에 남편은 당당하게 문의를 하러 갔다. 내 바로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영어를 했다.


말은 못 하여도 듣기는 얼추 하는 나는 승무원의 설명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의 짐은 공항에서 안전하게 받을 수 있고, 항공권을 소지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엔 여전히 신경질이 나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남편은 자신이 들은 것을 내게 설명했다.


“걱정 말래. 공항에 가면 찾을 수 있대.”

“응, 그래. 들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났어?”

“누가?”

“자기 말이야. 승무원한테 왜 이렇게 신경질을 내면서 물어봐?”

“내가? 내가 언제? 나 평소처럼 말한 건데?”


남편은 정색하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통찰했다. 남편도 글로벌 시대에 반하는, 영어 불만증이구나!




이후 여행 중에도 현지의 외국인들은 남편의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영어 불만증을 보유한 남편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남편의 불만증이 폭발한 지점은 프라하 시내의 어떤 레스토랑에서였다.


남편은 영어로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닳았는데, 충전기를 주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말했다. 남편의 영어는 강남의 영어학원에서 정확한 문법을 강조해 가르친 문장 형태였다.


외국에서는 생각보다 문법에 매달리지 않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문법에 목을 맨다. 남편의 질문에 레스토랑 직원은 안 된다고 답을 했다. 그래서 휴대전화 충전을 포기하고, 주문한 메뉴를 먹던 우리는 옆 테이블 여자 손님이 직원에게 문의하고 휴대전화 충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남편은 격노했다. 나는 당연한 이치를 말해줬다.


“여보, 그렇게 문법에 딱 맞춰서 말하면 외국인들 못 알아들어. 외국영화 보면 다들 문법에 딱 맞는 문장만 말하지 않잖아. 간단한 단어로 쉽게 말하는 게 진짜 생활영어 아냐?”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하냐고? 내게 영어로 답을 하라는 즉흥 질문이 떨어졌다.


“음, 일렉트로닉 에너지?”

“뭐? 직원에게 대뜸 전기 에너지라고 말하라는 거야?”

“아니면 뭐, 잭(Jack)?”

충전기를 보여주면서 전기를 말하든 잭을 말하든 직원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휴대전화 충전에 실패한 문제의 식당. 음식은 훌륭했다.

내 생각엔 단어로 대화가 되는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문법을 쓸 이유가 없는데, 남편 입장에선 그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여행 마지막 날, 현금이 떨어진 상태 들어간 펍에서 남편이 다시 문법을 고루 써서 문의하는 걸 보니 말이다.

강남 영어학원에서 배운 스타일대로 남편은 문법을 꼭꼭 맞춰 ‘지금 현금이 없는데 카드로 계산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직원은 아무 대답 없이 서있었다. 역시 못 알아들었다. 답답한 나머지, 내가 문의했다.

“Card, okay?”

“Yes, okay.”

‘카드, 오케이’ 한 마디로 우리는 맛있는 코젤 맥주와 야채볶음을 먹었다. 문법이 아니라 쉽게 말하고, 쉽게 알아듣는 소통이 필요한 것인데 남편은 여전히 내 영어 구사 방식을 찜찜해했다.


한편으로는 어디에서나 모국어로 소통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영국인과 미국인은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자유롭고 자랑스러울까. 나와 남편은 한국에서 어떤 글로벌을 위해 영어를 배운 걸까.


여행을 마치고 호텔에서 나올 때 남편은 슬쩍 내게 카운터에서 체크아웃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까짓 거, 뭐가 어렵다고. 나는 카운터에 가서 당당히 말했다.

“Check out, okay?”

“Yes,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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