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Jun 14. 2019

결혼해서 잘 살아

정말 잘 살아?

“결혼해서 잘 살아.”

먼 해안선을 넘어 끝없이 동 떨어진 어느 곳에 있는 누군가의 소식처럼, 저 한 문장은 시시껄렁하게 귓가를 사뿐거린다. 그래, 결혼해서 잘 산다는데 무슨 질문이 더 필요할까?


저렇게 뭉뚱그려 전하는 소식의 주인공은 대화의 주체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별다른 소통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얼굴과 이름이 매칭 되지 않는 동창, 한두 번 함께 밥을 먹었던 동호회 사람, 한 때 회사 안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일했지만 퇴사 이후에는 언제 그렇게 친했냐는 듯 연락이 뜸해진 후배 등등. 다양한 군락에서 만났으나 소통이 이어지지 않는 그들의 안부는 저 한 줄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 두루뭉술한 말이 어울리지 않는 때가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를 다니며 꼬박꼬박 적금을 넣고 있을 때였다. 진짜 콧물은 안 묻어있지만, 눈물 콧물 다 묻혀가며 번 돈이라는 말을 그때 실감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대가, 자존심이 사무실 구석에 쌓인 이면지보다 초라해지는 대가, 데친 나물처럼 축 쳐져 매일 회사에 오간 대가였다. 조금씩 모여 가는 적금으로 나는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싶었고, 포기했던 대학원 준비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 L이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잘 통해 통화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 무렵 시무룩한 목소리로 연락이 자주 왔다.

“진짜, 내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 몰랐어. 돈 때문에 정말 우울해지고 잠도 안 와. 집에 말하면 나 정말 쫓겨난단 말이야. 당장 군대부터 가라고 할 걸.”

“그러게, 돈을 왜 그렇게 썼어. 계획을 짜서 돈을 썼어야지.”

“그게 생각지 못한 지출이 생겨서 그랬어. 너도 그런 때 있지 않아? 계획에 없던 불운한 상황들 말이야.”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거야 매일 겪고 있으니 L의 말에 아주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불운과 돌발 상황이 어디 예고하고 나온 적이 있나. 시원하게 답을 못하는 내게 L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 돈 좀 빌려주면 안 될까?”

“뭐?”

“나 오늘 의류매장에 면접 보고 왔는데 바로 붙었어. 다음 주부터 일하기로 했으니까 한 달만 쓰고 갚을게. 나 정말 군대 끌려가면 어떡해. 정말 한 달만이야. 내가 너랑 친구로 몇 년 지내면서 한 번이라도 거짓말하거나 약속 어긴 적 없는 것 알잖아.”  


결국 나는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돈 백만 원을 빌려줬다. 읽으면서 예상을 했겠지만, 이후 L은 약속한 한 달이 됐어도 돈을 갚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 세 달이 가까워올 무렵 기다리다 너무 답답해서 한 번 물어봤다.

“한 달 지나면 돈이 된다고 했잖아. 혹시 왜 못 갚는지 말해줄 수 있어?”

“아, 그게 말이야. 월급을 받긴 받았는데 꼭 사고 싶은 게 생겨서 샀어. 그게 좀 비쌌거든. 근데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샀어. 그거 사고 필요한 거 좀 사고 나니까 돈이 없더라. 미안, 다음 달에 줄게.”


돈은 천천히 갚는다 치더라도 L의 태도는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조르던 때와 많이 달랐다.  

“음, 그래. 근데 그 사고 싶었던 건 뭔데?”

“다스베이더 가면.”

“뭐라고?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다스베이더라고.”

“영화에 나오는 그 시커먼 캐릭터? 그 다스베이더 가면을 사느라 돈을 썼다고?”

“이게 불도 켜지고. 지금 아니면 살 수 없는 한정판이라 어쩔 수 없었어. 야, 내가 다스베이더 엄청 좋아하잖아. 나 캐릭터 좋아하는 거 너도 알지?”

“그거 얼만데?”

“30만 원 조금 넘어. 야, 근데 이거 사니까 정말 행복하다.”

롸?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가면 하나 사는데 30만 원이라니. 게다가 그것 때문에 빌린 돈을 안 갚고 있느냐고 화를 냈다. 서로 어색하게 통화한 뒤로 L은 내 전화를 안 받기 시작했고 메시지에 답조차 없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우여곡절 끝에 돈은 받았지만, 우정은 이미 증발하고 없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넘은 일인데, 지난해 L과 함께 알던 다른 친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SNS에서 내 이름을 보고 혹시나 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친구는 돈과 우정을 바꾼 L의 소식을 꺼냈다.

“L이랑은 연락하고?”

“나는 예전에 걔랑 좀 일이 있어서 연락 끊었어. 안 본 지 오래됐지.”

“아, 그랬구나. 몰랐어. 걔는 이제 결혼해서 잘 산대.”

“뭐? 결혼해서 잘 산다고?”

“응. 나도 얼핏 들은 건데, 결혼해서 잘 산다더라.”

“진짜 잘 살아?”

“음, 글쎄.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결혼하면 다들 잘 사는 거지.”


친구는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사연을 묻는 친구에게 전부 털어놓자니 L이 없는 자리에서 욕하는 모양새 같아 얼버무리고 말았다.


친구가 무심코 한 ‘결혼해서 잘 산다’는 말에 나는 왜 그토록 화가 났을까. 그게 진짜 잘 사는 건지, 그냥 예의상 해주는 말인 건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소한 그 한 마디의 안부가 기억의 쓰라린 부분을 쿡쿡 찔러댔다. 아마 친구도 딱히 전해줄 말은 없고,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L의 소식을 대강 전하느라 아무 말이나 꺼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전 L의 행동을 바로 어제 당한 것처럼 열이 났다. 전화를 끊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혼잣말로 뱉었다.

“솔직히 그런 애는 결혼해서 잘 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거리감 있는 이들의 안부를 위해 하는 그 말은 그저 흘려버리는데, L의 안부에 ‘결혼해서 잘 살아’가 붙어버리니 왠지 이 말이 면죄부처럼 다가왔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든, 결혼을 기점으로 잘 산다고 해버리면 지나간 일이 다 없어지고, 못된 사람이 착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마치 결혼 전 못된 사람이 결혼으로 신분을 세탁해 세상에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잘 산다니. 결혼해서 잘 산다는 말로 오래전 친구의 못된 행동을 얄팍하게나마 포장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왠지 못된 사람은 결혼해서도 못살았으면 좋겠다. 혹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한 다음, 깊은 반성을 위해 잠시나마 못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 전에 했던 모든 과오를 결혼 후의 ‘잘 살아’ 한 마디로 교환하는 것 같아서 나는 아주 밴댕이처럼 오그라든 속내를 꺼내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 번쯤 진심을 담아 ‘결혼해서 잘 살아’를 써볼 의향이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L을 만난다거나, SNS에서 연락이 닿아 나의 안부를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결혼해서 잘 살아!”

그리고 다스베이더 가면을 향해 개운한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모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