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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05. 2019

우리 집 모카

사실 네 이름을 장수로 짓고 싶었던 이유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싸움 한 번 없었던 우리 부부지만, 5년째 합의점을 찾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반려견이었다. 나와 남편 둘 다 개를 몹시 좋아해서 결혼하면 꼭 개 한 마리를 기르자고 수없이 약속했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약속 이행을 요구했는데, 5년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친정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다. 마당에 살던 아심이, 부모님 지인이 분양해준 흰둥이, 임시 거처로 지냈던 초롱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짐보 등등 많은 개들이 다녀갔는데 가장 마지막에 키운 개는 여름이었다. 


다른 개들은 성견으로 왔다면 여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갓난쟁이였다. 앞서 적은 개들은 주로 마당에서 키웠다면 집 안에서 갓난아기를 키워내듯 한 건 여름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모든 게 생소했고, 즐거웠다. 


하지만 여름이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 반쯤 지난 무렵이었다. 가슴 줄을 착용하고 나와 바깥구경을 나온 여름이는 좋다고 날뛰다가 그만 줄이 끊어졌다. 급히 붙잡는 내 손에서 뛰쳐나간 여름이는 앞으로 뛰어나갔고, 그 앞은 차도였다. 여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데는 1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를 따라 나도 차도에 뛰어들었다. 그 위험한 그 순간에 나는 살았고, 내가 여름이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강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이니 이미 바랜 기억 이건만, 한 번씩 생생하게 고통이 날을 세운다. 여름이가 꿈에 나오는 날도 부지기수. 한 번씩 예쁜 강아지를 보면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잘 키워도 나보다 먼저 죽을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지?’


건강히 살아봐야 20년 정도인 개의 삶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는 통에 남편에게 나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배신자였다. 


남편은 5년 내내 줄기차게 개를 키우자고 졸랐다. 정말 심각하게 졸랐다. 나의 트라우마를 비롯해 일상에 불편이 뒤따를 것을 강조해도 꿋꿋하게 졸랐다. 견종도 정해놓고 허구한 날 졸랐다. 함께 사는 부부로써 서로 싫어하는 행동을 삼가야겠지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못 하게 막아서는 것도 삼가야 한다. 남편이 그토록 바라는 강아지를 내가 몇 년째 못 키우게 막아서고 있으니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그랬던 차에 알고 지내던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은 날이 있었다. 평소 개 한 마리를 키우던 동생을 유기견 한 마디를 입양해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예전에 키우던 캐를 하늘나라로 보내줬던 동생인데 추가로 더 키우고 있다니, 15년 넘게 트라우마에 단단히 묶인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는 강아지가 너보다 먼저 죽는 거 안 무서워?”

“무섭긴 한데 강아지 너무 좋잖아.”

“같이 있으면 정말 좋지. 그런데 떠날 때 너무 힘들잖아.”

“나는 우리 강아지 13년 키우고 하늘나라 보냈는데 후회 없어. 함께 사는 동안 행복했고, 최선을 다해 키웠으니까.

행복했으니까 죽음으로 헤어져도 후회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유난히 이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심성을 혼자 비교했다. 


남편에게 이 얘길 했더니 대번에 공감한다. 

“강아지가 우리보다 먼저 죽더라도 열심히 키우면 강아지 입장에서는 천수를 누리다 가는 거야. 꼭 슬퍼할 일은 아니란 거야.”


동생의 뼈 때리는 말과 남편의 설득에 나는 용기를 냈다. 다음 날부터 나와 남편은 펫 샵에 방문해 보고 가까운 곳에 유기견을 맡은 병원에 방문해 보고 가정견 분양도 알아봤다. 여러 강아지와 상황을 둘러봤는데, 정작 우리 집에 온 아이를 결정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보는 순간, 우리 부부는 즉시 알아봤다. 바로 너라고!


갈색 털뭉탱이ㅎㅎ

그렇게 태어난 지 2개월 된 ‘모카’가 우리 집으로 왔다. 이름도 남편이 지었다. 모카는 순순하게 우리 집에 오더니 둘째 날부터 활발한 본성을 드러냈고, 굉장한 식탐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아직 훈련이 덜 돼 집 곳곳에 볼 일을 봐서 나는 첫날 하루 종일 청소를 했고, 난데없이 내 발을 깨물어서 ‘안 돼’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2개월 된 아이가 얼마나 알아듣겠나 싶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기’를 키우는 것 같아 나 역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집안에 생명체 하나가 늘었다고 달라지는 게 많다. 이제 내 꿈에 여름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될까. 트라우마를 벗는 대신 책임감이 수두룩해진 지금, 그저 모카가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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