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의 명절 연휴 주간이었다. 빨간색 숫자로 표기된 연휴 앞으로 주말이 붙고, 목금요일은 남편 회사에서 단체로 쉰다며 공지가 있었고, 다시 뒤로 주말이 붙어 장장 11일간의 휴일이었다. 연휴를 앞두고 지인들과 대화 중에는 더러 한숨이 흘러나오곤 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진다고는 하나 여성들이 온갖 집안 잡일을 맡아야 하고, 싫은 소리와 군더더기가 붙는 연휴가 반가울 리가 없다.
나 역시 한 때는 시어머니가 타당성 없이 시키는 주방일이 못마땅한 적 있고, 덮어놓고 사위들은 늘어져 쉬라며 딸들에게만 일을 시키는 엄마에게 화난 적 있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딸 가진 죄인’ 역할을 자처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존재가 딸이라 떠안은 업보로 보였다.
엄마는 딸 가진 죄인이 되느라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상을 차리고 내 등을 떠밀어 남편에게 음식을 바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형부들과 내 남편은 안방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자잘한 말을 주고받거나 핸드폰을 하며 유유자적 놀 때, 엄마와 언니들과 나는 전날 엄마가 만들어놓은 음식을 데우고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식사를 마치면 치우고 과일을 내고 설거지를 하는 것 역시 여자들의 몫이었고, 그 와중에 날뛰는 조카들도 돌봐야 하니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이 들어 만나는 명절이 얼마나 고까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죄인께서 만든 음식은 늘 맛이 좋았다. 평소에는 2인용 식탁 하나를 두고 혼자 식사하시는 엄마지만, 식구들이 오면 번듯한 교자상을 펼치고 상에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음식을 차려내셨다. 명절 전날부터 부쳐놓은 전 몇 가지와 튀김, 상의 중앙에 빠지지 않는 갈비 혹은 산적, 고기에 물릴 누군가를 위해 조리거나 구워낸 생선, 아삭하게 익은 김치와 또 누군가의 취향을 생각한 물김치를 함께 올리고 얼큰하게 끓어놓는 매운탕이나 전골요리, 새콤함을 잘 살려낸 회무침, 한 번씩 기름지게 무쳐 나오는 잡채, 제철에 나온 조개나 말린 생선을 다시금 양념에 푹 졸여낸 반찬과 갖은 나물들까지.
가끔 수정과나 식혜도 만들어놓으셨다. 버거울 정도로 많이 차려내셨다. 분명 자손들 푸짐하게 먹이고 싶어 허리가 아프도록 만든 음식이었다. 그 감사한 음식을 감사하게만 먹고픈 마음과 달리 죄인을 자처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늘 곱게 굴지 못했고, 잦은 짜증을 드러냈던 날들이 마음 한편에 죄책감으로 새겨진 게 사실이다.
친정에서는 떡 벌어진 상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엄마의 집에 모였다가 우리는 다 같이 채비를 하고 외가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살아계실 적에는 명절에 집으로 인사를 오는 지인들과 친척이 제법 많았다. 삼촌들의 아내, 즉 외숙모들이 하루 종일 만든 음식이 그 많은 사람들의 주안상과 다과상을 구성했다. 이제는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할머니 댁이지만, 그럼에도 할머니 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곳에 가면 익숙한 명절 음식들이 있다.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나박김치와 빨간 포기김치가 동시에 오르고, 새콤한 도라지 무침과 고사리가 빠진 명절은 없었다. 날치알과 맛살 버무린 것에 각종 야채와 구운 김을 싸 먹는 ‘마끼’는 큰외숙모의 단골 메뉴다. 한두 조각은 꼭 먹게 마련인 닭강정이 오르고, 사과와 단감 등 단단한 과일에 땅콩과 건포도를 넣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사라다’도 있다. 단감은 둘째 삼촌 댁 마당에서 키우는 감나무에서 딴 것을 사용한다.
새우튀김과 서너 종류의 전도 부치는데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동그랑땡이다. 다진 고기에 온갖 야채를 넣고 숟가락을 떠 동그랗게 부쳐내는 그것은 듬성듬성 들어간 빨간 고추가 핵심이다. 그 매운 고추의 간결한 맛이 고기의 느끼함을 딱 잡아주는 게 신기할 정도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꽃게무침과 해파리 무침 역시 빠지지 않는데, 상에 해산물의 종류가 많은 것은 어시장을 오래 하신 할머니의 영향력이 여전해서다. 맑은 뭇국에 빨간 양념으로 무친 소고기 고명이 오르고, 상 가운데에는 늘 돼지갈비가 오른다.
엄마는 명절 상차림에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놓고, 그것도 아니면 산적을 놓지만 할머니 댁에서는 무조건 돼지갈비다. 큼직한 돼지갈비를 전날 김치통에 한가득 버무려 놓았다가 식사 준비 첫 단계에서 커다란 전기팬에 올린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쓰던 팬이니 30년은 족히 사용했을 그 전기팬에서 달콤하고 간이 딱 맞는 돼지갈비가 푸근하게 익는다. 전기팬의 뚜껑 안쪽은 유리로 돼있어 갈비 익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릴 적엔 할머니 댁의 일을 꽤 거들었는데, 서른 무렵부터는 거드는 축에 끼지 못할 정도로 잔일만 했다. 기껏 해야 외숙모가 “돼지갈비 익었는지 한 번 봐줄래?” 정도의 지시만 내린 걸 생각하면 삼십 줄에 들어선 조카를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최소 1시간은 푹 익어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돼지갈비다. 센 불에 올렸다가 불기를 조금씩 낮춰가며 설설 익어가는 돼지갈비를 가끔 둘러보며 외숙모들은 분주하게 상을 차리신다. 사촌들까지 모이면 삼십 명이 넘는 인원들을 먹이기 위해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새로 담고, 국을 데우고, 신선재료를 쓰는 음식은 새로 만든다. 그동안 돼지갈비는 열심히 익어간다.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이윽고 상차림이 완성되면 마지막 단계는 돼지갈비를 수북하게 담은 접시가 교자상 가운데마다 탁, 하니 놓인다.
뽀얀 밥 한 술에 달짝지근한 돼지갈비 한 입을 베어 문다. 온갖 과일과 야채를 갈아 넣고 하루 종일 재워 뒀던 돼지갈비는 뜨거운 열기와 습기 사이에서 매력 발산을 위해 온갖 애를 썼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부드럽고 고소할 수 없다. 하지만 돼지갈비는 익어가는 도중에 배신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제 달근한 과일이며 야채며 다 넣고 날 재우더니, 이렇게 익혀먹으려던 수작이군.’
간밤에 양념과 야채와 과일에 겨워 좋은 꿈이라도 꿨을 돼지갈비는 밥상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된다. 식사 중에 접시를 뚝딱 비워내면 지켜보던 외숙모들이 한 번 더 수북하게 갖다 주는 음식이다. 마음껏 먹자면 밥 두 공기는 그냥 비워버릴 맛이지만 배가 불러 차마 그럴 수 없다. 내면에 숨겨둔 식탐을 밖으로 유인하는 돼지갈비의 맛이다.
그렇게 명절에 친정나들이를 하면 먹던 음식들이 있고, 갓난쟁이 때부터 보고 먹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나 역시 명절 음식을 마련하려면 익숙한 메뉴들이 떠오른다. 이번 연휴처럼 긴 시간 남편과 지내야 할 때는 식당도 문을 닫는 날을 고려해 여러 가지 음식과 식재료를 미리 장만하는 편인데, 식단을 짜며 첫 줄에 쓴 것도 돼지갈비였다.
둘이 사는 집이라도 넉넉히 만들고 싶어 돼지갈비 1kg을 샀다. 두어 시간 찬물에 담가 피를 빼는데, 이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 앞에 이 살덩이들이 살아 뛰놀던 돼지였다는 사실이 확 끼쳐온다. 핏물을 빼고 찬물에 살짝 헹군다. 간장과 설탕, 양파와 마늘 간 것을 섞고 과일이 있다면 함께 갈아 넣는다. 한 시간쯤 양념에 낮잠 재우고 갈비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뚜껑을 열고 팔팔 끓인다. 그리고 뚜껑을 덮고 불을 줄여 양념이 졸아들도록 끓이는데 끓이는 시간이 대략 한 시간이다. 그러니 돼지갈비 한 번 하는데 한나절이 훌쩍 지나고 만다.
남편과 돼지갈비에 몇 가지 밑반찬, 곰국 정도를 놓고 저녁을 먹었다. 기름기가 한껏 도는 돼지갈비를 먹으며 배부르게 보내는 명절 특유의 밥상을 차렸다. 한나절을 써서 음식 하나 만들었다는 게 퍽 우스웠다. 돼지갈비 하나 상에 올리는 게 이토록 고된걸 보니, 내 요리 실력이 늘지 않은 건지 우리네 명절 음식이 기운 빼는 능력치가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안 그래도 주방에서 종종 거릴 여인들의 힘을 더욱 빼놓을 메뉴 같지만, 익숙한 음식을 만들고자 내가 자청한 음식이니 즐겁게 감수한다. 게다가 살찌는 데 상당히 일조할 만한 메뉴다. 그럼에도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이라 이름 붙은 나날에 기름진 돼지갈비를 놓칠 순 없다. 어릴 적부터 몸에 베여 온 음식과 기억을 복습하는 내 가정의 명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