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Oct 15. 2019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이런 게 먹고사는 이야기구나

먹고산다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가끔 헷갈린다. 그 당연한 일을 하루 세 번 적게는 두 번씩 지키면서 경험을 투덕투덕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쌓이는 경험엔 여러 이야기가 첨가된다.


나는 올초부터 음식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있다. 먹고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 순간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로 담는다. 그래서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벼르던 이 책을 올해는 꼭 읽고 싶었다.

황석영의 밥도둑은 음식을 먹고 만들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경험, 관계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겨내기 어려웠을 그 치열한 시대를 관통한 덕에 찐득하고 지독한 역사가 겹쳐있다. 때문에 읽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가 웃었다가, 시원했다가 냉랭하기를 반복했다.      


실내에서는 다른 재소자들 눈이 있으니까 ‘만기방’이라고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아궁이 불에다 부침개를 부쳤다. 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 역시 김치부침개는 잘 익으면 가장자리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 거길 떼어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방울이 고였다가 톡 떨어진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44p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어찌 된 일인지 가을에서 훌쩍 눈 내리는 겨울로 넘어가 연탄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감옥살이하는 죄인들도 엄마 생각에 우는구나, 그 뜨거운 눈물이 싸락눈 날리는 추운 겨울의 냉기를 녹일 것 같았다.      


나는 차와 파이를 먹으면서 어느 밤의 붉은 촛불이며 그녀를 생각했다. 객석은 물론 무대 위의 조명도 하나씩 꺼져가고 그녀는 이미 늙어 있을 것이다. 검은 비단 실타래처럼 베개 너머로 흐트러지던 머리도 희끗해졌을까. 67p     


이처럼 무언가를 먹을 때 떠올리는 사람이 있어서 하루 세 번 흔한 음식은 온기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제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먹어볼 맛, 어떤 어려운 경로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끝내 모르고 살게 될 맛에 대한 호기심도 상당히 자극됐다. 처음 들어보는 물고기 이름이나 특이한 조리법, 식물에 대해 마트의 채소코너가 아닌 이상 겨를 없는 내가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새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 밭두렁이 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 싹이 고개를 비죽 내민다. 바로 이때에 보리싹을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 먼저 쌀뜨물을 받아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애’를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 보리싹은 된장으로 살살 버무려 두었다가 넣고 끓인다. 한 술 떠 넣으면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 있을 보리싹과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 내음이 입안 가득 맴도는 것 같다. 217p     


몇 개월 전, 전주로 취재를 갔다. 이동 중에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유명하다는 전주비빔밥에 과거의 나는 호되게 실망한 적 있었다. 다행히 함께 취재를 간 담당자와 현지에서 맛있는 걸 먹자고 뜻이 맞아 천천히 이동하며 눈 크게 뜨고 식당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현지인 맛집’ 뉘앙스가 풀풀 풍기는 어느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그 집은 오로지 국수 메뉴 한 가지라 앉았더니 냉육수, 그냥 육수 고르는 일만 필요했다. 즉시 삶은 국수와 주전자에 담긴 육수, 묵은지 씻은 것이 나왔다. 이것들을 섞어 먹는데 아, 어쩌면 이건 수도권에서 돈 주고 먹으라면 어르신들이나 먹을 것이라며 안 먹을 그런 맹숭맹숭한 국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먹을수록 담백하고 멸치육수는 또 얼마나 정직하고 실하게 우렸는지 멸치 백 마리쯤 쥐어짜 내 그릇에 쏟은 것 같았다. 아마 내게 먼 시골이 있다면 시골의 할머니가 멸치육수를 넉넉히 우리고 뜨거운 물에 국수를 뽑아 묵은지를 곱게 씻어 이렇게 만들어주셨으려나, 싶었다.

그런 음식. 어디 가도 먹기 힘들고 기회를 훌훌 넘기다 보면 평생 경험하지 못하게 될 그런 음식들이 있다. 그런 음식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발견한 대작가의 연륜이었다.      


책의 가장 마지막 글은 또 슬퍼서, 눈물을 쫑쫑 흘렸다. 무슨 책 한 권이 이토록 사람을 들었다 놨다, 웃겼다 울렸다 이러냐 하면서 덮었다. 그리고 이런 게 먹고사는 이야기구나, 하고 푸근한 기분과 함께 이렇게 읽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그 맛들을 상상 하며 내 속은 푹푹 익어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먹자는 말을 잘 못한다. 밥 먹자는 말이 왠지 무안해서 커피나 마실까요, 이런 말이나 겨우 꺼낸다. 그 소중한 밥을 이제라도 나는 자꾸 같이 먹자고 사람들에게 치대고 싶어 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