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먹고사는 이야기구나
실내에서는 다른 재소자들 눈이 있으니까 ‘만기방’이라고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아궁이 불에다 부침개를 부쳤다. 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 역시 김치부침개는 잘 익으면 가장자리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 거길 떼어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방울이 고였다가 톡 떨어진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 생각 나서요.” 44p
나는 차와 파이를 먹으면서 어느 밤의 붉은 촛불이며 그녀를 생각했다. 객석은 물론 무대 위의 조명도 하나씩 꺼져가고 그녀는 이미 늙어 있을 것이다. 검은 비단 실타래처럼 베개 너머로 흐트러지던 머리도 희끗해졌을까. 67p
새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 밭두렁이 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 싹이 고개를 비죽 내민다. 바로 이때에 보리싹을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 먼저 쌀뜨물을 받아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애’를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 보리싹은 된장으로 살살 버무려 두었다가 넣고 끓인다. 한 술 떠 넣으면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 있을 보리싹과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 내음이 입안 가득 맴도는 것 같다. 21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