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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an 28. 2020

손_(2)

마사지사의 손과 관절이 닳아가는 경험

무역회사에 다닐 때 연말 워크숍으로 태국에 갔다. 일정 중 마사지가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어찌나 마사지를 기다리는지, 점심식사를 하는 내내 마사지에 대한 기대가 폭주했다.

“드디어 마사지받으러 가는구나!”

“나 완전 세게 해달라고 해야지!”

“나 요즘 몸 뻣뻣한데 엄청 아픈 거 아냐?”

마사지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아무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마사지면 어깨 주물러주기 같은 건가, 하고 상상할뿐.


이윽고 마사지샵에 도착했다. 곳곳에 향을 피웠는지 은은한 향이 넘실거렸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나를 포함한 8명의 직원이 찜질방 유니폼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커다란 룸에 다 같이 들어갔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았고, 직원 1명당 마사지사 한 명씩 배정됐다.


첫 단계는 족욕이었다. 마사지사들은 커다란 대야에 향기 나는 무언가와 꽃잎을 떨군 물을 담아와 우리의 발을 담그게 했다. 그러더니 각자 배정된 마사지사들이 발을 씻겨주는 게 아닌가? 나는 화들짝 놀라 한국말로 떠들었다.

“왜 남의 발을 씻기세요?”


마사지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웃으며 계속 내 발을 씻기려 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또 한국말로 호소했다.

“내가 닦을게요. 내 발은 내가! 마이셀프! 마이셀프!”

주변에서 편안하게 발을 씻던 직원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여하튼 나는 스스로 발을 닦았다. 그리고 이내 발을 왜 씻겼는지 알게 됐다. 발마사지가 시작된 거였다. 마사지사가 작은 나무 방망이 같은 것을 쥐고 내 발 구석구석을 꾹꾹 눌렀다. 손잡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발이라고 가당했을까. 또 기겁을 하고 말았다.

“마사지면 어깨나 주무르지 왜 발까지 하고 그래요. 노노. 난 싫어요. 안 해도 돼요.”


다들 박장대소하는 가운데 내 몸 하나 지키겠다고 이러는 내가 궁상맞았다. 왜 이리 남의 손이 몸에 닿는 게 소름 끼치는지. 결국 다른 직원들 발마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하릴없이 마사지사와 아이컨택이나 하고 앉아있었다.


발마사지가 끝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전신 마사지가 시작됐다. 잠자코 내 뜻을 따라주던 마사지사가 이것만큼은 거부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엎드리게 하고 어깨와 등허리를 사정없이 눌러댔다. 아픈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등뼈를 타고 솟구치는 소름을 주체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친구랑 손잡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몸 곳곳을 누르고 두드리고 꺾어대는 순간은 깨지 않는 악몽이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억울해서였다.


은근히 숨겨왔던 내 결벽을 모르는 이국의 마사지사는 그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직업의식에 불타 어깨와 등, 팔뚝, 골반과 다리, 발목 곳곳에 손을 댔다.

‘이보세요. 그쪽만큼 제 몸에 손을 많이 댄 사람은 엄마 이후 처음이에요.’


이윽고 고통의 시간이 끝났고 마사지사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고생한 답례를 빨리 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지갑에서 바트화를 꺼내 팁을 지불했다. 내 발을 내가 씻고, 억지로 마사지를 받았다 한들 마사지사의 손과 관절이 닳아가는 데 일조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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