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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11. 2020

K의 메시지

언젠가의 내가 환하게 살았다는 증명

핸드폰도 호출기도 없던 시절, 우리에게는 사서함이 있었다. 특정한 번호를 누르고 누구나 개설할 수 있는 사서함. 사서함은 웹페이지 url처럼 원하는 번호로 개설할 수 있었는데, 이게 얼마나 센스 있는 번호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했다. 또 여기에는 인사말을 등록할 수 있었다. 시크하게 아무 인사말도 안 넣은 사람은 어쩐지 바쁘고 냉정하게 느껴졌다. 센스 있고 멋지게 인사말을 남기면 하이틴 스타 느낌이 났다. 


내 사서함의 인사말은 떠올리자면 간지러워 죽을 것 같지만, 엄청난 귀여운 목소리를 쥐어짜가며 녹음한 인사말이었다. 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차라리 말을 말지. 지나고 나면 이렇게 승모근이 들썩이도록 부끄러운 인사말이었는데 말이다. 


연예인들도 공식 사서함을 운영했다. 아마 소속사에서 지시한 내용을 녹음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인사말이 올라오면 듣고 싶은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공중전화로 달렸다. 어떤 가수는 가끔 노래나 랩을 녹음해서 인사말에 올렸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인사말을 들으면 발바닥에서부터 간지러움이 솟구쳤다. 


내 사서함에는 주로 친한 친구로부터 우정을 고백받는 찡한 내용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사서함의 메시지 저장 기한은 한 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기보관을 하고, 한 달이 넘기 전에 다시 연장을 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에 소중한 메시지는 잘 챙겨야 했다. 나는 혹시나 잊을까 봐 그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서함이라는 것은 내 평생의 소유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모두 사서함에서 호출기로 이사를 갔다. ‘삐삐’라고 불리던 호출기였다. 교복 주머니에 삐삐 줄의 집게를 딱 꽂아두고, 새침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나의 소유욕을 불타게 했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특히 ‘계집애한테 돈을 뭐 하러 쓰냐’는 아빠 때문에 호출기를 조르는 건 벽에 외치는 것과 같았다. 나중에 아빠와 따로 살던 시절에 엄마는 대략적인 조름에 응해줬지만, 이 시기에 조르기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아빠는 그때 조금 비싼 가격의 호출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나에게 기회가 생겼다. 아빠가 거래처에서 새로운 호출기를 선물 받은 것이다. 먹히지도 않을 호출기 타령에 눈물바다가 된 딸에게 아빠는 본인이 쓰던 중고 호출기를 주고, 새 호출기를 본인이 쓰기로 했다. 시커멓고 투박하게 생긴 호출기였지만 기뻐서 강종 강종 뛰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과 호출을 하고 싶었는지 셀프 명함을 만들었다. 연습장을 네모지게 조각조각 잘라 내 이름과 호출기 번호를 적어 두 번씩 접어 가방에 넣고 다녔다. 친구를 만나면 하나 주고, 오래간만에 만난 다른 반 친구에게도 주고, 앞집 언니에게도 하나 주고, 담임 선생님께도 드렸다. 행여나 내게 말을 거는 남학생이 생기면 망설임 끝에 하나 주려고 했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신인가수의 팬이 됐다. 발라드를 부르는 신인가수 K는 눈에 띄게 잘 생기지 않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가끔 하이틴 잡지에도 등장했는데,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인지 팬인 내가 봐도 별로 갖고 싶지 않은 화보였다. 


하지만 K의 매력은 외모가 아닌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엷게 설탕을 바른 듯했다. 가끔 라디오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시간을 메모했다가 챙겨 들었다. K는 노래를 부를 때 마지막 글자에 떨림이 흘렀다. 그의 라이브를 들으면 아, 이 사람 지금 떨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자신의 장점과 멋짐을 흐드러지게 보여주는 아이돌 가수보다 바닥에 설탕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는데도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는 K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K의 스케줄을 꿰차고, 음반을 사서 듣는 동안 친한 친구가 희소식을 하나 가져왔다. 신나는 청천벽력이었다. 친구의 언니가 K와 같은 대학교 동기라는 사실이었다. 동기긴 하지만 친하지는 않았고, 가끔 인사나 주고받는 사이라고 했다. 친구는 나를 떠올리고는 언니를 졸라 K의 호출기 번호를 얻어왔다. 나는 그날 거금을 털어 친구에게 치킨버거 세트를 사줬다. 

K의 호출기 번호를 얻은 그날 저녁부터, 나는 다시 떠올리면 간질거려 죽을 만한 일을 시작했다. K의 호출기에 매일 음성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10대의 팬심은 왜 멀리서 지켜보는 게 불가능한 걸까. 조금이라도 아는 척, 마주하고 싶은 욕망이 터질 것 같던 시절. 나는 그 부끄러운 짓을 매일 하고 말았다. 할 말이 없으니 매일 생각을 쥐어 짜내야 했다. 원체 공부는 관심이 없던 터라 수업시간에 매일 편지 쓰듯이 음성메시지로 할 이야기를 준비했다. 정해진 1분 사이에 매력발산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공들여 썼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보리차를 몇 잔 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배경음으로 K의 테이프를 틀었다. 그리고 집전화로 음성 메시지 녹음 개시. 마치 하루에 1분씩 디제이가 되는 심정으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게 두 달이 넘도록 매일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그때의 나는 부끄럽다 못해 징그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번호로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집 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고, 징그러운 디제이는 그날 감정이 용솟음쳐 새벽까지 기쁨의 일기를 써재꼈다. 그 메시지는 K의 음성 메시지였다. 생일 축하한다고. 언젠가 음성 메시지 중 내 생일이 언제라고 말한 모양인데, 매일 징그럽게 메시지를 남기는 내가 가여웠거나 어쩌면 감동을 해서인지 생일을 기억했다가 축하 메시지를 남겨준 것이다. 


다음날 나는 친구들을 공중전화로 끌고 가 모두 그 메시지를 들려주고,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매점에 가서 떡꼬치도 돌렸다. 그러고는 평생 이 메시지를 간직하겠다고 자랑을 했다. 내가 그토록 간직하고 싶어 했던 사서함을 이미 팽개친 것은 잊은 채, 이건 죽을 때까지 보관하는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매일 한 번씩 들으면서 기쁨에 목을 축였다. 그땐 그랬다. 평생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호출기의 인기가 몇 년이면 사라질 것도, 핸드폰을 누구나 하나씩 장만하게 될 것도 까마득히 모를 때였다. 내가 ‘평생’이라는 표식을 남발하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사서함이라는 서비스가 폐지되고, 호출기가 더 이상 편리하지 않게 됐을 때, 나는 평생을 약속한 메시지들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말았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흔적을 남기고, 보관 장비를 튼튼하게 한다. 다시 ‘평생’을 장담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 너무나 소중해서 평생 갖고 있겠다던 약속이 나를 부끄럽게 한들, 다시금 약속을 한다. 평생 간직해야지, 평생 갖고 있어야지, 이건 인생 사진이야, 이건 절대 못 잊을 거야, 라며. 그것은 희비가 수시로 바뀌는 내 삶이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싶은 게 많았다는 희극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사서함과 호출기 속 K의 메시지는 이제 영영 들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친구의 우정을 얻은 바 있고, K의 설탕 묻은 목소리로 생일 축하 메시지도 받았다. 언젠가의 나는 그렇게 환하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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