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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an 28. 2021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온라인 환경독서모임 참여 도서

환경운동은 강력하게 부흥했거나 쇄락한 적 없이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디에선가 캠페인이 벌어지고, 우리 일상에서는 환경을 조금이나마 덜 더럽히기 위한 행동이 이미 습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씩 환경의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는 글을 보며 느슨해진 경계심을 높이기도 한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온라인 환경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저자 호프 자런의 전작인 <랩걸>을 감명 깊게 읽었기에 이번 책에도 기대가 많았다.      


호프 자런은 지구과학자로서 풍요로운 삶과 대비되는 낙후된 지구를 이야기한다. 그는 현실을 잘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빗대어 설명한다. 1969년생인 호프 자런은 약 50년 사이에 있었던 사회 변화와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유연하게 연결 짓는다. 그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문득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다른 길로 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과학자 버전 같다.      

과학자답게 납득할 만한 수치를 내세워 명확한 비교를 하는 것도 인상 깊다. 연어 1킬로그램을 얻기 위해 연어 먹이 3킬로그램을 사용하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다른 곡물 10억 톤 역시 동물의 먹이로 소비된다. 1킬로그램의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해 20킬로그램의 사탕수수가 사용되는 아이러니는 여전히 굶주리는 8억 명의 인구에게 설득력이 없다.      


이런 부분을 읽다 보면 전혀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라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또 동의하는 점이 있는가 하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과학자로서 저자가 보기에 인간들의 소비방식이나 재화의 생산방식에 잘못된 부분이 많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새 좋지 않은 소비와 낭비가 이루어진다는 의견에는 매우 동의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을 살피도록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금연을 시키거나 몸에 좋은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수십억 달러 규모의 관련 산업들이 24시간 내내 작동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 절약이나 금연이나 건강한 식생활에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100% 뜻대로 제어하기란 매우 어렵다. 덜 소비하고 덜 더럽히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 쓰면 안 돼!”, “이것 쓰지 말고 저게 좋으니까 저것만 써!”와 같은 식으로는 설득이 안 된다. 거부감만 들뿐이다. 그 한계는 호프 자런도 은근하게 동의한다. 그녀가 남편과 거대 패스트푸드 업체에 투자한 것처럼 말이다.      


또 육식이나 설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당장 끊거나 많이 소비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에 소비는 경제가 굴러가는 핵심이고, 그것은 단순히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니라 개인의 경제활동과도 모두 연관이 돼 있다. 또 당장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고기 먹지 마!”, “설탕 줄여!”와 같은 말을 해봐야 듣는 사람은 공감이 아닌 피로를 느낄 게 뻔하다. 그건 좋은 환경운동의 방향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향은


1) 소비자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조금이나마 올바른 방식으로 길러낸 식품을 선택하고, 양질의 대체육, 포장재가 과하지 않은 상품을 선택해 소비자가 직접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2) 우리는 재화를 현명하게 선택하고 싶지만, 소비에 제약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의 빈곤층에서는 아이들에게 제공할 음식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머핀, 감자칩, 콜라 등을 먹이고 아이들은 영양 불균형과 비만을 경험한다. 다른 책에서 메모해둔 부분을 인용하자면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이런 부분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음식을 더 잘 선택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지만 현재 우리의 식생활은 개개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막대한 외부적 힘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음식 선택은 대개 바쁜 일상 속에 어떤 제약이 있고 무엇이 가능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현명한 선택을 통한 대안을 만들어보는 거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식사 준비가 여의치 않은 인구,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먹는 학교 급식 등에 사용되는 식자재를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유기농을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 생산되고, 어떤 재화를 사용해 생산됐는지 알아가고 공감할 수 있는 재료로 엄선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용이 높아진다 해도 내 가정, 내 이웃에 세금이 더 들어가는 데 반대할 국민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을 것이다(라고 기대하고 싶다).     


나는 그저 과학을 하는 여성이지만, 대중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려면 대중에게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이 좋은 결정을 내리게 해 주지는 않으며 적어도 가끔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호프 자런이 말하듯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행동을 하되, 조금 큰 영역에서도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가정에서 절약하고 좋은 방법으로 소비하는 일상의 환경운동과 더불어 다수가 모여야 힘을 낼 수 있는 캠페인을 시도하거나 참여하는 방식, 혹은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좋다. 그렇게 확산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러한 기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에 정인이 사건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사건에 분노하고 진정서를 썼다. 손글씨로 진정서를 쓰고 봉투를 붙이고 주소를 제대로 확인해서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 게 귀찮다면 귀찮을 수도 있는데 정말 많이 참여했다.(글 내용과 관계없이 우리 이 사건 계속 지켜봅시다!)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면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진심으로 바라고 행동하는 시민이 적지 않을 거라 기대가 생긴다. 그렇다면 호프 자런이 말하듯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구에 위협적이지 않도록 일상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누가 강요하고 시켜서 하는 것보다 공감대가 형성돼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환경운동. 학교에서 강제로 쓰레기 줍기를 시켜서 쓰레기를 주울 때보다, 내 주변이 깨끗하길 바라서 쓰레기를 주울 때의 마음이 더 상쾌한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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