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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17. 2017

스스로 하기 싫은데요?

직접 만들기 싫은 사람에게 DIY란 어떤 것일까.

 

Do in yourself, DIY다. 마음 한 켠이 아닌 목구멍에 찰랑찰랑 차오르도록 할 말이 많은 DIY지만 쉽게 말을 꺼내기 애매한 영역이다. 뭔가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 써본들 별로 공감을 못 살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대세’라는 것을 따르고 그것을 즐긴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내 말에 ‘그게 뭐 어때서’라고 맞받아치면 할 말이 없어질 것을 알기에 딱히 말을 꺼낼 곳이 없이 속만 긁어내고 있다.


일단 깊은 속내를 말하자면 나는 정말이지 DIY가 싫다. 아, 싫다고 외치고 나니 다소 시원하다. 나쁘지 않아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싫은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싫진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 시간이나 공업 시간을 좋아했고, 무언가 창작물을 만들어 제출해야 할 땐 항상 공작을 택할 정도였다.

대학교도 이공계를 나왔고, 설계나 샘플 제작은 남학생이나 선배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실력으로 뚝딱 잘 만들어내곤 했다. 샘플에 락커칠도 기가 막히게 했다. 대학 시절엔 소소하게나마 DIY 가구 재료를 구매해 간단한 선반장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속내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 달라.


그럼에도 이토록 DIY를 못나게 싫어하는 이유는 갈수록 DIY의 강압이 있어서다. 그 시작은 아마 이케아, 그 전 단계를 보자면 삶이 각박해지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늘어서다.

1인 가구가 2인 가구 수를 넘어섰고, 실속을 챙기는 신혼부부의 셀프 인테리어 붐이 일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DIY가 흔치 않게 깃들어 있다. 집 좀 괜찮게 꾸몄다 싶은 사례들엔 어김없이 DIY가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집을 꾸미고 소품을 만드는 건 매우 근사한 일이다. 목수에 빙의돼서 대패질과 사포질을 하고, 햇살 아래 톱밥이 흩날리는 광경. 알록달록한 공방에서 나긋한 재즈를 들으며 만드는 나만의 물건. 근사하고 따뜻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을 원치 않는, 혹은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분명 있다. 이 원치 않는 사람들이 가구를 사러 가면 DIY라는 불편함에 부딪히는 것이다. 완제품을 사고 싶은데 시장엔 오로지 DIY뿐이다. 그들의 완제품을 원하는 질문에는 시원한 해답이 없다. 이것뿐이 안 나온다고 답하면 끝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원치 않는 제품을 사거나, 억지로 DIY를 하는 상황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동안 완제품과 DIY의 비율이 8:2였다면 요즘은 2:8로 역전되고 있으니 선택의 자유란 내 것이 아닌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 DIY를 좋아했지만, 이런저런 사고가 몇 번 있었고 지금은 건강치 못한 손목을 갖고 있다. 즐겨하던 퀼트와 관절 인형 만들기를 그만둔 건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DIY 상품은 나 같은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직접 만들어라!’, ‘직접 만드는 재미’를 강요할 따름이다. 손목이 아픈 나는 이제 직접 만드는 게 절대 재밌지 않다. 늘 손목이 아프고 피곤했으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버린다.


게다가 내 남편은 안타깝게도 확실하게 실력이 부족한 타입이었다. DIY 재능이란 눈곱만치도 없는 그는 간단한 조립도 엉뚱하게 만들어 버리거나, 간단한 도면도 볼 줄 모르고, 한 가지를 맡기면 밤새 끙끙거리는 타입. 그에게 DIY를 시키는 건 내 입장에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부부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은 DIY를 즐길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재능이 있을 리 만무하며, 모든 사람이 DIY에 시간을 들이라면 그것은 폭력이다.


또한 업체들의 얌체 근성도 DIY가 싫어진 이유에 한몫을 한다. DIY를 하지 않는 내가 즐겨 찾던 가구 브랜드가 있는데, 이 브랜드도 근래에는 다수의 제품을 DIY로 출시했다. 언젠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 그 브랜드의 매장에 찾아 물건을 고르고 배송과 가격을 물었더니 DIY 제품이라고 했다. DIY가 아닌 것을 알려달라고 하자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원은 핀잔을 주듯 내게 “고객님은 DIY의 재미를 모르시는구나!”라고 했다. “이것은 DIY의 재미가 아닌 폭력인데요.”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게다가 DIY로 출시한 제품들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예전과 동일하거나 소폭 올랐으니, 이것이야말로 적확한 폭력이 아닐까?




언젠가 우리나라의 DIY 열풍이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일이라고 신문기사를 통해 여러 번 거론된 적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가구 기업들은 이케아만큼 합리적인 가격과 디자인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 질문엔 절대 ‘예’라고 답할 수 없다. 그저 국내 기업들은 기존 제품의 디자인을 고수하고, 기존 제품의 제작 단계 일부를 뺀 상태에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DIY는 재밌고 좋은 거야’라며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떠넘겼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한 DIY다.


얼마 전, 남편과 가구를 구경하러 갔는데 또다시 DIY의 폭력을 만났다. 난 또 언짢아졌고, 너무도 당연하게 DIY라며,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다 DIY에요.”라고 말하는 직원에게 쌀쌀맞게 “네.” 한마디만 대답하고 말았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이 다 DIY라면 정말 잘못된 게 아닌가? 시장의 다양성은 포기하고, 기업이 편한 대로 제작과정을 빼버린 채 소비자에게 의무를 던져버리는 DIY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글이글 화가 났는데도 남편은 “넌 DIY에 대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그것을 그 직원에게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나를 나무랐다. 그렇지만 DIY를 강요하는 기업과 그 기업의 직원,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별개로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DIY를 강요하는 가구 기업들이야말로 반성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남편, 그대도 DIY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거야?


어쩌면 저 깊은 지하에서 DIY의 맨틀이 거대한 자석처럼 사람들을 조작할지도 모른다. “DIY는 재밌어, 재밌는 거야, 이것밖에 없으니 억지로라도 만들라고!”라며. 그 뜨거움에 반발하는, DIY가 재밌지 않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DIY의 자기장을 밀어내고 이성의 차가움을 퍼뜨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DIY에 반발하는 차가운 우리는 눈빛만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우리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 위한 그 날을 소통할지도 모른다. 우리 중의 리더가 “시작하자!”라고 선언하면, 글쎄 어떤 말로 반발해야 할까. DIY 미워? DIY 안녕? DIY 그만? 일단 효과적인 캐치 프레이즈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DIY를 소개하며 ‘재미’를 강요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우리 지쳐가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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