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없이 돈을 쓰고 싶었다.
‘쓰다’라는 단어와 같이 동음이의어가 많다. 입다, 당기다, 풀다 등등. 나는 동음이의어가 참 좋다. 상황에 따라 골라 쓰는 말, 틀리게 썼더라도 상황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말, 적당한 거짓말도 가능케 하는 말. 그게 동음이의어 아닐까.
다소 의뭉스러운 이유로 나는 동음이의어를 좋아한다. 수많은 동음이의어 중 ‘쓰다’라는 단어를 머리맡에 동동 떠올리며, 나의 ‘쓴’ 기억을 하나를 족집게로 골라내 봤다.
돈을 원 없이 ‘쓰다’
“돈 한 번 원 없이 써보고 싶다!”
문장으로 옮겨놓으니 이 말이 얼마나 빈해 보였을지 새삼 실감이 난다. 그러니까 저 말을 빈곤하게 쏟아낸 시기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성인이 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매우 큰 집에 살았고, 부모님은 각자의 사업을 하셨고, 언니들의 교육비에 적지 않은 투자가 있었다는 것을 성인이 돼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어릴 적 나는 자신이 굉장히 가난한 집의 아이이며,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워낙 절약을 목숨처럼 여기는 부모님 영향이었으리라. 좀 더 예쁘게 입혀주면 어때서, 좀 더 많이 먹으면 또 어때서, 어린아이가 나가서 낭비라고 해봤자 떡볶이에 튀김이나 얹어먹는 수준 아니었겠는가.
그런데도 참 모질게 박했다. 집에서 먹는 식사는 여느 가정 못지않게 풍족했는데, 그 밖의 것은 몹시 박했다. 아마 부모님은 내가 어디 가서 헛돈이나 쓰고 모자란 짓을 할까봐 걱정하셔서 그랬겠지만, 어린 내게는 생채기였다. 그래서 늘 생각했다. 빨리 돈을 벌어야지, 내가 벌어서 눈치 안 보고 돈 마음껏 써봐야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재수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박한 부모님은 모든 지원을 중단하셨다. 의무교육을 마쳤으니 앞가림은 스스로 하고, 재수를 비롯한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은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이미 어릴 때부터 인이 박혀서인지 그 중단에 딱히 충격을 받진 않았다.
재수와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걸어 다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무역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은행 업무를 맡았다.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지출을 기록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회사 규모가 아담해서 일이 부치지 않았고, 회사의 상사들은 남는 시간에 내가 공부하는 것도 배려해 주셨다. 당시에는 잘 몰라서 표현을 못 했는데, 그분들의 배려는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앞자리의 7이 눈앞에 반짝거렸다
한 달 후, 드디어 첫 월급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 번 돈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의 앞자리는 7이었다. 70만 원을 조금 넘는 액수의 첫 월급. 이제 들으면 우스울 정도로 적은 액수지만, 벌써 그게 15년 전이고 스무 살이 만져보기에 70만 원은 거대한 돈의 산이었다.
나와 함께 재수를 하는 친구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오늘 나와! 나 오늘 월급 탔어!”
“오, 진짜? 오늘 네가 쏘는 거야?”
“당연하지! 나 옷도 사고, 갖고 싶은 거 오늘 다 살 거야.”
“어? 정말 그래도 되겠어? 첫 월급은 원래 부모님 드리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김 빠지는 소리야!”
“아니, 나도 잘 몰라서. 벌어봤어야 알지!”
“야, 돈 한 번 원 없이 써보고 싶다!”
그날 저녁 친구와 부평 지하상가에서 만났다. 돈을 쓰더라도 어딜 가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계획 조차 없었고, 딱 하나 돈을 쓰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그래, 오늘 한 번 마음 내키는 대로 써 보자! 고 다짐하고 평소보다 힘주며 지하상가 내를 걸어 다녔다.
일단 친구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소문으로만 듣던 곳, 빵을 무한대로 계속 준다는 그 신기한 식당, 고기가 비싸지만 꽤 맛있다는 그 레스토랑이었다. 은근한 불빛을 쏘는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골랐다. 주문받으러 온 직원이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았다. 굳이 이렇게 꿇어앉아 주문을 받다니. 내 무릎이 다 무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결국 원 없이 써봤다
빵 포장까지 부지런히 받아 친구와 다시 지하상가로 내려왔다. 이곳을 다니며 쇼핑을 하기로 했다. 친구가 무엇부터 구경할까? 하고 묻는데 시원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평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참 많았는데, 그 리스트 중에 멋진 게 없었다.
“내가 갖고 싶은 건 옷, 시디 플레이어, 귀걸이, 튼튼한 레깅스 정도…”
“너 되게 소박하다.”
친구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림이 예쁜 티셔츠를 두 개 정도 샀고, 똑같은 귀걸이 두 쌍을 사서 친구랑 하나씩 나눠 가졌다. 튼튼한 레깅스를 하나 샀고,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비교한 후 시디 플레이어를 샀다. 조금 피곤한 것 같아서 친구와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시 나와 화장품 가게에 난생처음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샀다.
물건을 선택하고 돈을 지불하는 일은 생각보다 피로했다. 긴 시간 고민할 수 없으니 짧은 시간 안에 해치워야 했다. 태어나 처음 여러 가지를 소비했고, 그 시간은 다 합쳐도 3시간을 넘지 않았다. 오래도록 꿈꿔온 소비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짧은 시간에 쏟아진 지불의 경험, 지금까지 얼마나 썼는지도 감이 잘 오지 않는 상황에서 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걱정하듯 물었다.
“너 오늘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집에 갈 때 부모님 내복도 사야 하지 않아?”
요즘엔 안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첫 월급은 부모님의 내복을 사드리는 게 예의였다. 아차, 싶어서 근처 속옷가게를 찾아 내복을 샀다. 머릿속에 있던 것을 모두 사고, 내가 번 돈을 내 마음껏 써봤다고 느끼며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과일도 샀다. 내복에 과일, 등에 멘 가방에는 오늘 산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돈이라는 건 무거운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절약만을 바른 가치로 추구하는 엄마는 내복을 받자마자 추궁을 시작하셨다.
“쓸 데 없이 이런 건 왜 샀어! 그래서 너 오늘 얼마나 쓴 거야?”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는 내 등에 대고 엄마는 한 마디 덧붙이셨다.
“내일 당장 적금 들어!”
있으면 좋은 것들. 없으면 못 살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한 달간의 피로와 쌓여있던 욕구를 흠씬 두들겨준 쇼핑리스트. 지갑을 열어 남은 돈을 확인했다.
‘거의 다 쓴 건 아닐까. 나 오늘 정말 과소비한 거 아냐. 왠지 낭비하면 벌 받을 것 같은데.’
두근거리며 남은 잔액을 확인하는데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세 시간을 복닥거리고, 무릎 꿇어가며 주문받는 식당까지 다녀오고, 쓸 데 없다는 부모님 내복까지 사 왔는데 나는 고작 25만 원을 썼다. 원 없이 쓰겠다고 다짐했던 돈은 25만 원이었다.
갑자기 허무해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벼르면서 마구 써보고 싶던 돈이 내 수준에서는 25만 원이었던 것이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쓴다는 그 맥락 없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턱 밑으로 훅 들어왔다.
이 버릇이 여전해서 나는 지금도 돈을 별로 쓰지 않는다. 가끔 충동적으로 옷이나 가방 따위를 사긴 하지만 입이 떡 벌어지도록 큰돈을 쓰지 않는다. 25만 원을 쓰고 헛헛한 웃음을 짓던 날, 내 안에서 모든 욕망은 휘발된 모양이다.
그날로부터 내게 돈은 그저 쓰는 것, 욕망할 이유 없이 오로지 쓰는 것이라는 도구의 순위로 밀려났다. 돈을 쓰다, 그것은 가끔 신나고 배부르면서 가끔 입 안을 쓰게 만드는 그런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