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한 양은 소비하고 싶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일지도 모른다.
양고기를 먹게 된 것은 사실 오래되진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돼지고기나 소고기 정도를 먹였고, 이따금씩 닭고기를 사주는 정도였다. 아마 부모님에게 양고기는 몽골이나 중국 구석의 어느 지역 사람들이 먹는 특유의 고기였던 것 같다.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 먹어야 하는지 모르셨거나.
둘 다 해당일 것 같은 게, 두 분 중 누구에게도 특색 있는 요리나 고기를 먹어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만약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한 종류의 음식만 주고 ‘사람은 이것만 먹을 수 있다’고 했어도 믿으셨을 거다. 그 세대가 그러했다. 그 세대는 주는 대로 먹고, 양육해 준 것에 위대한 믿음이 있던, 반쯤 땅에 묻어있는 그런 세대였다.
그래서 나는 양털을 제공하는 순하디 순한 양을 고기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오랜 후에 알았다. 처음 알게 된 것은 27살쯤이었던 것 같다. 이날의 충격은 아직도 내게 크게 남아있다.
내가 자주 활동하던 동호회에서 무리를 지어 출사를 나선 날이 있다. 겨울철들어 큰 눈이 두어 번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12월 초중 순이었을 듯싶다. 마침 사람들 사이에 대관령 양떼목장에 가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관령이라……. ‘대관령’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스위스 어느 산맥에 가는 것처럼 설렜다.
분명 나는 언젠가 대관령을 지났겠지만, 대관령이라는 곳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떤 지역을 가기 위해 구불구불 넘어서는 과정 중에 있던 대관령, 혹은 우유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대관령을 나는 전혀 기억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상상한 대관령엔 사계절 희끗한 눈이 얇게 도포돼 있고, 그 틈새로 녹색 이끼가 비집고 나오며, 공기는 폐를 씻어내듯 깨끗하고, 그곳을 마구 뛰노는 양떼가 이따금씩 내게 와서 애교를 떠는 그런 양떼목장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출사에 대찬성, 이라며 가고 싶다는 의사를 마구 피력했다.
그렇게 동호회에서 여건이 되는 몇 사람들과 차량 준비가 되는 사람들로 구성해 열 명 남짓 모여 우리는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떠났다. 물론 대관령 양떼목장엔 음악 따윈 없겠지만, 영화 ‘러브레터’에서 본 것처럼 내가 고함을 치면 저 멀리서 아련한 메아리가 되돌아올 거라 짐작하며 가는 내내 힘들지 않았다.(나는 굉장히 심한 멀미가 있는데, 설렘만으로도 그날은 멀미가 없었다.)
이윽고 대관령 양떼목장 도착. 아하, 내가 상상 중에 하나를 빠뜨린 게 입구에서 드러났다. 양의 냄새, 동물 특유의 배설물 냄새, 그것의 발효로 이루어진 냄새를 상상에서 빠뜨린 게 아닌가! 미리 마음이라도 먹고 왔으면 힘들지 않았을 것을. 깨끗한 공기가 폐를 닦아내기 전 일단 양의 배설물 냄새가 폐로 들어왔다.
겨울의 양떼목장은 괜찮은 편이었다. 겨울이지만 산이 헐벗지 않고 푸른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고, 양떼목장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로로 제격이었다. 걸으면서 은근하게 들려오는 양의 ‘메에-’와 배설물 냄새가 애교 있는 양과의 첫 만남을 부추겼다.
양떼목장에 도착해 입장료를 계산하면 직원이 작은 바구니를 하나씩 준다. 양의 먹이란다. 양이 손을 물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주라고 했다. 음? 손을 문다고? 좀 이상하긴 했지만 여하튼 우린 양떼목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격적인 배설물 냄새와 함께 목청이 엄청난 양떼들을 만났다.
히야, 양이 이렇게 목소리가 클 줄이야. 이래서 진짜 공부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고 하는가 보다. 만화나 책 속 양은 그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메에’를 할 뿐인데, 실제로 본 양들은 엄청 난 목청으로 ‘뭬엑-뭬에엑’을 외쳤다. 수백 마리가 동시에 외치니 쩌렁쩌렁했다. 생각보다 야성적인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몸집도 꽤 컸다. 내 머리 속 양은 아마 새끼양이었나 보다. 애교 있는 양의 환상은 뭉게뭉게 사라지고 없었다.
일단 들어갔으니 바구니에 담긴 풀을 양에게 먹였다. 양들은 꽤 저돌적으로 풀을 먹었다. 직원이 왜 주의를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양의 이빨은 가지런한 맷돌과 같았다. 거기에 물리면 피부보다는 내 뼈가 온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순간 무서워져 바구니째로 양 입에 갖다 댔다. 그랬더니 양이 바구니까지 먹으려고 했다. 보고 있던 직원이 와서 바구니를 뺏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양이라니, 매력적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얏!” 급히 돌아보니 함께 온 일행 중 한 명이 양에게 물렸던 것이다. 나처럼 바구니째 던져줬어야 했는데, 겁도 없이 손가락으로 소량씩 먹여준 모양이다. 양은 그런 걸 알리도 없고 배려 또한 할 줄 모르니, 풀인 줄 알고 덥석 물었는데 일행의 손이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양의 야성, 적극성에 감탄하며 목장을 내려왔다.
이렇게 돌아보는 데 두어 시간 걸린 듯했다. 이제 슬슬 배고프지 않으냐고 각자 얘기했다. 내려가면 뭔가 있겠지, 라며 내려오니 역시 포장마차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메뉴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다.
현수막에는 웃고 있는 양의 얼굴 그림과 ‘양꼬치’라는 메뉴와 가격이 적혀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린 모두 기겁해서 현수막을 쳐다봤다.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뭬엑’을 외치고 풀이나 먹다가 결국엔 이곳으로 끌려와 고기까지 내놓는 양의 삶에 다들 충격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현수막에 웃는 양의 얼굴은 너무나 잔혹했다. 양이 온순하다 해서(그리 온순하진 않은 것 같지만) 죽는 순간까진 웃을 수 없지 않은가. 웃는 양의 얼굴은 그저 판매자 입장에서 표기한 것뿐, 사실 양은 죽는 순간 엄청 울었을 것이다.
‘목장에서 관광객 접대하며 살았는데, 이젠 죽어서 고기까지 내놓으라니. 나쁜 인간들!’이라며 오뉴월 서리 맺히듯 한을 품고 피를 토하며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관령은 늘 서리 맺히듯 서늘하고 추운 지도.
우리는 비록 손을 물리긴 했지만 위에서 풀을 받아먹고 열심히 뭬뭬 거리던 양의 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 고기는 분명 위에서 열심히 살다 늙어 쓸모가 적어진 양으로 만들었을 터다. 배고파도 조금 더 내려가서 다른 걸 찾아보자며 나왔다.
그런데 어차피 우리가 먹는 고기는 또 다른 생명, 방금 양을 봤다 해서 양을 안 먹는다 쳐도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크게 다를 바 없는 잔혹한 고기를 섭취한다. 그래서 무엇이 더 잔인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일단 그날은 양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양을 고기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충격 속에서 처음 알았다. 어딘가 양의 도축장이 있고 양 옆에 두 개의 건물이 있다. 하나는 양털 가게, 하나는 정육점. 세 개의 건물이 나란히 서서 서늘한 대관령 서릿발을 받으며 전설로 남을 것 같다는 상상이.
그날 이후로 나는 양고기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서른 살 무렵 처음 양고기를 먹었다. 친구와 신촌에서 만났는데, 친구가 기막히게 맛있는 꼬치구이 집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중국식 양꼬치와 술을 파는 곳이었다. 직원들도 모두 중국인이었다. 어떻게 먹는 줄 몰라서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친구는 능숙하게 불 위에 꼬치를 올리고 간간히 구워주며 주황색 가루에 찍어 먹으라고 줬다. 동갑내기 친구가 나보다 성숙한 어른처럼 보였다.
고기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양고기 특유의 진한 향이 남아있었다. 중국 맥주를 함께 주문해 먹었는데, 그 맛이 좋아서 이후 나는 다른 친구들도 그 가게에 데려가 양꼬치에 술을 한 잔씩 하곤 했다. 중국식 양꼬치집이고 직원이며 술이며 모두 중국에서 왔으니 양고기도 아마 중국에서 왔을 것이다. 중국의 양은 ‘뭬에’를 외칠 때도 성조가 있을 것 같다. ‘뭬-에-에-에-?’ 이런 식으로.
양의 고기라니. 엄청난 야성의 양고기라도 지금은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