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영웅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면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내 또래 사람 중에 한국 최초 우주비행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이름은 이소연으로 1978년생 여성이다. 그가 우주 국제 정거장에 탑승해 우주과학실험에 참여한 때는 내가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나보다 고작 5살 많은 그가 우주비행사로 선정돼 세상에 얼굴을 알리는 동안 회사에서 아담한 월급을 받으며 일하던 나의 현실이 눈물겨웠던 건 부정할 수가 없다.
그가 한국 최초 우주비행사가 되면서 뉴스와 인터넷상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소연의 몸이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니까 연예인처럼 호리호리한 몸이 아니라는 의견이 줄곧 회자됐다는 점이다. 우주 비행을 위한 조건에 몸을 맞춰야 했다는 소문이 희미하게 떠돌았지만, 만약 남성 우주비행사였어도 그에게 왜 마른 몸이 아니냐고 의문을 가졌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평소엔 생각도 못 했던 한국 최초 우주비행사의 기억이 떠올랐던 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읽으면서였다. 이 글은 48세의 동양인 비혼모 여성이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며 벌어지는 희극적 풍경, 그리고 우리 마음속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백인 남성들과 함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재경은 선발 발표 직후부터 논란거리다. 사람들은 동양인 중년 여성을 향한 클리셰를 숨기지 않았는데 주로 나이가 많다, 특별한 경력이 없다, 한 차례의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등이 시빗거리였다. 그러나 재경은 이미 업적이 많은 우주과학자였고 극한의 환경을 뛰어넘을 정신력이 검증된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클리셰에 반대하며 지나친 영웅성을 부각하지 않은 건 재경이었다.
우리의 몸은 너무 한계가 많죠. 특히 제가 딸 서희를 가졌을 때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얼마나 많길래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니까요. 더 나은 몸을 가질 수 있다면 꼭 이대로의 몸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 281P.
국가를 위해, 우주 과학 발전을 위해 우주비행사에 지원한 게 아니라 재경은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18개월의 신체 개조를 견딘 사이보그의 몸으로 재경은 우주로 향하는 캡슐에 탑승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린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리는 일을 맡았다고 해서 100% 성공하긴 어렵다. 우리가 응원했던 스포츠 선수가 반드시 금메달만 따야 인정받는 게 아니고, 다수의 롤모델이었던 연구자가 진로를 바꾼다 해도 망한 본보기는 아니다. 소설 속 재경 역시 우주 비행에 성공 혹은 캡슐이 폭파해 희생당해야만 인정받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재경은 불명예 우주비행사로 회자되기 시작한다. 그의 조카가 다시 우주비행사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뒤늦게 불명예를 안게 된 재경의 스토리를 읽으며 나는 다시 오래전 접했던 한국 최초 우주비행사의 소식을 검색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첫 화면에 뜬 소식은 그의 결혼 소식과 자녀의 유무 따위다.
성과와 유명세를 만든 여성의 근황에 반드시 결혼과 배우자의 정보, 자녀의 유무가 따라붙는 게 이젠 놀랍지도 않다. 남성 우주비행사의 근황에도 결혼과 자녀 유무가 그리 중요할까. ‘여성’ 우주비행사와 ‘남성’ 우주비행사와 같이 직함과 명예 앞에 성별이 붙을 때 편향된 관심을 받는 쪽이 여성이라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용납해줘야 할까.
그럼에도 소설 속 화자인 조카는 이모를 우주 영웅으로 기억한다. 비록 우주 비행은 포기했지만, 이모가 밟아온 과정이 있었기에 아랫세대인 조카가 소수자를 대표하면서도 우주비행사로 성공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비난들은 분명히 재경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 308P.
영웅으로 인해 인류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영웅을 맞이할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영웅 개인의 행복도 상상해본다. 캡슐 안에서 희생당하는 대신 바다로 뛰어들어 편한 숨을 고르는 재경은 분명 행복한 영웅이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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