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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21. 2022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언제일까?

출근길의 주문, 이다혜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언제일까?

이다혜 지음, ‘출근길의 주문’


해가 바뀌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20대 후반에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지금은 각기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만날 때는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일했는데 어느덧 10년이 지났고 많은 게 달라졌다. 이쯤 되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뒤 나누는 대화에서 ‘먹고사니즘’이 빠지지 않는다. 


셋 중 한 친구는 얼마 전 투잡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월급만으로는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소규모 브랜드를 인수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 명은 가업에 참여하는 걸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이 친구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빨리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40대를 넘겨 일하는 프리랜서 여성 작가를 목격하기 어려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토록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는 이유는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는 동안 일터에서 수많은 여성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여성이 체감하는 정년은 사회가 정해둔 정년과 다르다. 업무능력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30대 중반부터 이상하리만치 회사 안에서 나이 많은 여성으로 분류된다. 자신보다 연로한 남성이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지금 회사에 앉아있는 분들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40~50대 남성 직원과 임원은 수두룩한데 40~50대 여성 직원과 임원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말이다. 중년의 여성 직원이 일하면 “오래 버틴다”든가 “살아남았다”든가의 평가를 듣지만, 중년의 남성 직원은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든가 “한창 일할 나이”라는 평가를 듣지 않던가. 


일터에서 여성이 사라지는 이유에 출산과 육아의 영향이 있다면 비혼이거나 무자녀 여성은 왜 사라져야 할까. 공무원이나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여성이 직장인으로 정년을 채우는 사례를 목격하는 건 왜 이리 어려울까. 


앞에 언급한 나의 친구 중 한 명은 무자녀 여성이며 한 명은 미혼이다. 출산과 육아라는 막강한 경력단절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불안했고 답답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예전에 읽었던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을 상기했다. 


이다혜 지음, ‘출근길의 주문’(한겨레출판사)


페미니스트가 되면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언제나, 전에는 그냥 넘기던 것들 하나하나가 걸려서 화가 나 오히려 참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을 자각하고 세상의 여성에 대한 차별에 눈떠야 하냐고? 그것은 도무지 진단명이 나오지 않던, 수많은 여성들의 승진 누락, 조기퇴직, 낮은 임금, 쉬운 해고 등의 문제들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 18p


현대사회를 치열하게 사는 건 다수의 성인에게 공통이다. 하지만 같은 능력을 보유해도 40대쯤 되면 한쪽은 오래 버틴 자가 되고 한쪽은 실력을 갖춘 자로 분류되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오래 버틴 자로 분류된 여성들은 부랴부랴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한다. 갑자기 새로운 기술을 배워 공방을 차리고 온라인 쇼핑몰을 연다. 이른 나이에 퇴직금을 받아 급히 창업박람회를 드나들며 자영업을 수소문하기도 한다.


마흔 넘어 ‘안정성’을 찾아 좋은 회사의 좋은 자리로 재입사하는 남성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이 든 여성의 커리어가 인정받는 세계가 있기는 한가 의구심이 들곤 한다.

여성을 나이로 보지 말고, 외모로 따지지 말고, 커리어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같이 퇴사한 여성과 남성 중 남성만이 다시 재취업의 기회를 허용받는 경우를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둘 중 누가 더 일을 잘했는지 다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 203p


꼭 회사에 다녀야 하는 건 아니다. 회사 아닌 다른 길을 찾아도 내 삶이 망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여성 직장인의 간당간당한 수명이 안타까운 이유는 떠밀리듯 진로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느라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는 게 여성의 숙명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성별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꿈과 포부를 갖고 시작한 사회초년생 시절 상상했던 우리의 미래가 지금과 일치하는가? 나는 여성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출근길이 당당하고 즐겁길 바란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싹싹 지우고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이 즐거울까?’를 생각하며 현관문을 나설 수 있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세상을 진심으로 바란다.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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