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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14. 2022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김혼비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


학창시절 피구를 꽤 잘했다. 운동을 잘해서라기보단 날아오는 공 피하는 게 무서워 열심히 피하다 보니 잘하게 됐다. 또 보기보단 힘이 세서 공 던지는 힘도 좋았다. 오죽하면 내가 던진 공을 맞은 친구들이 감정이 실린 것 같다며 따진 적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 왜 우리는 피구만 했는지, 왜 축구를 가르쳐주지 않는지 말이다. 멋지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야구 대신 발로 하는 야구만 시켰다. 남학교에서는 진짜 야구를 한다던데 여학교를 다닌 나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야구공을 만져본 일이 없었다. 


어릴 때는 못 느꼈던 ‘남자 운동’과 ‘여자 운동’의 경계가 이제야 슬그머니 떠오른다. 익숙해진 나머지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던 경계였다. 누가 봐도 다양한 기회와 환경이 조성된 축구나 야구는 남자 운동이었다. 골대가 있는 운동장과 그물로 쳐진 야구장을 장악하는 축구팀과 야구팀은 늘 남학생이었다. 


여자는 어쩐지 별다른 환경이 필요 없는 발야구, 피구를 했다. 주전자에 물 받아와서 운동장 귀퉁이에 선을 긋고 노는 빈약한 운동이 이른바 여자 운동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남자는 조기축구와 야구를 즐긴다면 여자는 필라테스, 요가 등을 한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만약 야구나 축구가 거칠고 다치기 쉬워서 여자에게 기회를 덜 준거라면 그 운동은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거친 종목이어야 한다. 여자가 하기에 거친 운동이라며 만류하고 기회를 덜 줬다면 여자를 보호해야 할 존재로 정의했기 때문 아닐까? 여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대신 몸매를 예쁘게 다듬는 운동에는 기회가 활짝 열려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김혼비(민음사)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오랜 시간 축구를 좋아해 온 작가가 직접 아마추어 축구팀에 들어가 1년간 활동한 이야기를 담은 생활 체육 에세이다. 저자는 팀원들과 연습하고 뒤풀이를 하고 축구를 즐기고, 또 다른 팀들과의 관계와 우리 사회에서 여자 축구와 관련된 시선을 이야기한다. 


유독 축구는 어려서부터 남자들만의 운동이었다. 함께 땅따먹기를 하고 얼음땡을 하던 친구 놈 중 사내 녀석들은 언젠가부터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도 그랬다. 공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남자들에게는 축구, 여자들에게는 발야구나 피구를 시켰다. - 31p


저자와 함께 축구를 한 팀원들은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 전업주부, 이자카야 사장 등 다양하다. 그들은 모두 여성으로 각자 직업이나 자녀 양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하고 싶은 마음에 운동장으로 나와 축구화를 신는다. 일하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 어떻게든 구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축구협회)


여자도 충분히 축구를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음에도 여자 축구는 비주류다. 남자 선수들의 축구는 매년 K리그로 열리지만, 여자 선수의 축구는 WK리그다. 어차피 다 같은 코리아의 K를 쓰면서 여자는 WK로 분류되고, 그나마도 관객이 너무 적어서 모든 경기 관람료가 무료다. 야구는 또 어떠한가. 매년 프로야구 리그가 개막하는데 여자 프로야구는 아예 팀도 리그도 없다. 남자에게 야구는 진로가 될 수 있지만, 여자에겐 취미 이상을 부여할 수 없다. 


사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들 알고 있지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딱 짚어내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보며 나는 내내 시큰했다. 축구 선수를 떠올리면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자가 떠오르는 게 기본값처럼 돼버리는 세상에서, 대개의 스포츠가 남자의 영역이라며 맨스플레인을 억지로 들어줘야 하는 세상에서 축구하는 여자들은 미치게 멋있었다. 


그 여자들은 오직 ‘좋아서’ 축구를 하는 건데 어쩐지 내 눈에는 편견에 맞서 뛰는 것으로 해석됐다. 오랫동안 여자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으로 나서는 누군가가 있어 우리는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울 힘을 얻는다. 그것이야말로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로빙슛(lobbing shoot)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모두들 최대한 모두의 일상에 축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고 공간을 터 주고 리듬을 맞춰 준다. 여기서 우리는 한 팀이다. - 270P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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