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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22. 2022

나의 답변을 완성하는 문장의 힘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글로이아 스타이넘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나의 답변을 완성하는 문장의 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주옥같은 말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시대 참 좋아졌다”라는 말을 도통 좋아하지 못하겠다. 조선 시대보다, 일제강점기보다, 전후 시대보다 좋아졌다는 비교형의 말을 들으면 그 말속에 숨은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축첩을 하고 여성이 소유물로 여겨지던 조선 시대에 비해 좋아졌다는 게, 일제강점기보다 여성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게, 전후 시대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는 게 여성에게 과분한 것처럼 표현하며 현시대를 찬양한다. 


그렇게 치자면 우리 일상에 감사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다. 재래식이 아닌 수세식 화장실을 쓰는 것, 필기할 때 먹을 갈지 않고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 모든 의료가 침술과 한약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술을 이용할 수 있는 것 등등 모든 만물과 일상에 매번 감사하며 좋아진 시대를 찬양해야 할 터다.


문명의 발전은 당연히 여기면서 낙후된 여권이 조금씩 회복한 것에 대해서는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처럼 표현하는 “시대 참 좋아졌다”는 발언과 “여성상위시대”와 같은 표현은 아주 졸렬하다.


1934년 미국에서 태어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랐다. 30년대의 미국은 가부장적 분위기가 만연했고 여성에게 평등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속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성별, 인종, 계층을 넘어선 시민운동가로 성장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학고재)

근대에서 현대로 변화하는 거친 시대에서 시민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는 ‘말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이라는 재치있는 제목의 책을 쓴 배경이 바로 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여성, 인권, 환경, 연대, 인종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한 주옥같은 말을 모아둔 책이다.


어떤 면에서 문장이나 문구를 전달하는 행위는 병에 편지를 넣어 넓은 바다에 띄우는 일과 같다. 누가 당신의 언어를 발견할지 모른다. 혹은 당신이 찾아낸 말을 누가 처음 했거나 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구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기 첫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 정직한 언어로 우리의 일기는 비로소 완전해진다. - 15p


책 속에는 상황을 설명하는 에세이가 나온 뒤 그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짤막한 문장들이 등장한다. 읽을수록 메모하고 남겨놔야겠다는(언젠가 활용하고 싶다는) 다짐이 강하게 밀려드는 문장들이었다. 


여성에게 가장 혁명적인 행동이자 보상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여행 그리고 돌아왔을 때 받는 환영이다. - 38p


남성에게 일어난 일은 정치라 하고 여성에게 일어난 일은 문화라 한다. - 57p


많은 부모가 딸을 아들처럼 키우고 있지만 아들을 딸처럼 키우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 - 69p


나이는 개인적인 것이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여성은 생식 능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남성은 나이와 권위로 인정받는다고 본다. 그래서 여성의 젊음이 연륜보다 더 각광받는지도 모른다. - 77p


짤막한 문장을 읽을수록 무릎을 쳤다. 그렇지, 맞아, 라고 감탄하며 읽고 메모했다. 물론 이 짧은 글들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유명한 사회운동가가 될 일은 없겠다만 분명 좋은 연결고리는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뭐라 정의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어려운 시선과 발언을 만났을 때 나의 답변을 명확히 다듬는 자원이 될 것이다. 


힘이 되는 말과 문장은 반드시 곁에 남아 나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마련이다. 언젠가 내가 어쩌지 못하는 환경에 처했을 때 ‘예전에 읽었던 그 문장에선 이렇게 말했는데, 나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하며 도움닫기로 활용할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90세에 가까워진 노령의 ‘센 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알짜배기 선물이란 바로 그런 영향력이 아닐는지.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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