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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18. 2022

독립이 결혼이 되지 않기를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독립이 결혼이 되지 않기를

홍승은의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고딩엄빠>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이슈다.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커뮤니티와 기사에 하도 언급되다 보니 궁금했다. OTT 플랫폼에 검색해 1편을 봤다.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제목대로 고등학생 부모들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10대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 (MBN)


우리나라에 미성년자 부모가 아예 없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눈앞에 등장하니 놀라긴 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고딩엄빠’ 중에는 우연히 생긴 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 출산을 선택해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 있었고, 불행한 환경에서 도피하듯 아이를 선택한 이들도 있었다. 도피한 아이들의 과거 환경은 학대와 소외로 얼룩져 있었다. 그럴 때 도피처로써 결혼이나 출산으로 가정을 형성하는 건 비교적 쉬운 탈출방법 아닐는지.


그러한 도피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하물며 나의 엄마만 해도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의 장녀였던 엄마는 밑으로 4명의 동생을 건사하면서 학교도 다녀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사를 나가면 동생들 밥을 먹이고 씻겨 학교에 보낸 뒤 자신도 학교를 가야 했고, 수도 시설이 없었던 전후 시대다 보니 물을 길어오는 고단한 노동을 어릴 적부터 짊어져야 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또 저녁을 준비하고, 그나마 다니던 학교생활도 어지간히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도피처가 아빠였다. 엄마보다 열 살이 많았던 아빠는 당시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고단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일찍 알아차렸다. 그때 엄마의 나이는 고작 18살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른 결혼을 하고 자녀 셋을 낳았다. 그 시절 나의 엄마가 ‘고딩엄마’였다.


시간이 갈수록 어린 아내를 둔 아빠의 집착은 점점 흉포해졌다. 막내인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엄마는 고작 서른두 살이었고, 날씬하고 예뻤다. 아빠는 엄마의 차림새와 행동거지를 지적하고 통제했다. 그나마 통제할 게 없으면 밥상에 올라온 반찬 가짓수를 들먹이며 괴롭히고 때렸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엄마는 포악한 아빠에게 예속된 존재였다. 도피처로서의 결혼은 그런 거였다.


홍승은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동녘)

엄마의 결혼 스토리를 떠올린 계기는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면서였다. 자신을 서른, 이혼 가정, 탈학교 청소년, 지방대, 적자 사업자, 월세살이, 장녀, 비혼주의자, 병약한 신체, 그리고 여성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경험에는 나와 비슷한 결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요구되는 단속이었다. 


저자의 아빠는 엄마의 립스틱 색깔을 단속하는 것을 시작으로 머리 모양과 외모, 대인관계 등 모든 일상을 단속했다. 자연스레 자녀들에게도 단속이 시작됐다. 딸의 직업을 결정하고, 통금 시간 엄수, 이성 관계의 허락 등이 요구됐다.


어쩜 우리 집에서 벌어지던 모든 현상이 저자의 집에서 똑같이 벌어졌던 걸까? 마치 복제라도 한 듯 남편이 아내를 통제하고, 자녀들에게 그 영향이 돌아가는 가정의 모습이었다. 만약 나의 아빠가 엄마를 존중했더라면, 엄마가 조금이나마 자유로웠더라면 혹은 애초에 도망치기 위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했을까?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해방은 가까운 관계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것은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었고, 그래서 거부했을 때 죄책감을 주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통제한다는 말은 집착과 폭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 46P


<고딩엄빠>라는 예능을 보며 보호와 존중에 목마른 아이들이 집 밖에서 자신의 가정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는 18살에 배가 불렀을 엄마를 떠올렸다. 동등한 부부관계가 아닌 한쪽이 한쪽에 예속되는 불행한 관계는 가정 전체의 아픔을 빚는다.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도피처에 발이 묶여 딸 셋을 낳고 길렀던 엄마의 청년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해 내내 가슴이 저몄다. 


자신을 보호하는 게 최대 과제이자 난제인 여성 청소년이 결혼과 출산을 유일한 도피처를 선택하는 건 지금 이 시각에도 벌어지는 현실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구원할 수 있기를, 자유롭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통해 실패한 가정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한 나의 진한 기도이기도 하다.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 47P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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