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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13. 2022

여자들이 맺는 진짜 관계

여자들의 사회, 권김현영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여자들이 맺는 진짜 관계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 진짜 여자들의 사회를 탐색하다

‘여자들의 사회-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여적여’라는 말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여성의 적이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조작해 비아냥거릴 수 있을까? 비슷하게 '여자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망언도 흔하다. 남자들도 싸우기 시작하면 무서운 건 똑같은데 여성들의 충돌을 유난히 흉하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가 꼭 더 붙는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하지만 그게 정말 여자라서 생기는 현상일까? 나는 남자들이 싸우면서 충동적으로 주먹을 드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고, 그들끼리 서로를 질투해 타인을 쉽사리 비난하고 깔아뭉개는 현장도 셀 수 없이 많이 봤다. 


꽤 우정을 다졌다고 자부하는 남성 무리에서 자신보다 조금 더 잘 풀린 친구에게 축하 대신 비아냥과 비난을 쏟아붓는 대화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가 꼭 더 붙는다. 


“남자들 대화는 원래 이래.”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남성의 적을 남성으로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살풍경에 “하여간 남자들이란”이라며 끌어내리고 싶지 않다. 그저 다양한 인간이 조직과 사회에 밀집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충돌이다. 그런 사사로운 감정과 표현이 있는 곳이 인간사회다. 


그리고 그 치열한 인간사회 속에는 늘어지게 편안한 여자들의 사회가 있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할 필요 없이 지낼 수 있는 사회, 차별과 폭력의 우려를 접어둔 채 진지한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사회. 그런 곳으로써 내겐 여자들의 사회가 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예능 프로그램 등 익숙한 이야기에서 여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찾아 분석한 <여자들의 사회>는 여적여 프레임이 질려버린 나에게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사진=휴머니스트)


여성을 함부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여성들이 맺는 ‘진짜 관계’를 해석한다. 그 관계 속에는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 특별 성을 배척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맺어가는 여성들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며 꿈꿔온 여자들의 사회는 남자 없는 사회가 아니라 남자가 필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사회다. 또한 여자들간 관계의 의미가 과소평가 되지 않는 사회고,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공유한 사회며, 여자라는 동질성 아래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각각의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고, 바로 그 점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기에 함께 있는 것이 의미이 있는 그런 사회다. - 23p


여자니까 무조건 다 친해지고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각 고유한 개인들이 결이 맞는 구성을 만들어가는 게 사회다. 종종 이러한 무리를 향해 “여자들끼리 지내면 위험하니까 남자가 꼭 있어야 해.” “여자들하고만 지내면 사람들이 오해한다.”와 같이 무례한 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자들끼리 친한 게, 여자들끼리 생활하는 게 위험하고 오해받을 만한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직 성별로 사람과 무리를 판단하지 않는 한 여자들의 사회는 좀 더 안전하고 평등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결혼 제도 내의 성차별 문제가 고쳐지든 말든, 그 결혼 안 하면 그만이다. 외롭지 않느냐고? 고양이와 살면 되지. 작당 모의를 함께할 친구들과 함께. - 118p


친하게 지내는 남자 사람 친구가 무심코 내게 투덜댄 적 있다. 
“아줌마들 평일 낮에 카페에서 차 마시는 거 꼴 보기 싫어. 대단한 얘기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 어처구니없는 프레임에 똑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면서 주구장창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 거 꼴 보기 싫어. 대단한 얘기 하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냄새까지 풍기면서.”


인내심이 바닥나서 뾰족하게 대응했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사회는 이렇게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더 가볍냐, 진중하냐 따지고 싶은 게 아니다. 모든 관계와 사회는 얼마나 진심인가에 달려있다. 


이 책이 미디어 속 여자들의 관계를 보여줬지만, 나는 사실 여자라는 구분을 가졌을 뿐 상대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한 인간의 사례 분석이라고 읽었다. 불필요한 대결구도와 비아냥을 떠나 편안하고 성의있게 지낼 수 있는 사회는 어디 있을까? 그곳의 여자들의 사회든, 우리 모두의 사회이든 나는 그런 곳에서 무해하게 살고 싶다.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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