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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20. 2022

당신의 불편함이 불편하다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클레망틴 오탱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당신의 불편함이 불편하다

클레망틴 오탱의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평소 자주 접하고 피로해지는 말이 있다. 
“나는 페미니즘이 불편해요.”
“페미니즘이 맞다는 건 알겠는데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그 역시 당신의 선호이자 가치관이라 인정하면서도 답답함이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이런 말도 들었다. 


“가장의 짐을 짊어진 남편은 전업주부인 나를 부러워해요. 애 키우고 살림하고 놀 수도 있으니까요. 나도 내 삶에 만족해서인지 페미니즘이 불편해요. 경력단절된 여성들도 다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배우자가 돈을 벌어오고 생계가 윤택할 수만 있다면 여성은 차별당해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왜 스스로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얕잡아가며 노동의 가치를 한없이 끌어내릴까? 비자발적으로 경력이 단절된 수많은 여성은 정말 그 삶을 선택한 걸까?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답변은 수두룩한데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모양이 될까 차마 말할 순 없었다. 애초에 내가 페미니즘을 지향한 건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서였다.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서였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당위성이 있고 사실에 가까운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은 피해야 마땅했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마음속 최후통첩은 단 하나였다. 당신이 차별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받더라도 나는 당신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 


나는 이렇게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고, 근거 없이 비난하는 언행을 달리 말할 것 없이 안티페미니즘이라 단언한다. 사상이니 이념이니 어려운 기준 없이 성평등을 이뤄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건 틀림없는 안티페미니즘이다. 


클레망틴 오탱의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 (미래의창)


프랑스 파리의 부시장인 클레망틴 오탱이 어릴 적부터 친한 남동생과 마초이즘을 두고 대화한 내용을 담은 <페미니스트, 마초를 말하다>에도 안티페미니즘이 등장한다.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한 사람이 마음껏 곡해한 안티페미니즘을 설파한다면 평등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고 말이다.


페미니스트가 원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지배 관계를 역전하는 것이 아니야. 여성들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버리지 않는 것,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 가능성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기를 바라는 거야. 양성 평등을 바라는 것을 독재라고 할 수는 없지. 오히려 해방으로 나아가지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 103P


그럼에도 안티페미니즘은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에 훼방을 놓는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무력화시키고, 무조건 여성이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젠더라는 정보에 연연하지 않은 채 동일한 사람으로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출산휴가 대신 퇴사를 종용하는 회사를 다닌 내 친구,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가족들의 압박에 못 이겨 울면서 사직서를 낸 내 친구는 선택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런 타인의 서사에 “다 스스로 선택한 거다, 전업주부는 놀고 먹는 편한 직업”이라 말하는 이는 당사자가 아닌 나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


올해 초 미국 CNN방송에서 한국의 젊은 남성과 보수 정치인들이 안티페미니즘을 주장한다며 부끄러운 실정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한국의 실정을 그래프로 보여줬다. 


임금 격차가 일어나고, 호주제가 폐지돼도 여전히 남성의 성에 귀속되는 사회적 이슈와 다른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하찮게 여기며 자신의 안위가 지켜진다면 차별은 지속되도 상관없다는 시선은 모두 같은 무게의 안티페미니즘이다. 


그러니 연약한 목소리로 “저는 페미니즘이 불편해요.”라고 말하는 연기는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자신의 안티페미니즘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비전에 훼방을 놓고 상처 주는 게 얼마나 비겁한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뉘우치게 될 거라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으로 향하는 피할 수 없는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 더 이상 시간 문제는 아닐 거야.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결국 승리를 얻어내고 막 기쁨을 나누던 시절보다 지금의 투쟁은 훨씬 희미하고 지난해 보여. 하지만 시대의 성격이 우리를 무르게 해서는 안 되겠지. 그럴수록 오히려 힘을 모아야 할 거야. 평등과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 말이야. 자, 파이팅! - 129P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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