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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28. 2022

엄마가 욕이 되는 세상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 박서련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엄마가 욕이 되는 세상

박서련 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


사회가 엄마에게 부여한 ‘숭고한’ 이미지에는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내 주변에서 마주하는 엄마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 마음씨에 숭고까진 아니더라도 깊은 애정과 정성이 있다는 건 확신하고 있다. 그 엄마들은 나의 친구들이자 주변인이다. 


그래서 엄마의 숭고함에 찬성을 못 할지언정 하면 안 되는 말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고 있다. 바로 패륜욕이다.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고등동물로서 인간은 그런 욕설을 입에 담아선 안 된다. 그런데 여성, 그중에서도 엄마를 대상화한 욕설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은 들어봄직하다.


그렇다고 미러링을 해서 남성과 아빠를 대상화한 욕을 하라는 게 아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존재라는 이유로 그런 모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패륜욕은 하필 여성과 엄마를 향한 지독한 욕이 난무하는지, 그 더러운 세계마저도 성차별을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박서련 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 (민음사)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딸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다. 본인은 부모로부터 이렇다 할 사랑이나 응원을 받은 적 없어서인지 딸에게는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아이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어쩌면 아이를 위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열두 살 짜리 아이를 키우는 지금 여기의 당신이 아니라, 타인에게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당신을 위한 것. 당신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의식하며 아이를 사랑한다. - 17p


딸과 또래 아이들이 엄마 외모까지 평가한다는 사실을 안 주인공은 피부과에 다니기도 한다. 몸매 관리도 곧잘 하는 주인공에게 남편은 “결혼했다고 긴장 푸는 여자들하고 달라서 당신이 좋아.”라고 품평을 한다. 


딸에게 키 크는 한약을 먹이고, 과외를 붙이고, 오만 좋은 것은 다 해줬는데 문제가 생긴다. 학교에서 라이벌 구도의 남자아이와 게임에서 번번이 지는 딸이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악을 쓰면서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는 두 아이였는데, 게임만큼은 남자아이가 훨씬 잘 해낸 것이다. 주인공은 평소 딸의 사교육을 준비하듯 게임 과외를 알아본다. 그 과정에서 직접 게임을 시작했는데, 자신도 몰랐단 게임의 재능을 발견하고 승승장구한다. 


어느 날은 게임 과외선생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게임 상대가 과외선생에게 부른 ‘혜지’라는 이름을 묻는다. 과외선생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안 좋은 말이라고 대답한다. 


운전 못하는 사람한테 김여사라고 하잖아요. 혜지도 그런 말이에요. 게임 못하는 사람한테 너 여자냐?라고 묻는 대신에 그냥 여자라고 단정하고 흔한 이름으로 부르는 거죠. 여자는 게임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 36P


게임 세계에서 게임 못하는 사람은 ‘여자’이고, 여자가 아니더라도 여자처럼 못한다는 말로 아무 이름이나 불러대는 은어인 것이다. 그저 존재하는 젠더 중 하나로 여성인데 모자란 존재의 은어가 되는 세계, 소설 속 게임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딸과 라이벌인 남자아이가 전교어린이회장 자리를 두고 크게 다투면서 게임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다. 주인공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활용해 딸의 대리시합을 나간다. 그곳에서 남자아이는 딸에게 돼지라며 욕을 하고, 주인공은 자신이 딸아이의 엄마라고 밝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엄마’라는 글자가 쓰이지 않는다. 자꾸 xx와 같은 표식으로 뜬다. 


옆에서 딸이 설명한다. 채팅창에 욕 치면 블라인드 처리가 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게임세계에서 ‘엄마’는 욕인 것이다. 그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남자아이는 NGUM이라며 약을 올린다. NGUM이 뭐냐는 말에 딸은 망설이다가 대답해준다. ‘느그어미’라는 뜻이라고. 주인공은 믿을 수 없어하며 채팅창에 자꾸 엄마라는 단어를 써본다. 그러자 아이가 당신의 손목을 붙잡는다.


“엄마, 엄마라고 그만해. 계속 욕 쓰면 아이디 정지 먹어.”
“엄마가 왜 욕이야? 내가 네 엄만데.”


이 짧은 소설이 서글프고 따끔한 이유를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껏 들어온 패륜욕에 그저 기분 나빠하는 데 그쳐왔기 때문이다. 모자란 존재를 욕하는 데 여성을 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충 넘겨왔기 때문이다. 상대가 저급한 언어를 사용해 목적에 달성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절대 타락할 길이 없어 보이는 ‘엄마’가 욕이 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욕의 대상이 되는 세상은 먼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 아닐까? 어린아이들 입에서 패륜욕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미래의 엄마는 영영 숭고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것이다.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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