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Jul 18. 2022

기업은 원더우먼을 채용하고 싶다

[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기업은 원더우먼을 채용하고 싶다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이민경


프리랜서가 되기 전 9년간 회사에 다녔다. 오래 다닌 회사도 있고, 짧게 다닌 회사도 있다. 20대 때는 면접이 잡히면 잔뜩 긴장했는데, 30대가 가까워져 오자 긴장도 없었다. 면접에서 들을 질문도 어느 정도 예상되고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질문에 골몰하곤 했다.


아주 작은 중소기업과 직원수가 꽤 되는 중견기업, 갓 시작한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회사의 면접을 봤는데 늘 비슷한 결의 질문을 받았다. 회사 규모나 업무에 아무 상관 없는 질문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주로 이런 질문이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 예정인가요?”
“결혼해도 회사에 계속 다닐 건가요?”


그 질문의 배경에는 여성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둘 수 있으니 결혼과 출산, 육아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직원을 원한다는 입장이 담겨 있었다. 여성의 직장생활이 결혼에 위협받을 만큼 위태롭다는 뜻이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결혼해도 회사에 계속 다닐 것이며 결혼 계획이 없다고 답했지만, 남성 구직자에게도 여자친구의 유무와 결혼 후 직장생활 여부의 질문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질문이 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출산 계획 없으세요?”
“저희는 작은 기업이라 출산휴가 드리기 힘든데요.”
“혹시 출산하시면 아이 키워줄 분은 계세요?”


있지도 않은 미래의 아이까지 들먹이며 출산 계획을 묻는다. 여성의 출산이 회사에 지대한 민폐라도 되는 듯 전전긍긍 대안을 말하라고 한다. 나는 출산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지만, 이쯤 되면 오히려 되묻고 싶어졌다.


“그냥 제가 여자라서 싫으세요?”


면접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여성의 직장생활은 장애물이 많고, 출산과 육아와 가사의 책임이 오롯이 여성의 것이라 언급하는 곳이 우리 사회다. 회사에 충성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내야만 하는 여성의 면접 자리, 그 단면이 모이고 쌓여 OECD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 1위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이민경 작가의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봄알람)


이민경 작가의 책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의 시작은 “한국에서 여성이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를 구하시오.”라는 문장이다.


저자는 한국 상위 100대 기업 평균 연봉이 남성은 7742만 원, 여성은 4805만 원인 현실을 말한다. 같은 직급까지 진급하는 데 남성이 3~4년 걸리는 동안 여성은 10년이 걸리는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그 지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맹점을 파고든다. 


이들의 경험에서 이전까지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졌던 자리에 진입하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추가적인 노력, 입증해야 했던 추가적인 성과, 직면해야 했던 추가적인 부당함을 읽어내야 한다. - 18P.


면접 자리에서부터 여성이란 이유로 회사에 피해를 주고, 오래지 않아 그만둘 거란 낙인을 찍는 분위기는 여성에게만 더 많은 숙제를 내준다. 기본적으로 업무를 잘하면서 여성에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해내라는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엄마 같은 따뜻함, 여성만의 소통 능력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여성성을 너무 강조해도 안 된다. 일터에서 여성적이라는 것은 때로 업무에서 무능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는 여성은 기대되는 여성성을 발휘하는 동시에 자신이 마냥 여성이기만은 한 것은 아님을, 남성보다 더 남성 같음을 증명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떠안는다. -84P


그래도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피상적인 위로를 하는 이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세상은 좋아졌는데 왜 같은 직급의 입사 동기들이 성별에 따라 임금 차이가 나는 회사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외벌이로 가계를 책임지는 남성이 부담을 느끼면서도 직장에서 여성이 해고되는 것은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일 잘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원더우먼을 바라면서 왜 원더맨은 원치 않는지도 궁금하다. 


슬픈 진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례와 내가 겪은 어이없는 경험들이 모두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사실 면접 자리에서 내게 무례한 질문을 했던 부분은 모두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37조 4항 1호에 따라 위법이다. 그럼에도 그 위법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우리네의 모습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가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긴급히 반성하는 것뿐이다.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053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욕이 되는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