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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24. 2017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방법

나는 한 달에 두 번 월급을 받는다.


나는 한 달에 두 번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야, 부럽다!”와 “부업 하는 거야?” 이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둘 다 보기에 따라 나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내 직업의 이름은 하나로 줄여 말하기 애매한데 콘텐츠 작가 혹은 에디터라고 한다. 업무형태는 프리랜서다. 중소기업 두 군데의 일을 맡아 하는데, 복합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한 가지 직종으로 말하기 어렵다.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더 많은 곳의 업무를 진행한다.


내 경력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콘텐츠 작가라고 하면 어떤 콘텐츠냐고 묻는데, 사람마다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설명이 애매하게 막힌다. 혹은 작가라는 직종만 들으면 반사작용처럼 “책 냈나요?”, “책을 내야 작가 아닌가요?”, “어디서 글을 볼 수 있죠?” 등의 질문이 돌아온다.


그게 한동안 귀찮아서 ‘잡역부’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할 줄 아는 업무 내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거의 다 해내는 편이니 잡역부가 맞다. 그런데 잡역부라고 말했더니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내가 일용직으로 일한다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친한 지인들의 귀에 들어가 다시 내게 전해져 왔다. 씁쓸한 편견이었다. 잡역부는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건데, 사람들은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가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여튼 중소기업 두어 군데의 일을 맡아 하므로 업체별로 정해진 결재일에 돈이 들어온다. 액수가 많진 않지만 한 달에 두 번 떨린다. 프리랜서가 되기 전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한 번만 떨렸다. 액수는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지금은 두 번 떨리니 이득 본 것 같다.




프리랜서지만 웬만해서는 게으르지 않게 생활패턴을 고정하려 애쓴다. 아침 7시에 남편과 함께 일어나고, 아침식사를 한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을 간단히 치운 후, 업무를 시작한다. 맡은 일이 많은 날은 하루에 6~8시간을 꼬박 일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는다. 회사에서 먹듯 1시간 내내 여가시간으로 쓰진 않는다. 간단히 음식을 차려먹고 양치질을 한 후 10분 정도 앉아 쉰 다음 바로 일을 시작한다. 회사를 다닐 적엔 업무시간에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잡무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의가 잦아서인지 업무에 바짝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혼자 집에서 일을 하게 되니 집중도가 말도 못하게 높아졌다. 과거 이틀간 나눠 하던 일을 지금은 하루에 8시간동안 집중하면 모두 마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일찍 일을 시작해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프리랜서의 좋은 점이다.


요새는 짬 내서 디저트도 만들어 먹습니다.

일에 요령이 붙거나 오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오전에 속도를 바짝 내서 업무를 마무리한다. 처음엔 여유 있게 하루 종일 일하는 날이 많았는데, 요령이 생긴 요즘은 오전에 불나게 바쁘다. ‘오후에 놀고 싶다!’는 사심에 사로잡혀 키보드도 평소보다 빨리, 메모도 빨리, 기획도 빨리 해내는 것이다.


운이 좋게 오전에 일을 마치면 오후에 주로 책을 읽는다. ‘놀고 싶다!’를 그렇게 외쳐댔으면서 막상 노는 꼴은 엄청 시시하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 간다. 저녁의 야채가게는 너무 번잡하므로, 한산한 낮 시간대에 나가 야채장을 본다. 가끔 빵집에 가서 갓 나온 빵이 있는지 기웃거린다. 딱히 살 것이 없으면서 집 앞 인테리어샵을 어슬렁거리거나, 목적지 없이 집 근처 호숫가를 하염없이 걷기도 한다.


오후에 놀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 치고 너무 모양 빠지게 노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게 전부 이런 쪽이니 별 수가 없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전철역 근처에 남편을 마중까지 나간다. 시간이 나도 할 일이 어지간히 없는 것이다.


오전에 바짝 일했으면 오후에 어디 구경을 다니거나,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니면 좋으련만. 그다지 동적이지 않은 정적인 나의 생활반경은 고생을 타고난 사람의 일면이랄까.


그나마 동적으로 노는 날은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회를 가는 날이다. 어릴 적부터 혼자 놀기를 많이 해서인지 혼자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이런 날은 신발을 편하게 신고, 가벼운 책을 한 권 가방에 넣고 나간다. 목적지 근처에 일하는 친구가 있다면 전날 미리 연락해 차 한 잔 마시고 오는 날도 있다.




여기까지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의 즐거운 반쪽생활이다. 슬픈 반쪽도 분명 있다. 사람들이 나를 ‘아르바이트’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잡역부라고 잠시 떠들었던 기간에 내가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소문이 났다.


그런데 딱히 반박할 수 없었던 게, 프리랜서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로자이긴 하되 ‘용역’이다. 사람들은 업무형태를 정규직 이외 모든 업무형태를 동일하게 인식한다. 나는 4대 보험을 내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도 쉽고, 계약기간도 짧다. 실제로 지금 맡은 두 개의 업체 중 한 곳은 조만간 계약이 종료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업체는 새로 구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수입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그 불편한 눈빛을 강제선물 받아야 한다.


그 눈빛까진 참을 수 있다. 가장 힘든 것은 소신껏 일하는 나를 ‘반백수’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지난 명절, 친척 한 분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내게

“집에서 일한다고? 그럼 거의 노는 거네. 남편 아침밥이나 잘 챙겨.”

“출퇴근 안 하면 노는 거야. 남편한테 잘 해.”

“너 그렇게 편히 살면서 상 차릴 때 반찬은 몇 가지나 하니?”

라고 말하는데, 몹시 화가 났다. 다시는 그 분과 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나를 낳아 키워준 엄마까지 “너는 집에서 일하니 가정주부와 다를 바 없다. 전업주부만큼 집안일을 네가 해야 하는 건 당연해!”고 주장하고 계신다. 업무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지 나도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점을 아무리 설명해도 집에서 일하는 것은 그저 부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 직무내용과 업무방식, 경력에 대해 단 한 줄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반백수로 낮춰 평가하는 것은 프리랜서가 된 이후 가장 참기 힘든 부분이다. 타인의 직업과 삶의 방식, 생활 형태에 대해 조심히 말하는 것은 나이와 관계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다.


어쩌다 오후에 쉬게 되는 날이면 종종 대림미술관에 들르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라는 것이 당연한 삶의 방식, 직업의 큰 틀이라고 인식돼 있어서 일부분은 나도 이해한다. 나 역시 대학 졸업 이후에 회사생활이 너무나 당연했고, 회사라는 조직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졸업 후 9년 동안 조직 안에서 차고 치이면서 살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차고 치이는 생활, 줄을 잘 서야하고 말 한마디를 해도 득이 되는 말로 골라해야 하며, 솔직한 속내를 절대 드러내선 안 되는 사회생활. 그것이 끔찍이 싫었다. 정치에 무능한 나 같은 사람은 회사생활을 당연히 여겨선 안 됐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갖다버리는 꼴이었다. 끔찍이 싫지만, 열심히 회사를 나갔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삶은 사실 마음먹기에 따라 어디로든 새 판을 짤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선언’을 할 무렵 불면증과 초조함으로 늘 손끝까지 파들거렸다. 불안한 시간을 잠시 견디고 나니 이젠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 모습을 껍데기가 아닌 진짜 내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놀랍도록 유연해진 나를 만나게 됐다.


일요일마다 가슴이 조여오고, 금요일 밤이면 스트레스에 폭식을 하며, 야근이라도 하면 겨우 씻고 침대에 쓰러지던 나는 없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하루를 길게 쓰는 법을 익히고, 아플 땐 마음 편히 아파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배운다. 점심시간마다 조미료에 버무려진 밥을 먹는 대신 건강한 음식을 적당량 먹을 수 있고, 남편과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조직의 유리천장이 미치도록 두려웠던 30대 중반의 암담함을 깨고, 당당하게 정규직이 아닌 현실을 말할 수 있는 지금. 어느 회사 소속의 어떤 직급으로 말할 수 없지만, 개인으로서 맡은 업무를 확실히 해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현재.


사회생활을 준비하며 멋진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대학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마음에 들어 할까? 머릿속에 그려오던 모습과 많이 다른 것은 인정.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네모 안에 갇힌 나보다, 네모 밖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은 나를 좀 더 좋아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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