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사랑하다 못해 밀당에서 지는 나
“여보, 요즘 책 많이 읽는구나.”
책상 위에 주르륵 꽂힌 책을 보며 남편이 말한다.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한 권도 겨우 읽었다. 집에 오면 바로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서기 바쁘던 그때는 늘 버릇처럼 소원하던 말이 있었다.
“책만 실컷 읽고 낮잠 자고 싶다!”
회사에서 매일 꼬박 9시간씩 일하던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 소원의 절반을 이뤘다.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낮잠이란 내게 게으름의 으뜸 행위로 인식돼서인지 마음 편히 시도하지 못한다. 몸이 아픈 날을 제외하고는 낮잠을 모른 체 하느라 애쓴다.
요즘은 일주일에 3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을 땐 2주 동안 끙끙대며 한 권을 겨우 읽는다. 계산해 보면 일 년간 100권쯤 읽을듯한데 세어보거나 기록하진 않는다. 한 해 동안 얼마를 읽었다고, 읽은 책에 번호를 붙여가며 SNS에 남기는 모습이 겉치레로 다가와서 탐탁치 않다. 몇 권을 읽든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는 것, 굳이 말 안 해도 공감하지 않을는지.
이렇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을 다 사기엔 금전적으로 벅차고, 집에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다. 책장은 이미 꽉 들어차서 늘 배부른 속내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엔 역시 도서관이 절실하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결혼 전부터 도서관을 알차게 애용했다.
결혼 전 친정집 동네에 크고 근사한 도서관이 지어졌다. 새 건물의 알싸한 냄새가 흐르고, 도서관 테라스에서 보는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다. 도서관 2층 계단에서 이어지는 동산은 가을이면 가득한 단풍을, 봄이면 해사한 꽃을 듬뿍 피워내 공부가 필요한 마음을 뒤흔들곤 했다.
그 무렵엔 도서관에 신간도서나 보고 싶은 책을 신청하는 재미가 붙어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평소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에서 검색해 본 후, 책이 없으면 속으로 감탄사를 외쳤다. 책을 읽고 싶은 욕망만큼 신청이 엄청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알고 도서관은 모르는 대단한 영역을 아는 듯 속으로 신나 했다.
책을 신청할 때는 사유를 적어야 한다. 어떤 사유를 적든 도서관 측에서는 준비해 주겠지만, 가급적 공감할 수 있는 사유를 멋지게 적고 싶었다. 대략 이런 사유들을 적었던 것 같다.
“고전은 반추하듯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과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만, 다수가 몰라주더라도 소수가 사랑하는 가치와 메시지가 분명 있는 고전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보낸 24시간을 1분으로 단축해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그 안에 넣고 싶으십니까? 시가 그와 같습니다. 좋은 시는 우리를 정화하고 다듬어 줍니다. 이 시집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해 줄 거라 생각합니다.”
무료로 책을 빌려보는 이로서(물론 국가, 지방자치 단위로 운영되는 도서관 이용은 당연한 권리지만) 적당히 ‘이것 좀 사주시지?’처럼 대충 사유를 적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열심히 쓴 사유들이 도서관 직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열심히 사유를 적어 신청한 책은 보통 2주 내에 입고가 되고, 문자가 온다. 신청한 책을 받으러 도서관에 가는 날은 소개팅을 나가는 기분이다. 내가 선택한 책의 얼굴, 그 실체를 만나러 가는 것. 도서관 가는 길엔 해바라기가 많이 피어있고, 멀리 과수원이 보였다. 내가 사랑한 도서관이었다.
이 도서관보다 조금 더 일찍, 가장 많이 사랑한 도서관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근처의 시립도서관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도서관이었는데, 마당에는 일본식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조성돼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던 고무라 도서관처럼 높은 지대에 있던 그 시립 도서관은 아래로 인천항이 보였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도서관 마당의 능소화 넝쿨 밑 벤치에 앉아 놀았고, 가을에는 한없이 단풍을 바라봤다. 겨울방학에는 발길을 끊고 새 학기 중간고사 무렵 다시 방문하면 도서관을 조금 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서고는 전부 목조로 지어졌는데,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서고는 복층 형태로 나뉘어 있는데, 위층에 가려면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곳엔 재미있는 책이 많았다.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적은 없었다. 재밌고 신기한 책들이 많아 흥미에 겨워 공부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 간 것 뿐이었다.
친구들이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나는 서고에 가서 책을 읽었다. 소설을 읽고 사진집을 구경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읽었고, 호흡이 빠른 판타지 소설은 선 채로 읽어 버렸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종이에 적힌 글자와 의미들이 가슴속에 찰방찰방 차오르는 느낌이 선명했다. 책을 한동안 안 읽으면 찰방거리던 것들이 금세 고갈되곤 했다. 그러면 발길을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하는 날이 계속됐다.
집에 갈 시간이 돼서 남은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 땐 서고 구석에 나만 아는 장소에 숨겨두곤 했다. 하지만 사서 선생님은 내 머리 꼭대기에 계셨기에, 다음에 가면 책은 깨끗이 치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곳은 내 생애 가장 사랑한 도서관이었다.
두 도서관을 열심히 사랑한 나머지 그 이후에는 도서관에 호감이 생기더라도 사랑은 하지 못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동네 도서관이 있는데, 꾸준히 책을 빌려가는 나를 위해 신청도서를 준비해 주고, 창구에서 바코드를 딱딱 찍어주는 사서 선생님들이 고맙긴 하다. 예약한 도서를 찾지 못해 번번이 내게 전화를 걸어 취소한다는 통보를 하곤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고.
동네 도서관은 시내에서 규모가 꽤 큰 편이다. 도서관 2층의 자료실에서 책을 빌린다. 자료실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소파가 있다. 둥글게 앉는 의자인데, 열 사람 정도는 거뜬히 앉을 크기다.
오래 읽어야 할 분량의 책은 빌려가고, 간혹 그림책처럼 분량이 적은 것은 이 원형 의자에 앉아 읽고 간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들의 얕은 콧김 소리가 들린다. 정적 속에 ‘스스스-’하고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끔 유명한 작가들이 강연을 오고, 분기마다 도서 관련 자격증 교육이 진행된다. 도서 보유량도 많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이틀에 한 번 정도 나의 산책코스이기도 하다. 남편과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빌리고 간혹 소장하고 싶은 책을 몇 가지 골라 구입하곤 한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 나는 아침마다 꾀를 부린다. 오전에 집중해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는 늘어지게 책을 읽고 도서관에 산책을 가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 그러려면 오전에 정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진땀 흘리고 일 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달콤함을 그리워하고, 도서관에 산책 갈 시간만 기다린다.
이런 내 모습이 어쩐지 도서관과 밀고 당기는 관계인 것 같아 가끔 흠칫한다. 도서관이 사람이라면 자신이 밀당에서 유리한 입장이란 것을 알아챘을텐데. 아침마다 뒤척이는 나를 보며 도서관은 흡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