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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14. 2024

재능력자_1

초능력보다는 왜소한 재능

있잖아, 나는 재능력자야. 담담하게 “나는 초능력자야.”라고 말했다면 좀 멋있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좋았겠지.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초능력이라기엔 조금 짜치거든.


내가 가진 재능은 말이야. 음, 혹시 길을 걷다가 길바닥에 버려진 치실 본 적 있어? 일회용 치실인데 끝에는 살짝 휘어서 갈고리처럼 생겼고 반대편에는 치실이 양쪽 홈에 걸려있는 형태 말이야. 나는 잠들기 전 그 치실을 사용하는데 요즘 이상하게 길에서 그 치실이 자주 발견돼. 그럴 땐 좀 의아하단 말이야. 사람들은 길을 걸어 다니면서 치실을 한다는 건가? 나는 가만히 서서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겨우 하는 치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숙련되면 걸어 다니면서 이와 이 사이를 쑤셔 잇몸을 자극한다는 거야?


아, 조금 더 들어봐 봐. 아무튼, 나는 그렇게 길바닥에 버려진 치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 물론 의지에 따라서 그냥 지나쳐도 돼. 어쨌든 남이 버린 거니까. 이미 사용한 치실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다시 쓸 순 없잖아. 그런데 나는 의지에 따라서 그걸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어. 더러워서 못 듣겠어? 너도 참 인내심 부족이다. 좀 더 들어보라니까?


치실을 줍는 이유가 있지. 치실은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잇몸을 건드리잖아. 그러면서 잇몸의 점막 세포가 아주 소량이나마 묻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버려. 심지어 거리에서도! 나는 그걸 주워서 그 세포가 있던 위치에 갖다 대면 치실을 한 사람의 당시 감정을 읽을 수 있어. 치실에 묻은 세포가 잇몸에 있었으니까 나도 잇몸에 갖다 대야 해. 다른 데 대면 읽히지 않아. 닦아서 갖다 대냐고?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세포가 다 흘러가 버리면 안 읽히거든. 더럽다고? 하, 참나.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얻는 일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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