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Aug 21. 2024

재능력자_2

처음 이 재능을 알게된 건!

처음 이 재능을 알게 된 이후에는 수시로 아무거나 주워다가 갖다 대보곤 했어. 신기했거든. 아주 우연히 알게 된 재능이었어. 초등학교 때 짝이랑 캔 음료 하나를 나눠 먹다가 알게 됐거든. 사실 별로 먹고 싶진 않았는데 어릴 땐 그런 게 있었어. 여자애들 사이에는 화장실 칸 하나에 같이 들어갈 수 있다면 진짜 친한 사이라거나 캔 음료 하나 혹은 음료 한 잔을 함께 나눠 먹어도 비위가 상하지 않는다면 진짜 친하다거나. 그런 말도 안 되는 테스트 같은 거 있잖아. 


그 친구도 그런 걸 원했던 것 같아. 딱히 마시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거리낌 없이 마시길 기다리는 눈빛이 너무 따갑더라고. 내가 마신 음료수를 아무렇지 않게 아주 태연하게 마시라는 그 눈빛! 그 눈치! 먹고 싶지 않았지만, 눈치가 보여서 마셨어. 짝꿍의 입안에 맴돌았던 점액이 아주 일부, 맨눈으로 찾기 어려울 만큼 아주 소량 묻은 음료 캔 입구에 입을 갖다 대고 음료를 쭉 들이켜는 순간 귓가에 짝꿍의 목소리가 울리는 거야.

‘얘 이거 안 마시면 어떡하지? 나 얘랑 제일 친하다고 옆 반 애들한테 말했는데. 아, 짜증 나. 전학 가고 싶다.’


처음엔 짝꿍이 말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목소리가 묘한 울림이 있더라고. 목욕탕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가만있었는데 와, 이 친구가 꽤 포커페이스가 되더라고. 그 어린 나이에 나름 사회생활을 한 거겠지. 하여간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사회생활에 좌지우지되는 나약한 존재야. 사실 너도 그렇잖아?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그때 내 짝이 친했던 애들이 학년 바뀌면서 옆 반에 배정되고 우리 반에 혼자 떨어져 나온 상태였거든. 나 여기서도 잘 지낸다, 니들 말고도 친구 있다, 이런 과시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 감정을 읽고 나서는 음료 하나 나눠 먹자고 해도 싫은 티를 안 냈어. 화장실 같은 칸에도 가주고 말이야. 그때부터 재능을 알게 됐어. 어떤 의미에선 작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활용도가 있었던 거지.


치실을 줍기도 하고, 가까운 사이에는 실수인 척 빨대를 같이 쓰기도 하면서 상대의 감정을 읽곤 해. 면봉과 수저도 가능하지. 주사기는 너무 위험하니까 패스. 사용한 지 오래된 건 안 되니까 뭐 거의 실시간 사용한 물건으로 감정을 읽는다고 볼 수 있지.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 나는 적당히 눈치 있고 분위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 됐어. 재능이 없었다면 눈치 없는 게 뻔히 탄로 났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건 찝찝한 재능이라니까.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 재능력자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