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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13. 2017

도마 위의 30대

40대가 되면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단 두 명 남은 미혼의 친구들이 있다. 어제 저녁엔 그중 한 명으로부터 청첩장을 받기 위한 모임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3명은 전부 나이가 한 살 터울이다. 청첩장을 준 친구 A는 34살, 나는 35살, 다른 한 명 B는 36살이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입사해 직장동료로 시작해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셋이 회사에서 친해질 무렵, 우린 모두 애인이 없었다. 당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정작 우리보다 주변 사람들 마음이 더 급급해 보였다. 결혼은 언제 하니, 소개팅 건수 좀 찾아봐라, 눈을 낮춰라 등등의 오지랖 넓은 소리를 회사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들었고, 우린 괴로웠다.


그 소리가 지겨웠던 내가 미팅 서비스에 가입하고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미팅 서비스로 이런저런 소개팅 후보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조금 비싼 장난을 했다. 그 미팅 서비스는 상대와 연락을 이어야 할 때 몇 만 원의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락이 닿아도 정작 않으면서 점심시간마다 모여 앉아 미팅 소식을 공유하고 키득거리곤 했다.




B가 말했다.

“그때 말이야. 내가 31살이고, 네가 30살이었나? 그때 네가 나한테 한 말, 그게 맞았어.”

“어떤 말?”

“오래 만난 남자 친구가 다시 만나자고 할 때 나 고민했잖아. 서른이 넘었고 이제 새로운 사람을 어떻게 만나냐고, 새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으니 다시 그 남자 친구를 만나야 하나 고민할 때 네가 지금 이렇게 젊고 괜찮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뭐라 했잖아.”

“그랬지. 31살이면 한창 젊고 인생에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인데 언니가 이상한 고민을 하니까 그렇지!”

“그래, 맞아. 그땐 31살이 참 많고 기회 없는 나이인 줄 알았는데 36살이 되고 보니 그때가 좋은 나이였어. 그때가 지금보다 더 예뻤고.”

“마흔이 넘으면 지금이 참 예쁘고 젊고 좋았다고 할 거야. 지금이 늦었다느니, 기회가 없을 거라느니 그런 소리 또 하기만 해봐!”


다행히 B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결혼에 연연하고, 주위 사람들 잔소리를 신경 쓰다 보니 진짜 기회들을 못 알아보고 산 것 같다고도 했다.


B는 최근 새 연애를 시작했다. 상대 남자는 나이가 6살이 많았다. 둘 다 나이가 중년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또다시 결혼이 도마 위에 자주 오르는 상황. 하지만 이번만큼은 주변에서 또다시 결혼을 닦달하더라도 연애 자체에 집중할 거라고 계획을 밝혔다.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했다.


34살의 A는 몇 달 후 결혼을 한다. 우리에게 뽀얀 청첩장을 나눠줬다. A는 언젠가 결혼을 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조급하진 않았다. 남자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조급함은 대단했다. 일 년 반의 연애가 이어지자 양가 부모들이 결혼을 밀어붙였다.


지난 명절 서로의 집에 얼굴을 내비친 게 결혼 준비의 시작이 됐다. 인사 후 천천히 결혼을 논의하고 싶었던 A의 커플은 4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됐다. 어차피 결혼하게 된다면 상대와 할 거라는 믿음이 있던 A는 자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한 일 년 정도 더 있다 결혼하고 싶었는데, 양쪽 부모들이 빨리 하라고 나이 타령들을 하니까 안 되겠더라고. 그 상황에서 싫다고 해버리면 정말 분위기 안 좋아져서 흐지부지 될 것 같고 말이야.”

“맞아, 그 상태에서 버티면 정말 흐지부지되기 쉽지.”

나와 B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돈에 억지로 빚까지 내가면서 결혼하기 싫었거든. 일 년 정도 더 모으면 대출도 덜 받고, 신혼여행지 선택도 자유로웠을 텐데. 하, 나이가 문제인지 돈이 문제인지 이젠 헷갈린다.”

“우리 나이가 그렇게 별론가?”


여자나이 25살을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하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못났다. 나이는 함부로 재단하고 기준 삼을 만한 게 아니다.


셋 다 나이로 공격받을 땐 기분이 별로다. 삶은 길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많이 살고, 늙은 것 같지도 않은데 자꾸 우리 나이가 후진 것처럼 평가하고 재단을 해버린다. 불쾌한 30대다. A에게 물었다.


“아이는 바로 낳을 거야?”

“아니, 몇 년 있다 낳으려고.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

“아하?”

“결혼도 내 마음대로 못 하는데, 임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려나 몰라.”

“진짜 임신이랑 출산은 개인이 선택하면 안 되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건 너무 억지야."

“아이가 없으면 이혼하기 쉽다는 말도 근거 없잖아.”


우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B도

“아이 꼭 안 낳아도 되잖아. 그냥 남편하고 즐겁게 일하면서 살면 안 되나? 아이가 없다고 불행한 건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결혼한 나 역시 어딜 가면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무례한 압박을 받는 터라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내년도 공부 계획을 알렸다.

“나 내년에 교정, 교열 공부하려고. 지금 하는 일로 돈은 벌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벌지도 모르니까. 큰돈은 못 벌어도 꾸준히 벌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아.”

“맞아, 맞아. 여자들은 마흔 넘으면 할 수 있는 일도 줄고 회사에서도 잘 안 받아주잖아.”

“진짜, 나는 마흔 넘어서 뭐 하지?”

“나는 남편이 돈을 벌든 안 벌든 상관없이 일하고 싶은데.”

“그러게 우리 마흔 넘으면 어떻게 돈 벌지? 우리는 대학도 나오고 직업도 있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경력은 싹 지워지고 그냥 ‘아줌마’로 보이는 걸까?”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의 대화 중심엔 ‘나이’가 꼿꼿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았다. 외면하고 싶은 숫자, 알고도 모른 척 그렇지만 제값을 하고 싶은 것, 나이.


우리의 나이는 마음 편히 연애하는 것을 방해하고, 결혼 시기도 좌우한다. 회사에서의 남은 수명을 짐작케 만들고, 경제능력이 끝날까 봐 조바심치게 만든다. 차오르는 나이를 외면하고 번식활동을 하지 않으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그동안 여기저기 뿌린 경조사비 생각에 늦은 밤 가슴속이 화닥 거리기도 한다.


B가 말을 잇는다.

“우리 마흔 되고 오십 되면 30대 그리워하겠지?”

“당연하지, 지금 우리 나이 나쁘지 않아. 아직 흰머리도 안 났고?”

“맞아, 우리 나이 괜찮은데 자꾸 남들만 우리 나이 별로래.”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A의 결혼선물을 의논했다. 맛있게 먹은 저녁식사는 A가 통 크게 샀다. 겉옷을 여미며 파스타 집에서 나와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곧 결혼식에서 만나자며 손을 잡았다. 괜찮은 서로의 30대의 얼굴을 마주했다. 나쁜 구석 없이 괜찮게 나이 먹은 30대의 얼굴. 좋은 나이라고 믿는다.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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