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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18. 2017

일 년에 두 번, 행복한 배낭

학창 시절의 꽃, 김밥과 소풍 배낭


일 년에 딱 두 번, 수업을 듣지 않아도 수업으로 쳐주는 기쁜 날. 바로 소풍날이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떠나는 소풍은 주로 중간고사를 마친 뒤 날짜가 정해졌다. 어릴 때부터 시험이나 성적에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이어서 성적 걱정은 한 번도 든 적이 없다.


다만 중간고사를 앞둔 상태에서도 머릿속엔 도시락과 소풍 배낭뿐이었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인데 노는 것만 좋아한다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고 나를 타박하면 당시엔 시원하게 대꾸를 못했지만 지금은 똑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다.

“공부 열심히 해도 잘 사는 건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소풍에 들떠 있는 나지만 엄마의 감정은 달랐다. 딸이 셋이고,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닌다. 보통 소풍 일정은 다 제각각이고, 엄마 입장에서 운이 좋으면 누군가 두 명의 소풍날이 겹친다. 소풍날마다 김밥을 싸는 게 엄마에게는 너무 힘들고 귀찮았을 테다. 그런데 두 명의 소풍이 겹치면 하루만 해치우면 되니 은근 기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매들은 소풍날이 겹치면 아쉬움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하고, 그래도 김밥은 이틀 동안 싸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소풍 도시락 ‘김밥’은 굉장한 이벤트였다.

어쩌다 소풍날이 겹치면 엄마는 “오호~ 잘 됐네.”라며 지갑을 들고 김밥 재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언젠가 둘째 언니와 나의 소풍이 겹친 것을 알게 된 날 저녁, 우리 둘은 서로 짜증을 내다 급기야 쥐어뜯고 싸움까지 했으니 당시 우리에게 소풍 도시락의 존재감은 굉장했던 모양이다.



엄마의 김밥은 엄청난 맛이었다. 김밥이 다 비슷하다지만 나는 친구들과 김밥을 하나씩 바꿔먹어도 우리 엄마의 김밥이 제일이었다. 어느 집 김밥은 시금치가 물컹했고, 어느 집 김밥은 속재료가 부실했다. 어느 집 김밥은 짜고, 어느 집 김밥에선 살짝 쉰내도 났다.

그런 것은 내게 김밥으로, 신성한 소풍 도시락의 축에 끼지 못 했다. 그래서 김밥을 먹을 때 ‘아, 바꿔 먹지 말고 내 김밥 나 혼자 먹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물론 치사한 사람이 될까 봐 말도 못 꺼냈지만 말이다.


엄마는 소풍날 평소보다 한 시간쯤 일찍 일어나셨다. 크기가 엄청 컸던 전기밥솥(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서 나중에 20인분 밥솥으로 바꾸셨다.)에 밥을 한 뒤 뜸이 들고나면 꺼내 한 김 식힌다. 시금치는 살짝만 데치고, 달걀지단은 아주 두툼하게 부친다. 맛살은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쪼개고, 김밥용 햄도 기름에 살짝 볶는다. 우엉 절임은 여러 개 들어가도 맛있고, 대신 단무지는 한 줄만 넣는다. 내가 싫어하는 당근이지만 아주 얇게 채 썰어 볶아두고, 네모반듯한 어묵도 길게 썰어 볶아둔다.


속재료 준비가 되면 한 김 식힌 밥에 양념을 한다. 두꺼운 김밥용 김 위에 밥을 깔고 속재료를 차근차근 담아 둘둘 말아 마지막에 힘을 꽉 준다. 엄마표 김밥 완성. 사실 이쯤 되면 나는 이미 잠에서 깨있었다. 엄청 맛있는 냄새가 방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니 잠에서 깨지만 그냥 좀 더 누워있는 것이다. 그 설렘을 즐기는 게 좋았다.


엄마가 김밥을 싸서 쟁반 위에 차곡차곡 쌓아갈 때쯤 우리는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옷까지 다 입고 나면 주방으로 와서 각자 스타일대로 김밥을 썰어 달라 주문을 한다.


“엄마, 나는 김밥을 2등분해서 2줄 줘.(나)”

“엄마, 나는 썰지 말고 통으로 2줄 줘.(둘째 언니)”

“엄마, 나는 다 썰어서 위에 깨 뿌려줘.(첫째 언니)”


딸 셋의 각기 다른 주문에 맞게 엄마는 김밥을 차려준다. 참기름이 듬뿍 들어간 그 김밥의 맛이란! 우리가 각자 김밥을 먹고 있으면 엄마는 지친 얼굴로 말을 거셨다.


“너네는 점심때도 이거 먹을 텐데 아침부터 그렇게 먹으면 안 질리니?”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절대 질리지 않아!”라고 외쳤다.


나는 2등분해서 반통씩 먹는 김밥을 좋아했는데 가끔 덜 잘린 시금치가 길게 빠져나오면 왠지 신났다. 둘째 언니는 썰지 않은 김밥을 우걱우걱 먹기를 좋아했고, 첫째 언니는 유난히 깨에 집착했다.


아침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동안 엄마는 종이도시락에 김밥과 단무지를 담고 고무줄로 칭칭 묶는다. 그리고 소풍 배낭을 직접 싸주셨다. 평소의 별 볼일 없는 책가방은 이날만큼은 행복한 아이템을 가득 담은 소풍 배낭이 된다.




엄마는 꼭 전날 미리 물을 얼려둔 다음 소풍 배낭에 함께 담아줬다. 그래야 날이 더워져도 도시락이 쉬지 않기 때문이다. 전날 김밥 재료를 사면서 사온 과자와 초콜릿 따위도 함께 넣어준다. 평소 우리가 과자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지만, 소풍날만큼은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고급스러워 보이고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새우깡 외 과자는 비싸다고 잘 안 사주던 엄마지만 그날만큼은 고급스러운 상자에 들어있는 파이류의 과자와 감자칩, 초코바 등을 넉넉히 넣고 얼린 오렌지주스도 한 팩 넣어주셨다. 마지막으로 배낭 앞주머니엔 껌을 넣어주신다.


“거기서 양치질하기도 힘든데 껌이라도 꼭 씹어라. 입 냄새 풍기면서 다니면 흉해.”

이렇게 환상적인 배낭과 도시락을 갖고 떠나는 소풍인데 그곳이 어딘들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체육시간엔 빌빌대도 소풍 때는 늘 체력이 넘쳐났다. 소풍길이 힘들다고 친구들이 징징대면 뒤에서 가방을 밀어주기도 하고, 평소에 말도 잘 안 하던 담임 선생님 옆에 가서 친한 척도 조금 했다. 극기 훈련을 가서도 앞장서서 달렸고, 남자애들만 하는 타이어 타고 물 건너기 등 어려운 체험도 자진해서 나서곤 했다.

요즘 즐겨 쓰는 배낭입니다. 이젠 내용물을 직접 준비하지요.


총 12년의 소풍 기억. 물론 성인이 되고도 소풍은 다닌다. 이제는 내가 김밥을 싸고 엄마를 모시고 다녀야 할 시기. 소풍 배낭을 챙겨주던 엄마의 모습은 많이 늙어버렸지만, 배낭 못지않게 많은 것을 나의 손에 쥐어주는 엄마 마음은 늙지 않았다. 엄마가 싸준 소풍 배낭을 메면 항상 등짝이 따스하거나 시원했던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다.




언젠가 이런 소풍 도시락과 배낭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몹시 놀라면서 자신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직접 싼 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밥을 쌌다고 연락하면 퇴근 후 머리를 휘날리며 집에 달려올 정도로 김밥을 좋아하는 남편인데 말이다.


“그럼 5학년 이후에 소풍날 뭘 먹었어?”

“삼각 김밥이랑 물.”

“뭐? 뭐라고?”

충격. 소풍에 삼각 김밥이라니? 아하, 시어머니가 삼각 김밥 모양으로 도시락을 만들어주신 건가?


“어머니가 삼각 김밥 틀로 도시락 만들어 주셨나 봐?”

“아니, 귀찮다고 삼각 김밥 두 개 사서 물이랑 싸줬어. 아니면 돈 좀 주고 알아서 먹으랬어.”

“뭐? 아니 대체 왜? 대체 왜 김밥을 안 싸주신 거야? 소풍이잖아.”

귀찮았나 봐.”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니 속이 아렸다. 신성한 소풍 도시락, 학창 시절의 꽃인 소풍 배낭을 받지 못한 채 그 긴 세월을 보냈다니. 기억해놨다가 시어머니께 왜 김밥 안 싸주셨냐고, 과자 왜 안 싸주셨냐고, 미약한 원망이라도 하고 지만 평화를 위해 참기로 한다. 대신 내가 남편에게 김밥을 자주 싸주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모두 같은 방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없다. 하지만 펼친 신문지 위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던 소풍 도시락 그 정도의 추억은 꼭 소장했으면 한다. 새벽부터 풍겨지던 엄마 냄새, 김밥 냄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없다면 슬퍼져 견디기 힘들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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