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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10. 2017

결혼 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

이렇게 맛있는데 왜 시키지를 못 하니.


불투명한 액체를 온몸에 끼얹고 누워있는 탕수육은 뇌쇄적이다. 함께 커플로 달려온 짜장면도 마찬가지. 이것저것 다 먹고 싶지만 뱃속이 한정돼 있을 땐 짬짜면, 탕짬뽕 등 반반 음식도 괜찮다. 피자는 한껏 살찌울 준비를 하고 기름이 자글자글한 상태로 품에 안긴다. 콧물이 줄줄 나오게 만드는 매운 떡볶이는 치명적이다. 요즘은 족발을 시키면 막국수에 얇은 씬 피자도 주는데 그게 참 묘하게 어울린다. 배달음식은 이렇게 맛있고 매력적인데, 왜 그걸 시키지를 못하니.


자취생활을 하던 시절, 그리고 혼자 집에서 일하는 지금도 배달음식을 시키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섭다. 혼자 있는 공간에 누군가 찾아오는 것이 스스로 주문한 음식일지언정 무섭다. 이렇게 말하니 열심히, 그것도 선량하게 일하고 있을 배달원들에게 꽤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 공포가 해결되지 않으니 솔직하게 무섭다 말할 뿐이다.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엔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어야 하고, 실내에 남자 속옷과 옷가지 한두 개를 보이게끔 걸어놔야 한다.’ 이것은 자취생활을 시작할 무렵 친구들이 입을 모아 조언한 내용이었다. 어설프긴 하지만 친한 남자 사람 친구에게 부탁해 버리는 신발 하나를 얻었다. 차마 속옷을 달라기엔 무안해서 포기했다.


대신 사이즈가 엄청 큰 티셔츠를 하나 샀다. 그것을 옷걸이에 걸어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걸어뒀다. 그것들은 기본적인 조치였지만 나를 지켜내기엔 어쩐지 빈약했다. 그 옷가지 하나가, 신발 한 켤레가 나를 지켜주는 건 터무니없는 비약이었다.




처음 독립을 하고 두 달 정도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물론 그 이후에도 요리를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다). 씨리얼과 빵, 과일 정도가 다였다. 조리도구도 제대로 구비하지 않았고 음식 하는 시간이 귀찮았다.


거나하게 한 잔 걸친 다음날 아침이면 중화요릿집에 고추짬뽕을 주문해 먹었고, 기름기가 도는 음식이 생각날 땐 왕돈가스 집에 전화를 걸어 1인분을 주문해 먹곤 했다. 치킨을 주문해 3회분으로 나눠 먹은 적도 있다. 그래도 얼마간은 문제가 없었다. 독립 후 첫 번째 집들이 전까지는.


조리도구가 없으니 독립한 집에 찾아온다는 손님들에게 당연히 배달음식을 시킬 수밖에 없던 날이었다. 친분이 있는 후배 세 명이 찾아온 날이었다. 떡볶이와 치킨을 주문해 함께 먹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네 명이 모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었고, 맥주도 한 잔 걸치며 동그랗게 모여 앉아 한창 떠들고 있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눌러쓴 배달원이 서있었다.

“보쌈 시키셨죠?”

“아니요. 안 시켰는데요.”

“시키셨잖아요. 여기 601호 맞는데요.”

“아니, 안 시켰어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이 말을 남기고 황급히 문을 닫았다. 주문하지 않은 보쌈 이야기를 꺼내니 당황스러웠다. 다시 중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인종과 함께 굵직한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보쌈, 시키셨죠? 저기요. 보쌈 시키셨잖아요!”


배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어리둥절해졌다. 다행인 건지 일행 중에 남자후배가 한 명 있었다. 남자후배는 자신이 나가보겠다며 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몇 마디 말을 하고 남자후배가 들어왔다.


얼핏 들리는 소리로 배달원은 “에이씨!”와 비슷한 말을 내뱉고 승강기를 타는 것 같았다. 몇 초 정도 공백을 두고 남자후배가 입을 열었다.

“돌려보냈는데, 누나. 근데 있잖아.”

“응?”

“보쌈 배달 왔다고 하지 않았어?”

“응. 보쌈.”

“그런데 그 사람 손에 아무것도 없던데?”


다시 몇 초 정도 공백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이내 눈물이 터졌다. 공포가 나의 첫 독립생활에 스타트를 끊었달까. 그리고 며칠간 나는 방에 불을 켜고 잤다.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보조키를 설치했다. 그래도 악몽은 보름 가까이 연을 이어 나갔다.




그 이후로 그릇에 담긴 배달음식을 주문한 적이 없다. 한 번은 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건물 1층으로 주문했다. 배달원으로부터 전화가 오자 나는 계단으로 한 층 위로 올라간 다음 그곳에서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피자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내 집의 한 층 위로 올라가 내린 다음 계단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몇 층에 사는지도 알리고 싶지 않을 정도의 공포와 불신. 그런 공포를 가득 담은 피자가 맛있을 리가 없었다. 그 후론 피자조차 주문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왠만하면 이제 요리는 직접 합니다. 마지막 피자 주문이 언제였더라... ;ㅁ;


그 후 맛있는 배달음식은 결혼 후에야 먹을 수 있었다. 남편과 신혼집에서 처음 중국요리를 시켜먹던 날, 티셔츠에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로 돈을 지불하고 요리를 받는 남편이 황당하면서도 신비로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팬티만 입고 당당하게 배달음식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함과 편안함이라니. 나는 평생 용기를 짜내도 팬티 차림에 배달음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혼자 집에서 일하다 보면 간혹 중국집의 볶음밥이 먹고 싶고, 왕돈가스나 김밥을 주문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자주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간혹 그런 욕구가 강하게 밀려오는 날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문하지 못한다. 괜한 걱정일 것이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괜한 기우일 것이고, 친절하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요식업체 직원들 입장에서는 매우 서운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현관을 쉽게 열지 못하는 나는 가슴을 졸이느니 집에서 흔한 밑반찬을 먹는 편이 좋다. 한 번 갇혀버린 공포는 입체적이다. 평면의 공포는 종이처럼 접어서 버리면 그만. 입체의 공포는 척추 주변으로 교묘히 숨어 있다가 찰나의 순간에 현실로 뛰쳐나온다. 과거에 느낀 공포를 현재에 다시 만나는 기분이란, 말도 못 하게 생경하고 끔찍하다.


배달음식이 꼭 먹고 싶을 땐, 머릿속으로 상상을 한 후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오늘 탕수육이 먹고 싶어. 오늘 볶음짬뽕 어때? 여보, 반반 치킨에 맥주 콜?


그런 날엔 트렁크 팬티를 입고 당당하게 음식을 받는 남편이 곁에 있다. 트렁크 팬티 밑으로 수북한 다리털이 보이면 마음이 어찌나 편안한지. 공포 따위 끼워줄 틈이 없도록 털이 성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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