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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6. 2017

남은 사용기한은 즐겁게

몸의 각 부위가 갖고 있는 사용기한


신체부위는 사용기한이 있고, 정직하게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전신이 동일한 시간을 살지만 부위별로 늙어가는 속도와 정도는 다르다. 그래서 고장 난 부위에 따라 병원은 인산인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젊은 사람보다 중년과 노년의 사람이 많다.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건 고장 난 부위를 남들에게 드러내는 일이다. 조금씩 다른 속도와 정도, 슬프지만 빠짐없이 전신이 건강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체의 사용기한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치사한 면은 ‘가족력’이 아닐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고, 그것이 유전자든 생활환경이든 어느 조건에 따라 닮았다는 건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다. 그 슬픔을 딱 세 글자에 담에 가족력이라 부르며 사람들은 무심하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가족력이 있나요?”라고 말이다.


언젠가 묻지도 않은 가족력을 털어놓은 친구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20대 후반이었고 매우 건강했다. 어떤 모임 전 틈새 시간이었을 것이다. 애매한 시간에 카페에 들어가 함께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나는 2년에 한 번씩 암 검사를 받아.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 큰아버지도 암이셨어. 가족력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릴 수 있으니 미리 검사를 받는 거야.”

갑작스러운 가족의 병력 고백에 흠칫 놀랐다.


“가족력이 있어서 슬퍼?”

“나는 괜찮은데 나중에 내 아내가 될 사람이 슬프지 않을까? 그리고 아내 입장에선 잘못 걸렸다고 생각이 들면서 열 받을 수도 있지. 왜 하필 암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남자랑 결혼했을까,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가족력을 확실히 설명할 생각이야.”

“결혼이 설렁설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문제로 열 받아하겠니. 상대가 열 받을 건 너무 걱정하지 마. 오히려 책임감으로 똘똘 뭉칠 수도 있지.”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이미 말기였고 나 군 복무 중에 돌아가셨어. 아주 짧은 기간이었어. 어이없었지. 화도 나고. 그런 감정 아닐까?”


그 말을 털어놓는 친구의 얼굴은 씁쓸했다. 큰 병에 걸렸던 가족의 기억은 담담한 척할 수 있지만, 결코 담담해질 수 없다. 요즘은 연락이 닿지 않는 그 친구가 좋은 여자와 결혼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지만 암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는 요즘, 그것은 꼭 가족력이 아니라 신체의 사용기한이 다 된 거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친구의 아버지는 위의 사용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어쩌면 남들보다 용량이 조금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한이 다 됐을 무렵 암이라는 아픈 병에 걸렸던 것. 가족력이라는 비뚜름한 잣대보다 사용기한 완료가 내겐 더 현실적이다.




이런 시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신체의 사용기한은 정말 제각각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생선가게를 하셨다. 어릴 적 기억에서 할머니는 늘 두툼한 옷을 입고 얼음을 날라 생선과 조개에 부었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생선과 물을 가득 담는 것도 할머니의 몫.


키는 내 어깨만치도 안 오는 아담한 몸으로 무겁고 큰 것을 나르고 팔던 할머니는 양팔과 무릎의 관절이 다 닳아버렸다. 수술을 받아 인공관절을 넣었지만, 젊은 사람처럼 씽씽 달릴 정도는 못 되셨다. 천천히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 할머니의 사용기한은 고된 일로 앞당겨진 것이다.


내 엄마는 이른 나이에 시집을 왔고 딸 셋을 낳았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없어도 자식들 먹거리만큼은 신경 써서 넉넉히 먹이는 분이셨다. 200포기의 김장김치, 과자 하나 사 먹이지 않고 손수 반죽해 만들어 먹이던 정성이며, 먹성 좋은 자식들 때문에 무엇 하나를 만들어도 하루 종일 서서 주방일을 하셨다. 가게를 차린 이후로는 바깥일도 병행하셨고, 식당을 차렸을 때는 더욱 많은 일을 하셨다. 엄마의 쉬는 모습보다 일하는 뒷모습을 많이 봐왔다.


엄마는 3년 전 어깨 수술을 받았다. 어깨의 연골이 다 닳아 몹시 아파하신 뒤 겨우 수술을 하셨다. 엄마의 어깨는 적당한 사용기한이 있었을 텐데, 내가 실컷 먹어재끼던 도넛 반죽에, 카스텔라 거품에, 김치전 부침질에 다 닳아 없어졌다. 사용기한을 당겨 쓰신 것이다.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내 어깨도 아프다고 느꼈다. 엄마의 사용기한을 내가 당긴 것 같아 미안했다.


신기한 것은 30대의 몇 해를 살고 보니 내 몸의 사용기한이 조금씩 느껴진다는 점이다. 20대에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자리에서 건강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네, 건강합니다!”라고 자부했던 난데, 지금은 누가 건강하냐고 물으면 “음?”하고 뜸을 들인다. 전반적으로 건강한 것 같지만 사용기한을 당겨 쓴 신체부위가 몇 군데가 동동 떠오른다. 그렇다고 “큰 병은 없지만 잔병이 수두룩합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부끄럽다. 대충 뭉개고 넘어가고 싶은 질문이다.



요 며칠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목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영 불편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침에 병원을 찾았다. 식도염이라고 했다. 의사는 신경을 많이 쓰고 잠을 잘 못 자면 이런 증상이 잘 온다고, 평소에 비슷한 증상이 있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평소 스트레스가 심할 때 위경련을 앓곤 하는데 그와도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의 위 사용기한은 평균보다 조금 짧을 수 있겠구나!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오니 짧게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담담한 척이 아니라 정말 담담했다. 그저 위의 사용기한을 좀 덜 받았을 뿐이니 평균 이상을 먹거나 자극을 주지 않으면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금 내 위의 나이는 40대 초반쯤 되지 않을까? 청력도 안 좋으니 아마 청력은 40대 중반쯤, 다친 이후로 종종 아픈 무릎도 40대 중반쯤. 그래도 괜찮다. 화장을 자주 하지 않는 피부는 20대 후반쯤, 양치질을 잘 한다고 치과에서 늘 칭찬받는 치아도 20대 중후반쯤일 것이다.


내 안에 가득 담긴 기관들은 기한이 얼마나 남았을까? 남은 나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몸 스캐너가 있다면 편리하겠다. 하지만 기한을 몰라도 나쁘지 않다. 신체라는 큰 틀 안에 담긴 각양각색의 부위들이 조금씩 다른 사용기한을 받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사용할 수 있는 동안 즐겁게, 남김없이 살면 아쉬움 없이 기한 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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