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공터에서>

우리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

by 귀리밥

올해 초봄, 김훈 작가의 <공터에서> 북토크에 다녀왔던 기억이다. 당시에 적어둔 글을 조금 정리해 이제야 브런치에 남겨본다.




며칠 전 ‘북토크’ 행사에 다녀왔다. ‘북토크’는 신조어 같다. 신간을 낸 작가와의 만남을 ‘북토크’라고도 부르나 보다. 나는 누군가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는 게 갈수록 민망하고 어색해져서 이런 행사에는 잘 참여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팬심이 있다 해도 간접적으로 대상을 지켜볼 수 있는 강연은 스스럼없이 갈 수 있다. 하지만 토크쇼와 같은 행사는 어쩐지 그 자리에서 “작가님, 좋아합니다.”, “진짜 좋아합니다.”와 같은 고백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행사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는 평소 존경하는 김훈 작가라 주저 없이 신청했다. 그의 문장은 뼈저리다. 맹수처럼 할퀴는 아귀힘도 있다. 하지만 숱한 고민 없이는 결코 써 내려갈 수 없는 문장, 얼마만치의 삶을 살아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어둑한 문장. 그것이 내가 김훈 작가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다.


행사일은 다행히 날이 좀 풀렸다. 요즘 계속 날씨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고, 길이 꽁꽁 얼어붙어 보도블록도 건드리면 깨질 것만 같았다. 추위 때문에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나의 외출을 반기는 듯, 날씨는 포근했고 햇살은 등을 덥혀줬다. 남편의 회사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한 뒤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서둘러 일찍 갔음에도 행사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나이도 외모도 분위기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책을 손에 들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었다. 입구에서 음료를 받아 들고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작가의 신간을 꺼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아스테이지로 싸여있었다. 나는 몇 명의 특정 작가의 책 외에는 가능한 도서관을 이용한다. 책장을 꽉 채우는 것을 싫어하는 게 큰 이유지만, 공공서비스는 최대한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북토크라는 행사에 와보니 책을 구입하고 행사에 신청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반드시 책을 구입해야만 작가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경의 정도에서 내가 조금 후순위는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셋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살펴보니 둘째 줄까지만 소파 타입의 의자였고, 내가 앉은 줄부터 접이식 간이의자였다. 둘째 줄에는 빈자리가 없어 셋째 줄에 앉았는데, 당시에는 이 차이가 큰 고통으로 전이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후 행사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곧 김훈 작가와 행사를 진행할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올해 칠순이 된 작가는 머릿속 상상보다 노쇠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작가는 평소 즐겨 쓰는 모자를 행사장에도 쓰고 왔는데, 앙증맞은 주황색 모자 옆으로 백발이 성성했다. 힘 있고 거친 문장이 특징인 작가인데, 실제 모습은 다소 어수룩해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신만은 날이 서있고 꼿꼿한 노인의 모습이랄까. 한 가지 인상이 아닌 여러 인상을 신체의 최대한 많은 면을 사용해 보여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작가는 무대에 마련된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한쪽 다리를 반대편 다리 위에 얹으며 자연스레 올라간 바지통 밑으로 마른 종아리가 보였다.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작가는 이제 노화를 숨길 수 없게 됐고, 또한 그 모습을 숨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들춰 보이고 있었다.


작가의 신간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겪는 한 가정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피난지에서 만난 남녀가 부부를 이루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해 남은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한 과정이 따뜻하고 포근한 가정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백의 사람들이 몸을 욱여넣은 축사와 같은 곳에서 자식이 태어나고, 미군의 구두를 닦으며 초콜릿을 구걸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만들어낸 의미 없는 훈장, 서로 엮이기 싫어 외면하는 가족과 형제들. 그들의 이야기는 춥고 지난했으며, 피부의 소름과 소름 사이에 끼어있는 때로 느껴졌다.




작가가 가상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는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일들을 서슬 퍼렇게 써 내려간 소설이었다. 행사 중 독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순서가 있었고, 이번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냐는 질문이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 만든 이야기이며, 자신과 가족의 역사라고 말했다. 덧붙여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생활의 외곽을 겉도는 이들의 역사라고도 했다.


가족의 역사, 외곽을 겉도는 이들의 역사. 문득 사회의 중심에서 흔적을 남기는 이들의 역사는 참 많이도 소개되는데, 겉도는 이들의 역사는 찾아보기가 몹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상위 10%의 역사와, 하위 10%의 역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은 상위 10%의 역사를 궁금해한다. 어떻게 공부해서 성공했고,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지, 혹 자수성가를 했다면 남다른 성공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고,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들려주고 책도 한 권씩 출판한다. 하지만 하위 10%의 역사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빈곤, 절망, 불행의 스토리를 기분 좋게 들어주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하위 10%의 역사를 일종의 ‘부고’와 같다고도 생각한다.


이밖에도 작가는 여러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 중에는 내가 행사 전에 신청한 질문도 나왔다. 재미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역시 내 안에 팬심이 녹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북토크는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됐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꼬리뼈가 저려왔다.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보고, 허리도 쭉 펴봤는데 계속 저렸다. 앞줄 소파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편안한 자세가 부러웠다. 꼬리뼈를 비롯한 허리와 골반의 저림은 계속됐다. 행사가 끝날쯤에는 좌판이 손바닥 만한 간이의자를 설치한 주최 측이 원망스러웠다. 작가의 목소리가 아픈 내 꼬리뼈를 타고 흘렀다. 내 옆자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양 옆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다리를 계속 움직이거나, 어깨를 두들겼다.


이윽고 행사가 마무리되자,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벌떡 일어났다. 마치 망설임 없이 일어나기로 약속한 것처럼 모두 일어나는 데 1초도 안 걸렸다. 존경하는 작가와의 시간이 끝나 아쉬운 마음 절반, 이제 간이의자에서 해방이라는 즐거운 마음 절반이었다. 모두 개운한 표정으로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밖의 날씨는 여전히 포근했다. 행사장 안에 열과 행을 맞춰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의 문으로 나와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누구는 주차장으로, 누구는 편의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전철역과 놀이터로, 또 어디로. 짐작할 수 없는 어느 장소로 약속된 것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토크 중에 들었던 사람의 역사는 이렇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짐작할 수 없는 걸음, 목적지가 있고 무언의 약속이 정해진 곳으로 사람들은 움직이며 역사를 쓰고 있는 것. 내게 있어 그날의 역사에는 간만의 외출과 또 간만의 봄 날씨, 남편과의 만남, 노쇠한 작가의 기침 어린 목소리, 홍대입구역 방향으로의 걸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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