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24 _ 독서노트
“홀로 걷는 순간, 나는 온전히 나 스스로에게로 돌아간다.”
작가의 이 말 한마디에, 책 제목에서 느낀 끌림이 더 깊어졌다. 클럽창비 2기 인문교양 도서 중 무엇을 읽을까 망설이다가 이 책을 집어든 건 잘한 선택이었다.
중국 여행이라고 하면 베이징과 상하이를 회사 동료들과, 여행객 무리 속에서 우르르 다닌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중국은 전혀 달랐다. 작가는 홀로 도시의 풍경을 걷고, 그곳의 역사와 문화, 인물들의 흔적을 인문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음식과 건축, 작품과 역사를 엮어내며, 독자에게 도시를 걷는 듯한 생생한 감각을 전해준다.
베이징 – 행복한 삶의 조건, 영원히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상하이 – 삶의 경계와 허상을 넘는 욕망
시안, 옌안 – 혁명으로 달려가는 지식인의 마음
지난 – 붉은 수수밭의 생명력은 어떻게 퇴화했는가
사오싱 – 나를 보호하는 정신승리의 빛과 그늘
항저우 – 고난을 대하는 한 가지 삶의 철학
하얼빈 – 의로움을 위해 산다는 것
각 도시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유명인과 작가, 대표작이 있다. 저자는 작품 속 배경이 된 골목과 건물을 찾아 작품과 역사를 나란히 보여준다.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현지에서 체험하는 듯 생생한 감각을 들려준다. 흑백 사진 몇 장만으로도, 독자는 시대 속 인물이 되어 거리와 가게를 거닐고 음식을 맛보게 된다.
읽다 보니 중국과 한국의 정신적 바탕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중국의 작가들과 주인공들은 대체로 자신의 힘든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극적으로 복수하거나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출구 없는 현실을 버티며, 운명과 우정을 맺고, 정신승리에 기대어 살아간다. 삶을 버티는 것, 생존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다.
동양의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은 운명에 대한 순응과 인내를 미덕으로 삼는다. 이는 유교 사상에서 강조하는 '천명(天命)' 사상과 맞닿아 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즉 하늘의 뜻을 거스르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정신승리: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는 현실의 패배를 정신적인 승리로 바꾸며 살아간다. 이는 비록 풍자적이지만, 절망 속에서 버티며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정과의 화해: 운명을 탓하기보다, 소박한 기쁨과 인간적 관계 속에서 버티는 모습은 ‘생존’ 자체를 귀하게 여긴다. 서로 의지하며 고통을 견디는 이야기는 동양 문학이 전하는 잔잔한 감동이다.
반대로 서양 문학, 특히 미국 문학에서는 개인의 의지와 투쟁을 중시한다. ‘아메리칸드림’이 상징하듯, 개츠비는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하고 신분 상승을 이루려 한다. 동양 문학의 주인공들이 거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현실을 견디는 태도는 이와 대조적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책 한 권 손에 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낯선 거리를 홀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