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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를 읽고

예술 노마드의 향유 #25 _ 독서노트

by 딸리아

조지 오웰은 보통 정치적 작가, 특히 전체주의 비판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작품에는 실존주의적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1984는 개인의 자유, 소외, 선택, 고독, 존재의 의미 상실과 같은 실존주의적 주제를 강력하게 다루며, 전체주의 체제 앞에서 개인의 실존적 투쟁이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비극적 서사는 독자에게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실존주의의 핵심 사상과 '1984'의 연관성


① 자유 의지 vs. 결정론

실존주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간다. 샤르트르의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84: 윈스턴은 처음에 자유롭게 사고하고 반항하려는 의지를 가진다. 그는 ‘자유는 2+2=4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당의 통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진실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101호실의 고문을 거치며 그의 자유 의지는 완전히 붕괴되고,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자유가 체제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를 드러내며, 실존주의적 투쟁의 좌절을 상징한다.


② 인간의 소외와 부조리

실존주의: 인간은 의미 없는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며, 여기서 소외와 부조리를 경험한다.

1984: 윈스턴은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극심한 소외감을 느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마저 억압받는다. ‘2 + 2 = 5’라는 객관적 진리마저 부정당하는 현실은 인간 이성의 부조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③ 책임과 선택

실존주의: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통해 존재를 규정한다.

1984: 윈스턴은 당에 반항하기로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자신과 줄리아의 배신으로 귀결된다. 선택의 책임이라는 실존주의적 과제는 전체주의의 압도적 권력 아래서 무력화되고,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존재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④ 개인의 고독과 실존적 불안

실존주의: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며, 그 속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는다.

1984: 윈스턴은 체제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 개인이다. 줄리아와의 관계는 실존적 연대(Authentic relationship)의 가능성을 암시했지만, 고문 이후 그 관계마저 파괴된다. 결국 그는 사랑의 감정마저 소멸한 채, ‘빅브라더를 사랑한다’는 비인간적 상태에 도달한다.


1984는 단순히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넘어, 자유를 잃은 인간이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진다. 오웰은 살아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삶, 즉 육체는 남아 있으나 영혼은 죽은 상태를 통해 실존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오늘날 AI와 디지털 권력이 확장되는 시대에 이 질문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진실이 조작되고, 감정이 사라지며,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을 상실할 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하는가? 소설 1984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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