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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읽고

예술 노마드의 향유 #19 _ 독서노트

by 딸리아

출판 편집자는 단순한 교정자가 아닌 콘텐츠 제작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컨셉기획, 범위관리, 인력관리, 비용관리, 일정관리 등 총체적인 업무를 맡는다. “아빠와 50년째 살고 있습니다만”을 출간하면서 경험한 바를 도서 “책 만드는 일”에서 소개된 과정과 비교해 보았다. 출판사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협업을 하게 되는데, 작은 출판사의 경우 출판 편집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과정이 일어난다.


책을 출간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특히 자전적 내용을 담은 책은 더욱 그렇다.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되새기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빠와 50년째 살고 있습니다만‘은 1970년생 네 자매의 둘째 딸인 제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에세이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한 나이 쉰 즈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생전 가보지 않던 피정을 떠나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이후로 '나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살아왔나' 등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글을 나누고 토론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있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던 근원적 동력 중 하나는 '아빠'이다. 글을 쓰면서 아빠와 나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때마침 내 나이 오순, 아빠 나이 팔순이라 기념하는 의미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게 된 편집자와 함께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편집자는 나의 초고를 읽고, 기획 의도와 개요, 대상 독자, 그리고 장르 등을 함께 논의하며 책의 방향을 설정했다. 편집자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러 번의 수정과 토론이 이어졌다.


원고가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문장을 다듬는 윤문 과정이 시작된다. 편집자와 잦은 소통이 필요하다. 편집자는 나의 불성실하게 보일 수 있는 표현이나 뉘앙스, 쓰임새 등에 대해 정확하게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묻고, 일정 부분의 수정을 제안하고, 다듬어진 문장에 대해 확인을 요청한다. 나의 경우, 2019년 12월에 원고를 넘기고 스페인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중에 이러한 윤문 편집 작업이 일어났다. 하루종일 수업과 과제를 끝내고, 밤에는 원고를 검토했다.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표현을 내가 왜 사용했는지 의아해 하면서 편집자가 제안하는 방향을 참고해서 수정을 했다. 이렇게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글이 점점 완성도를 더해갔다.


책의 시각적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북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이다. 북디자이너는 작가의 의도와 글의 특성,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내 책표지 그림은 '아빠'라는 큰 바위에 기대고 있는 '나'라는 돌맹이를 묘사하였다. 북디자이너는 이 이미지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배경색과 폰트 등의 요소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표지뿐만 아니라 책의 크기와 본문 레이아웃도 중요한데, 글의 분위기와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독자가 읽기 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출판사와의 협업은 계속된다. 서점에 책을 배포하고,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논의한다.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국내 서점가에 어떻게 책이 배포되었는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기 위해 어떤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지 점검한다. 글만 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출판사와 작가는 판매부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수행해야 한다.


SNS로 가입된 모임마다 책 나온다고 알리기를 반복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에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느냐가 나와 같은 초보 출간자에게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이다. 책의 인기는 서점에 깔린 후 3-4일, 길게는 일주일이면 결판났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 무섭게 바로 신규 출간된 책들이 치고 올라오고, 책의 위치도 주요 가판대에서 책장으로, 서고로, 끝내 창고로 빠르게 옮겨갔다.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가끔 올라오는 서평에서는 딸 넷을 둔 가족의 보편적 이야기, 둘째 딸의 독립심, 시대 잔상, 아버지와 딸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공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그린 글인 줄 알았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동갑내기 부모님의 팔순 선물로서, 그리고 내 인생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만족한다.


책을 출간하는 과정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전문가들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와의 소통, 글 다듬기 윤문 과정, 시각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북디자이너의 역할, 출간 전후 마케팅 전략을 담당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협업의 결과로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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