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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뮤익(Ron Mueck) 전시

예술 노마드의 향유 #20

by 딸리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겐 예술가의 자질이 있다.

예술가는 보다 섬세하게 관찰하고, 오감을 동원해 세상을 해석한다.

예술가는 보다 끈질기게 구현하며, 반복조차 의미 있는 행위로 바꾼다.


분야의 고수는 결국 예술가다.

흘려보낼 수 있었던 포인트를 붙잡고,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을 포착한다.

하나씩 엮어 무언가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이리저리 바라보며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해볼까?” 하는 미세한 충동을 흘려보내지 않고,

“이렇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며,

“이게 어렵다면, 저렇게는?” 하며 방향을 잃지 않는다.

KakaoTalk_20250613_095220283_17.jpg 나뭇가지를 든 여인

론 뮤익은 그런 고수였다.

독일계 조각가였던 아버지에게서 조각 기술을 배우고,

영화와 TV 특수효과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96년, 아버지를 모티프로 한 1/3 크기의 시체 조각 Dead Dad로 현대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의 대표 작가인 그는

인간의 몸을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재현하면서도,

그 형상 안에 침묵과 감정, 상실과 고독의 농도를 스며들게 한다.

KakaoTalk_20250613_095220283_18.jpg 마스크 II

그의 조각 앞에 선 나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늙음,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관람자가 아니라

민낯을 드러낸 전시품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다잡고 그의 표정을 바라보는 내내, 시간은 멈췄고.

그와 나는 하나가 되어,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뮤익은 작품 하나를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완성한다.

영상 속, 섬세한 표피 처리와 털 한 올 한 올을 붙이는 장면에서

그들은 수공예 장인들이었다.

KakaoTalk_20250613_095220283.jpg 론뮤익의 작업실

Mask II, 나뭇가지를 든 여인, Chicken/Man,

침대에 누운 여인, 젊은 연인, 유령, 쇼핑하는 여인, 배에 탄 남자, 어두운 장소 …


KakaoTalk_20250613_095220283_02.jpg 어두운 장소

그는 단순히 ‘인간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과 잊힌 감정의 흔적을 우리에게 꺼내 보이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니’
‘나만큼 살고 있니’
‘왜, 지금 이걸 고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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