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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E DOG을 읽고

예술 노마드의 향유 #21 _ 독서노트

by 딸리아

나이키 창립자 Phil Night는 본인이 왜 슈독인가에 대해 전하고 있다. 1962년 신발산업에 뛰어든 이후 지금의 Nike가 있기까지 무엇을 했고, 겪었고, 대응했는지 연차별로 그의 기억을 더듬었다.

책을 읽으며 생겨난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며 책을 덮으려 한다.


1. 왜 오니츠카 인가?


1960~70년대, 오니츠카 타이거는 일본 신발 산업의 선두주자였다. 고무 운동화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기능성 스포츠화는 미국 시장에서도 성능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세계 신발 산업의 중심은 단연 아디다스와 푸마였다. 많은 스포츠맨들이 이들의 스폰서십을 받고 있었고, 글로벌 브랜드의 위상은 압도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Phil Knight은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에 열정을 쏟았다. 갖은 수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열정을 쏟아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대학 육상선수였던 Phil Knight에게 오니츠카 타이거는 단순한 운동화가 아니었다. 그는 그 신발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미국 총판을 자처했다. 단순한 수입상이 아닌 파트너로서 접근한 그는, 제품에 대한 신뢰와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 그리고 기술력에 대한 직관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거래를 넘어 미래 산업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은 정밀 제조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었고, 오니츠카 타이거는 그 흐름의 선두에 서 있었다.

한편, 같은 시기의 한국은 인건비가 낮은 생산지로 주목받으며, 나이키의 OEM 생산기지 중 하나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Phil Knight의 눈에는 일본은 제품의 본질이었고, 한국은 그 생산의 기반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었다.


2. 그는 어떤 형의 리더인가?


Phil Knight는 전략가이자 리더로서 행동한 인물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은 아니었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던 그였지만, 목표가 생기면 단숨에 달려갔고, 손에 넣은 뒤에는 그 대상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폈다.

그의 머릿속에는 늘 숫자가 있었다. 현금 흐름, 재고 수량, 판매 추이, 이익률 같은 숫자들이 그의 리더십을 현실에 붙잡아 두었고, 이는 조직을 생존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하나의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래 고민했고, 동료들과 끝없이 토론했으며, 결국 어느 순간 단호하게 'Deal'을 외쳤다. 그의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결정의 순간에서 빛났다.

“People pay too much attention to numbers” 1975년, 이 말은 그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Phil Knight는 구성원들을 숫자나 역할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었고, 그들이 회사 안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신발은 자유다”라고 외치던 그가 만든 조직문화는 성과보다 의미, 열정, 그리고 운동하는 인간에 대한 철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사업적으로는 허술했고, 자금 관리에는 약했으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그는 비전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비전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영입한 사람들은 성격도 역량도 제각각이었지만,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열망은 강하게 공유되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는 점차 변화했다. 실적에 따라 보상과 자율성을 차등 적용하고, 위기 시에는 예외적으로 개입해 문제를 수습했다. 재무 시스템과 법적 구조를 정비하면서, 조직은 이상에 기대는 집단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업으로 변화해 갔다. 그는 점차 ‘의미를 추구하는 리더’에서 ‘의미를 유지하는 리더’로 기능하게 되었다.

Phil Knight는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리더였지만,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에 대한 애정, 사업에 대한 직관, 그리고 숫자에 대한 집요함이 그의 전략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삼각형이었다.

3. 사람의 역량은 발견되는가, 만들어지는가?


나이키의 핵심 멤버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만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오리건 대학교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은 신발의 기능성과 성능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그의 집요함은 나이키 제품의 기술적 기준이 되었다.

제프 존슨(Jeff Johnson)은 나이키의 첫 번째 정규직 직원이자 판매 전략가였다. 소비자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쓰고, 매장 디스플레이와 광고 문구까지 직접 만들었다. 브랜드 이름 ‘Nike’도 그의 제안이었다.

밥 우들(Bob Woodell)은 전직 육상선수였지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채 휠체어에 앉아 회사의 운영을 맡았다. 그의 냉정하고 유능한 실무 감각은, 커져가는 나이키의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로브 스트라서(Rob Strasser)는 법무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담당하며, 법적 위기에서 회사를 지켜냈고, 나이키의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세웠다.

이들은 시작부터 완성형 인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사회적 기준에서 비주류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된 신념을 품고 있었다. 신발에 대한 집착, 품질에 대한 고집, 러너를 향한 존중. 이 정서적 동질감이 나이키라는 조직을 움직이는 엔진이었다.

조직에는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역량이 있고, 각 자리마다 고유하게 요구되는 역량이 있다. Phil Knight는 사람을 볼 때, 먼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공명하는 사람에게 끌렸고, 그들과 비전을 공유하며,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Phil Knight는 실력보다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성장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해 나갔다. 역량은 조직 안에서 발현되고, 조직 안에서 만들어진다. 그가 만든 환경은 사람들의 가능성을 끌어올렸고, 그 힘을 받아 각자가 만들어졌다.


4.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의 집은?


Phil Knight은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닮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신중하고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Phil은 늘 불확실성을 택하는 이상주의자이자 모험가였다. 아버지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고, 그는 일본으로 날아가 작은 신발 브랜드를 들여오는 불확실한 선택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았다.

Phil은 아버지와 상의했고, 조언을 들었으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조용히 앉아 있는 아버지의 존재가 있었다. 간섭하지 않지만 그의 등 뒤에서 Phil은 단단하고 묵직하게 인생의 균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리클라이너에 앉아 인생 전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긴장도 평가도 없는 대화의 시간 속에서 Phil은 견딜 수 있는 힘(Persistence),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Resilience)이 길러냈다.

리클라이너의 장면은 ‘Just Do It’이라는 나이키의 철학이 단순한 충동이나 무모함이 아니라, 깊은 내면과 오래된 관계 속에서 다듬어진 신념임을 보여준다.

그는 홀로 세상을 상대하는 사업가였지만, 항상 한쪽 자리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내면을 지탱해 주었다.

그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듯, Phil Knight 역시 모든 갈등과 성장의 끝에서 조용한 확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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