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22 _ 독서노트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오늘날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틱톡, 유튜브 숏츠 같은 짧은 영상에 시간을 보내고, 십여 분 남짓한 동영상도 요약본을 찾아본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과연 우리는 여전히 책 중심의 깊은 사고와 성찰만을 고집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사고 방식에 눈을 돌려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매체가 사고 방식을 바꾸어간다면, 결국 그 끝에는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는 인간의 적응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뇌의 가소성
디지털 시대의 하이퍼링크, 멀티태스킹, 실시간 정보 흐름은 뇌를 단편적 정보처리에 적응시키고 있는 반면, 통찰과 집중, 숙고, 장기 기억 등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즉 디지털 환경은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정보의 맥락을 파악하거나 숙고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기억의 아웃소싱과 뇌의 인덱스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의 뇌가 모든 정보를 직접 기억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위치 정보'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이 주는 즉각적이고 파편적인 정보 습득 방식이 깊이 있는 내면화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
고요함 속 독서의 쾌락 (몰입)
고요함 속에서 책을 읽으며 온전히 내용에 빠져드는 경험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얻기 어려운 특별한 쾌락이자, 진정한 사고의 과정이다. 인터넷이 주는 자극과 방해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깊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 즉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Beyond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니컬러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은 인터넷과 스마트기기가 인간의 집중력과 깊이 있는 사고를 위협한다고 경고한다. 과연 우리는 그의 경고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변화 속에서 '재구성하는 사람들'로 진화할 것인가?
그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뇌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깊은 독서나 사색 대신,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기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뇌의 가소성"으로, 뇌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환경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소성을 단순히 우려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인간 지성의 가능성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즉 인지적 사고(cognitive thinking)의 쇠퇴를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구성적 사고(constructive thinking)로의 진화를 탐색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구성적 사고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 재조합하는 사고력이다.
■ 뇌의 가소성: 변화하는 인간의 지성
인간의 뇌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재배선(rewire)된다. 디지털 환경, 즉 멀티태스킹, 하이퍼링크, 실시간 정보의 흐름은 우리의 뇌를 단편적인 정보 처리에 익숙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깊은 사고나 장기기억, 숙고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를 단순히 퇴보로만 볼 수는 없다. 정보가 폭증하는 시대에 뇌는 빠른 분류, 효율적인 선택, 그리고 실행 중심의 정보 처리에 적응해가고 있다. 뇌는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회로를 선택하며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기억의 아웃소싱과 인덱싱: 사고의 구조 변화
과거에는 아는 것 자체를 지식이라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인간이 직접 아는 지식을 줄이고, 외부 지식의 위치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뇌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라, 지식의 연결자이자 큐레이터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뇌의 인덱싱화이며, 인간이 AI와 협력하여 의미를 재조합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직접 아는 지식이 아니라, 찾을 수 있는 지식을 연결하는 메타인지적 판단력이다.
■ 몰입의 전환: 고요한 독서에서 역동적 사유로
과거, 고요한 독서 속에서의 몰입은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몰입은 영상, 피드백, 멀티채널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몰입의 쇠퇴'가 아니라 '몰입 형태의 변화'이다. 몰입의 본질은 '의미와 감각의 밀착 경험'이며, 그것이 조용한 방에서의 독서이든, 가상현실에서의 인터랙션이든 그 핵심은 같다. 새로운 시대는 몰입의 형태를 확장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내면 탐색과 창조적 연결을 경험하고 있다.
■ 인간 능력의 재정의: 리더십과 관계력으로
컴퓨터, AI의 발달로 인간의 인지 능력은 주요 핵심 역량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이를 인간 능력의 감소로 단정하기보다는, 인간이 '이것 대신에 무엇을 더 잘하게 되었는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력을 대신해 인간이 갖추게 된 것은 처리 지시력, 의미 평가력, 윤리 판단력, 공감 능력 등과 같은 리더십이다. 디지털 개체가 아무리 정보처리에서 우위를 점하더라도, 인간의 '사랑하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AI와 협력하는 존재로서, 인간만이 가능한 고유한 가치—서사화, 의미 구성, 공동체 감수성—를 더욱 사유하게 될 것이다.
■ 공정성의 인지 지도: 가소성과 기회의 불균형
뇌의 가소성은 변화 가능성이자 희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학습 격차와 정보 접근의 불평등은 사회 구조적 차이를 만든다. 이제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더 중요해졌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지적 소양의 감소가 아니라, 시대 전환 속에서 누구도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공정한 학습 환경'이다. 다층적인 정보 속에서 길을 찾는 능력,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역량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진짜 문해력이다.
구성적 사고의 시대를 위하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피상화한다고 경고했지만, 우리는 그 피상성 속에서 새로운 의미 구조를 재구성하는 구성적 사고 능력을 발견하고 있다. 이는 단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큐레이션하고, 윤리적으로 맥락화하며, 감정과 연결하여 삶의 지도로 바꾸는 힘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적 지도를 함께 그려나가고, 미래를 위한 '구성적 사고력'을 키워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