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집중
우리 집에서 ‘나’는 한 명이고, ‘나’이외에 세 명이 더 있다. 집 밖에서도 ‘나’는 여전히 한 명이지만 ‘나’이외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고, 지구촌 인구까지 더해지면 82억이 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나는 오로지 한 명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가 오롯이 느껴진다. 내가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는 그렇다. 누구나 특별하다.
해마다 생각한다. 올해는 뭘 할까?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생각나는 대로 공책에 적어 내려간다. 개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마음껏 쓰고 한번 쭉 훑어본다. 읽다 보니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이 반 이상이나 적혀있다는 것에 행복감이 찾아온다. '나'에게 쏟아내는 관심과 사랑이 이렇게라도 있으니 말이다.
V△X. 이 뜬금없는 표시는 아주 중요하다. 해낸 일에는 V를, 해내는 중에는 △를, 하지 못한 일에는 X를 표시한다. 마치 도장 깨기처럼 나의 일들에 대한 표시를 해나가며 일 년의 시간을 보낸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도, 못한 일들이지만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자며 격려해주기도 한다.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A4사이즈의 주간 계획보드는 체크표시 없이 소소하게라도 하루의 일 중에 몇 가지만 마카펜으로 쓴다. 월요일마다 ‘브런치 글 올리기’를 적고 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루 24시간, 한 달 30일, 일 년 365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다.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다. 어른이 된 기분으로 들떠있던 이십 대에는 꿈을 찾아 헤매느라 그저 그런 시간도, 악착같은 시간도 보냈다. 삼십 대에는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 안에서 적응하고,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다 보니 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요즘은 내 까만 머리에 새치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내 키만큼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삶의 시간은 느긋하지 않고 점점 더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내 인생 속에서 우리 가족을 위한 삶과 더불어 주인공인 나를 다시 불러줄 시간이 왔다.
‘자, 나를 찾아서 집중하자!’ 하면 온 신경이 나를 향해 알아서 가고 있을까? 어떠한 일들에 열중해야 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나, 결국 자신이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과 함께 나를 진심으로 알아가는 여정을 통해서 작은 변화와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나에게 말을 건네며 생각과 감정을 살핀다.
물건이든 관계든,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채워지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 대신에 비워내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나의 생활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더 큰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생각과 비슷한 이들이 있고 아닌 누군가도 있지만 이런저런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에 대해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이다.
하루의 시간 중에 단 몇 분이어도 좋다. 꼭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주로 벼리와 산책길에 떠오르는 생각을 곱씹거나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가볍게 묻는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커피 한잔을 식탁 위에 두고 홀짝거리며 볼펜을 들고 종이에 끄적끄적거리기도 한다. 나는 그 무엇이든 결국에는 해내는 사람이라 믿으며 좋은 마음을 챙겨서 나를 돌볼 때도 있다.
단순한 삶 속의 주연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그냥 좋다. 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걸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내가 좋다. 인생의 최종 목표인 '고상한 할머니', 꼭 아름답게 늙어있는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오늘도 나에게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