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삶은 누구나 누리지만

다용도실 이야기

by 김진심

벼리와 함께 하천이 흐르고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는 여기에서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지 않았을까? 세탁비누나 액상세제도 전혀 없었던 시절에 빨래방망이 하나 손에 들고 물에 적셔진 옷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저런 삶을 살아라 하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옛날 사람들은 크게 불편함을 느끼며 살았다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 같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니 나도 그렇게 사는 거였겠지. 그에 반해 우리는 정말로 이편한세상에서 살고 있다. 점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편리함을 누리고 사는 게 마땅하다는 말처럼 보인다.




다용도실 안에 13년 된 말랑말랑한 재질의 하얀색 빨래바구니 두 개, 하나는 수건과 속옷을 넣고 남은 바구니에는 매일 입는 옷과 양말을 집어넣는다. 세탁물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바로 앞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여 빨래를 시작한다. 소량의 액상세제를 넣어주고 동작버튼만 누르면 기계는 알아서 돌아가고, 알람을 울려 세탁이 끝났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처음은 통돌이 세탁기만, 그다음은 마치 짝꿍처럼 붙어있는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로 4년 차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축축한 빨래를 건조기 통 안에 넣고 기다리면 뽀송뽀송한 상태로 나온다. 내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기계에게 온전히 세탁을 맡길 수 있으니 진짜 편안함에 젖어든다.


또 다른 편리함을 찾아봤다. 그래, 김치냉장고! 빨간 벽돌집에 오기 전까지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가전이었는데, 결혼 후 식구가 늘어났고 부모님께서 이사 선물로 보내주셨다. 매년 11월이 되면 엄마네 모여서 김장을 한다. 이전에는 한 두통만 가져와서 먹고 김치를 다 먹어갈 즈음 다시 가져오는 식으로 지냈다. 김치냉장고가 생긴 후, 1년 치 먹을 김치를 통에 담아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김치뿐만 아니라 콩, 손질한 대파, 요리 시 바로 쓰는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 여러 식재료도 편하게 보관하고 있다.




다용도실은 주방 바로 옆에 있어서 현관만큼이나 많이 드나들고 있다. 전업주부로 사는 나에게 여러모로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공간이면서도 편안함 뒤에 신경 써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집에는 아이들 방에 작은 스테인리스 쓰레기통 두 개와 다용도실에 플라스틱 쓰레기통 하나, 벼리가 쓴 냄새나는 배변패드를 버리는 통 하나가 있다. (배변패드 쓰레기통은 예전에 아이들의 기저귀를 버렸던 통으로 재사용 중) 아이들 방의 쓰레기통을 비울 때도, 대부분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는 다용도실에 모인다.


쓰레기는 절대 보관하는 게 아니다. 종량제봉투에 잘 담고 잘 묶어서 수거하는 장소에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쓰레기가 봉투 하나로 끝나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다용도실에서 나름의 분리배출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고 있나요? 예전에는 종류별로 분리만 잘하면 되었는데, 요즘은 플라스틱 종류도 너무 많고, 택배상자에 붙어있는 테이프는 다 제거해야 하고, 라벨에 쓰인 대로 분리를 잘했다고 하지만 오염된 상태라면 재활용은 어렵다. 최선을 다해서 한다 해도 쓰레기로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일이 많고, 귀찮다고 대충대충 하게 되는 분리배출은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현실이다.




편한 삶의 이면에 필요조건은 틀림없이 있다. 다용도실 안에서 매일매일 돌아가는 세탁기, 건조기, 김치냉장고는 전기가 있어야만 쓸 수 있다. 편하게 먹고 쓰고 입으며 나오는 쓰레기는 분리배출을 잘 지켜야만 재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지구의 자원이 순환하며 다시 편하게 먹고 쓸 수 있다. 사실, 나는 편하게만 살고 싶지는 않다. 삶의 편리함을 마냥 누리기에는 그만큼 외부적인 에너지가 닳고 있는 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것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다용도(多用途), 여러 가지 쓰임새. 쓰임새에 맞는 공간을 원한다면 쓰임에 알맞게 사용하고 그 쓰임을 위해 필요한 전기와 분리배출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천하길, 그래서 편리함을 당당하게 누리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당연한 편리함보다 고마운 편리함을 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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