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이야기
“으.. 이게 무슨 냄새야?” 초등학생 시절, 매년 여름방학이 찾아오면 시골에 계신 이모네를 찾았다. 서울에서는 도통 맡아본 적이 없는데, 이모가 사는 동네에 근접할 때면 매번 냄새가 났다. 그건 소똥냄새다. 처음에는 고약한 냄새를 맡자마자 곧장 코를 막았지만 다음에는 또 그 다음번에는 “음, 고향의 냄새~”하며 코를 킁킁거리고 그저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이른 봄이 되면 우리 동네 곳곳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작물을 심기 전, 밭에 시커먼 거름을 뿌려둔 뒤 밭을 갈아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기다린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밭두둑에 갖가지 어린 모종을 하나씩 심어나간다. 해마다 이 냄새를 맡고, 이 모습을 보니 어깨너머 배운다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관찰하며 익히게 되었다.
거실 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밭과 바람에 일렁이는 알록달록한 백일홍 꽃이 지금은 여름이라 노래한다. 이 여름날의 텃밭은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먹을 수 있는 ‘자급자족’ 프로젝트다. 여름 한정이라서 더 귀한 작업이고, 그 결과물로 나오는 농작물은 그야말로 ‘감사함’이라는 걸 점차 알아간다.
나는 아직도 농린이(농사 초보자)다. 주로 남편에게 의지하여 작업을 한다. 농사를 짓는 분들처럼 다양한 작물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농협에서 모종 시장을 크게 여는 날이나 꽃모종을 사러 다니는 화원에서 농작물 모종이 나오면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단, 고향의 냄새가 나는 시기에 우리도 필요한 만큼만 거름을 주어서 텃밭을 위한 땅은 미리 준비된 상태이다.
모종을 심기 전, 남편과 밭고랑 작업을 한다. 검정비닐, 삽과 호미 한 자루, 땅을 고루 펴주는 쇠스랑, ㄱ자 모양으로 생긴 괭이면 된다. 먼저 쇠스랑을 사용하여 흙 속에 있는 작은 돌멩이나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골고루 펴준다. 그 후 삽으로 흙을 양쪽으로 파내어 올리면 봉긋하게 쌓아져서 두둑이 만들어진다. 두둑(이랑)은 간격을 유지해서 4개 정도 만든다. 흙의 물 빠짐과 작물관리를 위해 다니는 길로 두둑 사이(고랑)의 흙은 삽으로 정리해 준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한다.
밭고랑 만들기의 마무리,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두둑 위로 검정비닐을 덮어씌운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비닐 양 끝을 땅 속에 살짝 넣어주고, 흙으로 덮어서 괭이나 장화를 신은 발로 밟아가며 땅 다지기를 한다. 두둑에 검정비닐은 흙의 유실을 막아주고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하며 특히나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비닐이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매년 나오는 폐비닐을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비닐 없이, 또 다른 무언가를 이용하여 텃밭 만드는 날을 꿈꿔본다.
맨 처음에는 멋모르고 모종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많이 사 왔다.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고 매일 저녁마다 물을 주면 어느새 꽃이 핀다. 그 꽃이 떨어지면서 열매를 맺고 더 기다리면 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은 하나의 모종에서 끝도 없이 작물들이 무한 증식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농작물들은 계속 뻗어나가며 관리가 어려워졌고, 지인들에게 나눔도 하지만 다 먹을 수도 없을 만큼 생기니 결국 썩어버리는 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열매채소 모종은 종류별로 한 두 개만 사 오고, 상추는 한번 뜯으면 금세 없어지니 예외적으로 조금 더 산다. 뿌리채소 고구마와 땅콩은 한 번에 수확하는 작물이라 각각 두둑 하나씩 맡아서 심어놓고, 5개월 정도 기다리고 나서 땅 속에서 꺼내준다. 얼마나 수확할 수 있는지 매년 다르고 알 수 없다. 올해는 그물까지 쳐놓은 땅콩 두둑에 까치들이 유난히 많이 놀러 와서 아침마다 자기들끼리 땅콩을 캐 먹었다. 땅콩을 워낙 좋아해서 일 년 먹을 땅콩만 기다리는 남편은 화가 났지만 나는 괜찮다. ‘그래, 너희들도 먹고살아야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땅콩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매년 여름은 우리에게 찾아온다.
올여름 마트에 가서 토마토, 참외, 고추, 애호박, 가지, 상추, 대파는 따로 사본 적이 없다. 그럴 수 있는 이유, 자급자족 프로젝트 때문이다. 사계절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라면 양파, 마늘, 부추, 미나리, 들깨, 배추, 무 등등 끝도 없는 식재료를 얻을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마트나 온라인 장보기를 통해서 어느 곳에서나 간편하게 식재료를 구입한다. 물론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텃밭을 하면서 흙을 만지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 온갖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농작물을 알뜰살뜰 보살펴야 하는 시간은 더 특별하고 귀하다.
이제는 안다. 애쓰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자연이 주는 선물은 정말 크고 값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