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먹기, 건강의 지속
"너희들은 크게 병치레한 적도 없고 건강하게 잘 컸어." 나의 엄마는 말했다. 생각해 보니 큰 병원에 가본 적도 없고, 큰 수술을 한 적도 없고, 몇 날 며칠 아파서 누워만 있던 적도 없다. 그러게, 내 몸은 꽤 쓸만했고 쉬이 쓰러지지 않도록 만들어져 왔구나.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는 나에게도 찾아왔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었다가 거센 태풍이 휘몰아치기도 했던 나의 마음.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낙천적인 면과 다르게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을 표출하기보단 내 안에서만 삭혔던 시간. 몸은 쌩쌩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한 거 아니었나?
2018년 3월, 건대병원에 찾아갔다. 진료를 받고 x-ray와 신경전도 검사를 했다. 간헐적으로 아팠던 왼쪽 손이 문제였다. 왼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는 순간적으로 찌릿한 통증이 강하게 와서 손목이 너무나도 아팠다. 무거운 물건은 당연히 들 수 없고, 데친 시금치나 콩나물의 물기 짜는 일은 절대 불가였다.
명확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초록 검색창에 내가 가진 증상을 찾아보고 '손목터널증후군인가? 손목건초염인가? 관절염인가?'싶었다. 몇 군데에 병원을 더 찾아다녔고 한 류마내과에서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 정도면 거의 할머니 면역수치예요. 그리고 백혈구수치도 많이 낮네요."
연중행사로 병원 침대에 누워서 수액을 맞았다. 아이들이 독감이라도 걸리고 나면 그다음은 항상 내 차례였다. 체력도 안 좋아지고 알게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도 불어나고 있었나 보다.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는 게 이런 걸까?
덜어내고 최소한으로 채우려는 생각과 행동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스트레스를 잘 풀어가기 위해 좋아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내면의 고요를 찾아 나섰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임을 잊지 않으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으로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
내 몸은? 예전 같지가 않다. 걸려본 적도 없는 담이 와서 눈물이 날 정도의 고통도 느껴보고, 환절기가 오면 비염으로 고생하고, 어깨를 돌리기만 해도 두둑두둑 소리가 나고, 눈은 왜 이리도 침침한지 글씨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선명하게 보인다. 마음은 점점 평온해져 가지만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는다. '균형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도 어렵구나.'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하나라도 아프면 왜 아픈 건지만 물었고, 그러다가도 괜찮아지면 별것 아니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건강을 소홀하게 넘겨왔구나.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진심을 담아볼까?
그 첫 번째는 '걷기'다. 벼리와 함께 살게 되고 하루 두 번의 산책으로 시작된 걷기는 5년째 계속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내 마음껏 걷지는 못하지만 최소 오천보 이상은 걷고 어쩌다가 만보를 채울 때도 있다. 맨 처음은 내 시간을 벼리에게 뺏기는 기분이 들어서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벼리에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산책메이트 덕분에 훨씬 건강해졌고 그래서인지 연중행사 수액 맞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다. 햇빛을 쐬면서 눈은 벼리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하늘을 쳐다보기도,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스쳐가는 바람을 맞기도, 콧속으로 그날의 공기를 넣어주기도 한다. 오감을 열고 자연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를 가득 채운다.
때로는 생각하며 걷는다. 일부러 그럴만한 거리를 가지고 나와 곱씹으며 정리의 시간을 갖거나 거닐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에 집중하기도 한다. 요즘은 가을날이라 그런지 어디로든 소풍을 가고 싶다. 가끔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 이렇게 걷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는 나의 일상에서 찰나의 행복을 얻는다. 그리고 계속 저장하는 중이다.
두 번째는 '먹기'다. 먹는 욕심이 큰 사람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엄마가 밥을 주셔도 밥공기에 반 정도만 먹었고, 삼겹살을 구우면 비계는 먹지 못해서 살과 분리해 내느라 바빴다. 생선눈알이 무서워서 쳐다도 못 봤고 비린내가 코를 찔렀으니 먹기 어려웠다. 나는 뭘 먹고 컸을까?
밀가루를 주식처럼 먹어왔다. 학교 끝나고 분식집에 들러 컵떡볶이를 먹으며 집에 가는 건 일상이었고, 빵냄새가 나는 곳이면 참새방앗간인 양 지나치지 못하고 나올 때는 손에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면음식 또한 그와 같은 사랑으로 함께 해왔다.
좋아하는 음식만 계속 먹다 보니 위에 탈이 났다. 학교 양호실을 종종 다녔고 동네 내과는 물론 한의원에 가서 침까지 맞으며 속을 달래는 시간들을 보냈다. 내 몸 안에 넣어주는 음식으로 나는 분명히 즐거웠는데 그 이후에 괴로움까지 찾아왔다. 좋아하는 것을 끊어내는 건 쉽지 않지만 그전처럼 밀가루를 많이 먹진 않는다.
최소한의 식을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 한잔으로 정신을 깨워준다. 공복을 유지하고 가볍게 커피나 차 한잔을 마시고 그 이후로 점심을 먹는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저렇게 생활한다. 하루 두 끼 정도가 나에게는 최선이고 음식은 대체적으로 무겁지 않게 먹으려 한다. 그리고 천천히 먹는다. 네 식구가 함께하는 저녁식탁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웬만하면 집밥요리를 올리려 한다.
요리를 위한 식재료 손질은 곧 명상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천천히 재료를 다듬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시간은 나의 명상이기도 하고, 하나의 음식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정성을 들인다. 이따금 느껴지는 고단함은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감내한다. 밥그릇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싹싹 비워내고 잘 먹었다고 말해주는 그들이 있기에 감사하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식재료를 찾고 좋은 기운을 버무려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건 영양제 하나 부럽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건강'의 의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균형을 찾아가는 길은 묵묵히 해야 하는 숙제인 듯하다. 어떻게 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실천하고 아니하고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혼자서도 하고, 가족과 친구와 같이 숙제를 미루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
무탈한 삶이 주는 보통날을 감사히 여기며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