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동화가 필요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놓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을 때, 이유 모를 한숨이 나온다. 집으로 무사귀환을 했다는 안도의 한숨인지, 저녁에 또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기 귀찮음의 한숨인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자신의 표정이 괴리하다는 현실에서 오는 한숨인지, 아무 이유 없는 습관적 한숨인지, 스스로도 모를 법이다.
이유도 모른 채 축축 처진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이럴 거면 차라리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다.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어서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은 다수와 다르다. 다름은 틀림이 되고 틀림은 흑백이 된다. 흑백은 곧 죽음이다. 다수로부터 뒷걸음질을 치다 보면 금세 벼랑 끝에 도착한다. 절벽으로 떨어지기까지 겨우 몇 발자국 만을 남긴 시점에 소원을 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말이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이 등 뒤로 느껴진다. 손끝과 발끝이 서로 멀어짐을 느끼며 눈을 감아본다.
한바탕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언제 죽었나는 듯 다시 살만 해 진다. 문 밖으로 나가기까지 몇 번이고 고민을 하지만 막상 나가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마음대로 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만족스럽다. 마음이 잘 맞는 지인과 만나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치유받기도 한다. 잊어버렸던 오랜 다짐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사랑하기로 했지, 아껴주기로 했지, 탓하지 않기로 했지, 나 자신을.
어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을 겪는다. 죽음은 중력과도 같다. 삶과 죽음의 가운데 서있는 어른은 여간 한쪽으로 끌어당겨지기 마련이다. 이는 단순히 의지 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에게도 동화가 필요하다. 자신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과 감정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또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마주해야 한다.
이 책은 답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위로가 필요한 것 같으나 타인에게는 손을 뻗기 싫을 때,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할 때 등.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동화책이자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가이드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