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언제쯤 명절이 대책 없이 즐거워질까요 -일영

나는 우리 집이 유난인 줄 알았어

by 망강과 일영

제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파생한 거대한 분노와 엄마에 대한 애정 사이를 오가는 유쾌한 글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요. 당신의 글에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고 위안 삼아 미안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당신의 손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같은 건 실제로 드리진 못하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동질감만은 진심입니다. 저는 우리 집만 유교 대잔치가 열리는 줄 알았거든요. 제사에 대한 사연을 읽으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이유는 이토록 개별적인 우리가 유교사상의 폐해로 연결되고야 마는 기가 막힌 연결고리가 씁쓸했기 때문일까. 깊이는 다르지만 각자 처한 상황은 비슷하다고 느끼는 일화들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나의 경우는 엄마가 받는 차별보단 나에게 쏟아지는 차별적 언사가 문제였다. 악의 없는 차별의 언행은 그가 나를 차별할 의도는 없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 심기를 툭툭 건드렸고 그건 나에게 꽤나 치명적인 일이었다. 어디까지 불쾌함을 참아낼 수 있는지 강제로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라서. 적어도 내 기준에선 우리 집안은 매우 흥미롭다. 그 집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한다면 ‘어? 나 이 장면 어디서 봤는데. 데자뷔는 분명히 아니고 어디서 봤더라… 아! 초기 현대소설에서 본 것 같은데!’(나는 대체로 염상섭의 <삼대>를 떠올리곤 했다) 하는 소리가 박 터지듯 터져 나오게 하는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누군가 21세기에 잔존하는 마지막 유교사상의 티끌이라도 찾고 싶다 하면 손가락으로 우리 집을 가리켜도 제법 괜찮은 사례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도 어디 내놓으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불평등 그 자체라고 감히 자부했는데, 주변에선 명절을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면 다들 본인 집안의 나쁜 점을(내 직성이 풀릴 만큼) 토로하지 않았던 점도 그 생각을 강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아니, 다들 가족 구성원에게 만족하십니까? 흠잡을 점이 그렇게 없다고요? 또 저만 가족 욕을 하는 후레자식이었군요. 나는 시골에만 내려갔다 오면 내가 목도한 일들이 기가 막혀서 “헤이, 가이즈. 내가 가서 무슨 얘길 듣고 왔는지 한번 맞혀봐 봐.” 하며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녔는데. 자기 핏줄을 상대로 흉을 보는 말이 나오더라도 내 기준에선 그저 귀엽기만 했다. 은연중에 내 또래 중에서는 가부장제의 희생자 일등은 못 돼도 top 10 안에는 들 것이라는 쓸데없는 자부심이 있어서였다.


명절 시즌에 시골집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비장의 카드처럼 내미는 필살기 소재가 하나 있는데 아, 이건 아직까지도 유효한 필살기 카드인 게 문제라면 문제다.


“우리 집은 아직도 남자랑 여자 밥 따로 먹어.”

“어? 어…”


나는 저 ‘어…’라는 감탄사에 모든 감정이 다 응축되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너에겐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그 정돈 아니야 같은 거였겠지. 아직도 그런 집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예, 불행히도 저희 집입니다만… 시골집은(지금은 다 허물고 펜션으로 개조되었다) 큰방과 부엌이 나란히 붙어있고 그 사이를 미닫이문으로 구분하는 구조였는데, 큰방에선 남자 어르신들이 교자상을 펼쳐두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면 무릎이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살짝 닿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한 채로 식사를 한다. 같은 시간, 그 옆 부엌에선 남은 여자 식구들은 개다리소반 두 개를 붙여다 옹기종기 낑겨 앉거나 식사를 마친 사람이 자리를 비켜주면 그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심지어 그 주방을 총대 메고 진두지휘한 큰엄마마저! 한 번은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친척오빠가 (그는 주방의 지휘관인 큰엄마의 아들이다) 넌지시 이런 말을 꺼냈다. 참 전통이 잘 보존되는 집안이야.


“전통? 무슨 전통?”

“남존여비.”


오마갓, 저는 그만 웃음을 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건 내가 시골에서 들은 정말 몇 안 되는 명언 중 하나였다! 십 년이 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말에 공감했던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처럼 가언을 정할 수만 있다면, 당당하게 ‘남존여비를 목숨처럼’이라고 새기고 싶을 정도로. 다들 들으세요. 이제부터 우리 가언은 남존여비입니다. 우리 집안은 유교사상의 정신을 잘 계승하는 대단한 집이라고요. 72대손인가 73대 아무튼 그 둘 중 하나인 제가 보증합니다. 친척오빠는 교자상에 밥을 먹을 때도 있었고, 개다리소반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여자 친척들은 그런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천한 저는 감히 으르신들과 겸상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제사 음식이 다 차려지면 남자 어른들은 제사를 지내러 산소로 올라가셨다. 항상 친척오빠들만 데리고 제사를 지내러 가셨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선산을 올랐던 건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어렸을 땐 길이 짧긴 해도 가파른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여자라 조상들에게 절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던 것 같다.(지나친 피해의식일까요) 이번 명절만 해도 그 먼 시골까지 내려간 나와 언니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서 절을 올리라는 말 한마디 없었던 어른들을 떠올리면 과한 생각은 아닌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조상님께 열심히 절을 했다면 꿈에 나타나셔서 로또 번호라도 주셨을까. 아직까지도 꿈에 안 나타나시는 걸 보면 불효막심한 저를 보살피실 마음이 안 드시겠지만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세요. 저의 의지는(완전히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아니었고 저는 효도의 기회를 빼앗겼던 것뿐입니다.


일상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은은한 여성혐오는 명절을 맞이해 노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조상님께 절도 못 올리는 내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냐면, 명절마다 제가 어떤 소리를 듣는 줄 아시나요? ‘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섞인 소리는 너무 흔한 소재이니 패스합시다.(다들 그 정도는 듣고 사는 거 맞잖아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제발) 어느 날은 대낮부터 술에 취한 큰아빠가 분기탱천하며 말하시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여자들이 말이야! 술 먹고 밤늦게 돌아다니고 그러는 게 사회 문제인 거야! 노느라 애도 안 낳고! 그러니까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인터넷으로만 보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육성으로 들은 건 처음이라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음식을 집어먹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다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든 작은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엄마와 나는 ‘내가 지금 들은 이 얘기가 사실이 맞냐’는 무언의 눈짓을 주고받다가 어이가 없어 터져 버린 웃음을 참아내느라 횡격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칠십 평생을 보수적인 시선으로 사셨던 큰아빠이시기에 그러려니 하면서도 여자인 내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에 숨이 막혔다. 우리 집 여자들에게 들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알아요, 안다고요. 그래도 저도 같은 여자인데, 제가 애 낳는 기계가 되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큰아빠 덕에 나는 아기를 낳아 조국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나에게 쏟아지는 차별적 발언을 감당하기엔 아직도 내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다. 나는 내게 가해진 관심을 가장한 여성혐오적 발언을 아직까지 곱씹으며 ‘내가 왜 그때 받아치지 못했지!’ 하며 자책한다. 이번 추석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년 만에 시골을 내려갔고 큰아빠께서 (집에 큰아빠가 좀 많습니다. 우리 아빠는 그 집안의 귀여운 막내라인이니까요) 오랜만에 본 나를 반가워하시며 자꾸 외모 칭찬을 그렇게 하시더니(칭찬의 내용에는 하나도 공감이 되질 않으니 시비 거시는 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어이 아빠에게 나 시집갈 때 비싼 값에 팔라는, 듣는 우리 아빠도 재미없고 당사자인 나는 더욱 재미가 없는 농담을 꺼냈다. 졸지에 남자 집에 팔려갈 물건1이 되어버린 나는 나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귀를 씻었다는 영조에게 빙의를 하기 시작하는데...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전투력마저 상실하나요.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던 나머지 아하하, 웃어넘기고 말았다. 대충 웃어서 상황을 모면한 건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꼭 맞는 우리 집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 있다면 본격적인 제사상은 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유일한 다행마저 엄마의 편은 아니었다. 엄마가 만든 제사 음식의 가짓수는 그나마 간소했지만 음식의 양은 결코 간소하지 않았다. 엄마를 포함한 서너 명의 며느리는 십팔 명의 가족이(하필 식구 수마저!) 먹을 삼시 세 끼를 만들고, 거기에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술상이나 식사 접대를 해야 했다. 엄마가 제사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엄마를 돕는답시고 옆에서 깔짝거리며 참기름통 뚜껑이나 열어주거나 “엄마 힘들지. 힘내!”, “쉬엄쉬엄 해.”라는 도움이라곤 하나도 되지 않는 소리만 지껄였다. 그마저 도울 기분이 들면 돕는 시늉이나 조금 했고 주로 부엌에 떨어져 있는 방 안에서 뜨끈하게 지져진 방바닥에 드러누워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곤 했다. 그것도 아니면 자개장에 걸려있던 나프탈렌 냄새의 물큰한 습격을 참아가며 엄마가 틈틈이 사식처럼 넣어주는 식혜와 한과만 냠냠 먹어치웠다.

우리 집 남자 어른들은 본가 문턱을 넘어서는 동시에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가오나시의 영혼이라도 들어오는 건지 정말 끊임없이 술과 음식을 드셨다. 평생 그 모습을 봤어도 아직까지 신기한 광경이다. 음식을 단짠단짠으로 먹으면 무한대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걸까. 이 집의 터가 사실은 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유바바의 온천, 뭐 그런 게 아닐까? 남자들은 쉬지 않고 먹고 마실 때 죄 없는 며느리들만 명절이 끝나기 전까지 술과 음식을 대령했다. 엄마는 매번 명절 연휴가 끝나면 앓아누웠다. 아빠는 엄마에게 몸이 그렇게 약해서 쓰겠냐고 나무랐고, 아빠는 직접 하지 않은 엄마의 가사노동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상당히 고강도의 노동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명절마다 이뤄지는 모든 가사노동을 우리 집안 남자 어른들이 ‘노동’으로 취급이나 해주실지 잘 모르겠다. 아마 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평등하며 부당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며느리라는 이유로.












교통사고 때문에 엄마가 크게 다치셨음에도 제사만은 치러 내리라는 할머니의 의지를 보며 얼마나 화가 나고 다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었을까. 다친 채 병실에 누워 계시다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퇴원하는 엄마를 지켜봤을 그때의 심정을, 당신이 될 수 없는 나로서는 온전히 알 수 없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본다. 할머니에게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만 같아서, ‘그때 참 힘들었겠다’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은데 사실 이 말이 진정성 있게 느껴질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제삼자인 내 위로의 말은 너무 가볍고 닿지 못한 채 휘발될 것만 같아서.


할머니를 향한 분노가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나온 것도 저는 이해가 된다면 믿어주실까요. 나 역시 도대체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사랑하는 엄마에게 상처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혹시... 잃어버린 나도 모르는 내 혈육?) 엄마는 아빠에 대한 흉을 나에게 보는데, 엄마의 말에 같이 맞장구를 쳐주다가도 어느 순간은 그 흉이 벅차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내가 엄마 보고 아빠랑 결혼하라고 했어? 과거의 엄마여, 왜 아빠를 선택했나요. 나는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상황 때문에 함께 고통받는 이 현실에 화가 나 엄마에게 마구 모진 말을 쏘아댄다. 엄마, 나는 태어난 죄밖에 없어. 나는 아빠를 선택할 수도 없었어. 엄마는 아빠를 선택하기라도 했지,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고. 엄마는 진짜 나한테 결혼하라고 하면 안 돼. 내가 결혼이 하고 싶겠어? 아빠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내 화를 핸들을 잃어버린 에잇 톤 트럭처럼 통제를 잃고 와다다 엄마에게 퍼붓고 나면 후회가 찾아온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엄마는 종종 농담처럼 "너는 내가 낳았으니까 내 거지."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다면 "내가 왜 엄마 꺼야~" 하며 장난스럽게 엄마와 투닥거리지만, 기분이 낭랑 십팔 세 청소년처럼 널뛰는 나에겐 종종 버튼이 눌리는 발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나인데 왜 엄마 꺼지?’라는 의문이 피어나면서 내 기분은 급격하게 나빠진다. 내가 엄마 꺼라면 내 인생은 없는 거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는 게 내 운명이겠네. 그럼 내가 내 인생에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뭐야? 난 지금도 충분히 주변 사람들 눈치 보면서 자제하고 사는데. 엄마의 농담에 죽자고 달려드는 나는 "내가 왜 엄마 껀데. 나는 나야. 엄마 거라고 하지 마." 라며 정색한다. 이거야말로 내가 지금 오바쌈바를 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잔뜩 사고를 쳐놓고 대중들에게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다며 자숙타임을 갖는 배우처럼 내 불쾌함을 잔뜩 전시하는 사고를 치고 나서야 더 좋은 딸로 거듭나겠다며 어김없이 반성과 자숙타임을 갖는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계속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은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걸까.


명절이 단지 명절처럼 느껴지길 바란다는 그 말이 실현될 날이 꼭 오길 나 역시 간절하게 바란다. 나도 명절을 차별적 언행이 쏟아져도 묵묵히 견디는 날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만두고 싶으니. 명절이 다가오면 활성화되는 단체 메시지방에선 언제부터인지 결혼한 친구의 안부가 빠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에게 “명절 치르느라 힘들었겠네.”라며 건네는 말은 안부 인사가 되고, 별다른 준비 없이 시댁에서 차려진 밥만 먹고 나왔다는 답에는 “시어머니 대단하시네.” 혹은 “좋다, 완전.”같은 감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명절 음식을 차리지 않는 집안에 쏟아지는 칭찬의 말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불편함은 ‘과연 결혼한 남자들도 명절에 저런 이야기를 들을까?’라는 나의 배배 꼬인 심사 때문이라고 넘겨짚고 싶다. 그 말이 더 이상 여자에게 칭찬의 의미로 통용이 되지 않는 날은 언제쯤 올까요.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 세대까지는 엄마처럼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없이 맥이 빠진다. 그래,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 냉온탕을 오가며 위안을 삼아 보면서도 더딘 변화가 부쩍 지겹기도 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저는 급격한 변화를 원합니다! 명절에 사람 좀 그만 갈아 넣자는 것이 ‘썩어 빠진 세상 다 뒤집어엎어버리자!’ 정도로 과격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요? 너도 편하고(그러나 너는 이미 편하지 않았나요) 나도 편한 명절을 보내고 싶지 않나요? 모두 다 편할 수 있는데 왜 힘든 길을 꾸역꾸역 이어받아 걸어가시나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마음으로 빠른 변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체감할 때마다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옛날에 비하면...’ 하며 기어이 부당한 현실에서 도피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잘 버텨 봅시다. 진부한 말이라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우리 어찌저찌 여기까지 왔네요. 이 상황이 기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진 왔어요. 명절을 명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나한테까진 해당되지 않더라도, 계속 부당함을 토로하면 내 다음 세대는 그래도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쭙잖게도 미래 세대를 위한 한 줌의 인류애마저 가져본다.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심스럽지만 최선의 응원을 보내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섬에, 쉽게 다가가기 힘든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멀지 않은 여기에도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 조금 더 잘 버텨 보자고. 무인도에 갇혀 나를 구하러 와줄 누군가를 향해 sos 사인을 보내는 심정으로 작은 응원의 손짓을 띄운다. 나의 사인이 당신에게 가 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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