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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Mar 08. 2024

[숏트립] 체면이 뭐예요?

청양 알프스마을 축제

어디든 가고 싶었다.

이 시간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

평일에, 어딘가에 매어있던 시간에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서울이 아닌 땅 위에 발을 딛고 싶었다. 보상심리 아니면, 내 시간에 대한 의무?  

겨울이니까 동쪽 설산에 갈까, 시퍼런 겨울 바다 보러 동해에 갈까, 좀 가까운 인천 앞바다에 갈까, 사람이 별로 없을 중부 내륙의 어느 작은 마을에, 운이 좋다면 지역의 5일장이나 자그마한 행사를 볼 수 있을까.


온갖 상상과 고민을 하다가 태백. 그래! 기억 속에 없는 태백.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온도 기온이거니와 눈이 많이 쏟아진다는 하루 전 일기예보에 일정 취소. 간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나름 어른인지라 오가는 길을 생각하면 마음의 크기만큼 강행하기는 어려웠다.  

다시 카카오맵을 줌인, 줌아웃하며 이 도시 저 도시 클릭을 무한까지는 아니고 반복에 반복. 그리고 겨울 여행 추천지를 찾으며 웹서핑을 한다.

그러다가 눈에 띈 청양.

청양고추의 그 청양? 직장생활 꼬꼬마 시절 *달님이라고 불렀던 대리님의 고향?

게다가 얼음축제까지 있다니.

청룡의 해를 맞아

준비부터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당일치기 짧은 외출과 같은 여행에 따로 준비할 것 없어 단촐하니(단출하니도 너무 거창한 느낌적 느낌이다) 좋다.


가는 길에 안 건데, 이름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청양고추'. 청양고추 특허를 외환위기 시기에 해외기업에 팔았단다. 그래서 청양고추를 재배하고 판매하면, 일정 금액이 로열티로 해당 기업에 돌아간다고.

신종 농산물도 아닌데 청양고추에 특허가 있다고?

나만(또는 나는) 몰랐던 거다. 청양고추는 우리나라 기업이 제주도 고추와 동남아 고추를 교배해 개발한 작물이고, 당시 주로 재배했던 지역의 이름(청송, 영양)을 붙여 청양고추라고 했단다. 청양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냈고. 그랬던 것을 위기시절에 해외기업에 넘긴 것.

우리나라에 특화된 이 매운맛을 다른 어느 나라에서 즐긴다고? 청양고추가 유통되고 있다는 건가?

검색해 보니, 청양고추를 포함한 상당히 많은 농산물의 특허권을 가진 해외기업이고 이에 대한 많은 의견과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구석의 구석에 있는 청양의 알프스마을 축제는

소박하고 또 소박한(그 어떠한 지역 축제도 가본 적이 없음을, 그래서 비교 대상이 없음을 인정한다),  

어린이들과 이들을 동반하거나 인솔하는 어른들이 가장 많고, 젊은 청년들이 꽤 눈에 띄는 곳이면서도

충분히 즐길만했다.

구역의 시작을 알리는 얼음성벽(알프스라서 유럽식 성벽인 걸까?)과

꼭대기에서 가는 물방울을 뿜어내는 얼음 기둥(시각선에 따라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은 물가루가 햇빛에 반짝거리며 정체를 드러낸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담은 얼음부조,

십이간지를 '나름' 조각해 놓은 얼음동굴,

오매불망하던 눈벌판,

다소 이해되지 않는 얼음덩어리(?),

그리고 눈.썰.매.


입장권과 눈썰매 이용권이 분리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입장권만 구입해서 들어갔다. 안타겠지...라는 생각에.

구경하며 걷다 보니 아이들이 타고 있는, 하지만 어른도 탈 수 있는 눈썰매가 너무 매력 뿜뿜이라 결국 이용권 추가 구입.

길지 않고, 아주 높지 않은 슬로프였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두근두근하더라.만! 정말정말 신났다.

아주 작은 꼬마도 타는 눈썰매를 꺄악꺄악 소리 질러가면서 탔다. 

내려오자마자 다시 올라가서 한 번 더.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추위를 고려하여, 나만 더 신날 수는 없기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퇴장.


요즘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신이 난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세포들이 파바박 숨을 터트리는 것 같달까.

누군가는 나이를 생각하라 하지만, 뭘 해도 괜찮은 허리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다.

소박하지만 신나는 눈썰매

덤. 밖에는 군밤체험과 군고구마. 집에 올라오는 길에 들른 한옥 커피집도 따땃하니, 은근 매력.

- 2024.1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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