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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n 14. 2024

[오늘의탐색] 자유수영도 팀플레이입니다

다른 거 다 관두고, 바다 여행 가서 놀 수 있게 개헤엄만 좀 칠 줄 알면 좋겠다! 

탄식하니 한 친구가 말했다.  

개헤엄이 자유형보다 더 어려워.

아, 그런 거구나.


바다 수영에 대한 로망이 있다. 물놀이라고 해야 하나.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한 다리의 움직임이 있을지언정, 수면 위에 고개 내밀고 유유히 떠 있고 싶다. 좀 탁하기는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해안의 시골 바다며 그 멋진 니스의 푸른 바다에 야심차게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개헤엄은커녕 엎어져서도 누워서도 떠 있지 못하고, 그냥 멀뚱히 서서 먼 수평선과 우아하게 수영하는 사람들만 실컷 구경하다 나왔다. 

이게 아닌데. 


몇 년이 지나 올 2월 갑자기, 다시 마음을 먹었다. 

수영 강습받아 보려구.

라는 말에 여행 얘기에는 시큰둥하던 친구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신이 나서 얘기한다. 직접 경험한 수영의 효과와 재미를 미끼로 투척하는 것은 물론 집 근처 수영장을 찾아 수영강습 등록일정과 강습료를 검색해주질 않나, 생활체육으로 수영이 인기가 많아 등록이 어려우니 수영장의 동태를 미리 살펴보라는 조언이며 일체형 수영복에서 반바지형과 삼각팬티형의 장단점, 필요한 소소한 준비물 등 팁이 줄줄이 나온다. 

그렇구나. 응, 그렇지. 아, 그렇구나. 아, 그랬어? 응... 


뭐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가 어려운 심사숙고형으로 포장된 쫄보는 강습 등록 전 홀로 자유수영을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야심차게 한 달 끊었다가, 강습료만 날리면 안 되기 때문. 그마저 여행으로 밀리고, 게으름에 밀리고, 다른 일에 밀리고, 망설임에 밀리며 6월이 되었다. 수영부심 있는 친구의 중간 점검이 들어왔다. 테스트 삼아 입을 수영복과 수영모, 비누 챙겨갈 케이스와 샴푸 소분해 가져갈 통에 이 모든 것을 담아갈 가방까지. 

뜨아. 누가 너를 P라고 했니.


이번 주는 간다!

고 하였으나 다시 주저주저. 

이번 주는 꼭 간다!

고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자유수영은 인원 제한이 있으니 오늘은 가도 허탕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 또 미뤄질 테니, 일단 나가자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안될 거야, 안 되겠지, 안 돼야 하는데. 오늘은 맛보기 수준으로 방문만 해서, 나는 시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많아 발 담그기에 실패했다는 타당한 핑곗거리를 일단 챙기고, 그리고 나서야 제대로 마음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영장을 향해 가면서도 마음은 한 발씩 멀어진다. 그런데 나란 인간이 참 어이없는 것이 횡단보도에서 초록 신호를 기다리며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수영장 가는 것 같은데 싶으니까 자칫 순서에서 밀릴까 봐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으이그, 인간아. 


미리 검색해 둔 출입구를 찾아 들어가 번호표를 뽑았는데, 망.했다. 27번. 

자유수영은 시간대 별로 50명 인원 제한인데, 말도 안 되게 단박에 성.공.했다. 이제 후진도 못하고 들어가야 한다. 

뭐든 당첨은 죽어라 안되면서, 이번엔 운이 좋은 건가요. 


탈의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쭈뼛쭈뼛 질문이 시작된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모르는데요... 샤워하고 수영복을 아예 입고 왔는데 샤워를 다시 해야 하나요, 그럼 이 짐은 어디에 두나요, 사람들은 왜 안 들어가나요, 킥보드를 맘대로 사용하면 되나요, 여긴 어린이 레인이라는데 어른이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수영하고 나서 반드시 여기서 쉬었다 나가야 하나요... 

그러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여기로 내려와서 시작하면 돼요, 다리를 펴서 차야 돼요 발차기가 제일 중요해, 몸에 힘을 빼야 해 킥판에는 그냥 손을 얹는다는 생각으로, 음 파~ 하는 것처럼 숨을 꼭 쉬어야 돼 숨을. 힘들면 벽이나 줄 잡고 쉬어도 돼요, 양보만 하지 말고 순서대로 쭈욱 돌아야 해 계속 양보하면 사람 많을 땐 몇 번 못 돌고 나가... 

라고 알려주시거나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다, 처음이라더니 그래도 가긴 하네 그렇게 하면 되지

로 상상되는 눈빛과 미소를 슬쩍 내비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네, 아~, 감사합니다 하며 넉살 좋게 엄지 척!도 해 보이며 어설프지만 따라 해 본다. 

심지어는 탈의실에서 모르는 걸 그냥 맘대로 하지 않고 물어본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대한민국 할머니, 아주머니 만세, 만세!! 


물론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쌩까는 사람은 있더라.

뭘 물어보면 그냥 지나치거나,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먼저 하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냥 제치고 출발하거나, 당신 빨리 안 가고 뭐 하니 라는 무언의 레이저를 쏘아 대거나 하는 사람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저는 저대로 즐기겠습니다. 


물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던 와중에도 어찌 생각하면 웃기고, 어찌 생각하면 귀여운 발견이 있었다. 

저 아줌마 새치기 한 거야. 돌아오는 대로 뒤에 서서 차례로 출발해야 하는데, 앞으로 들어온 거야.

어차피 울리는 물소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도 않을 텐데, 조심스럽고 귀염 있게 속닥. 그런데, 말씀을 하시는 분도, 새치기해서 치고 나가는 분도 나에게는 할... 할머니 연배로 보이셨다. 그런데 당신들끼리는 서로를 아줌마라 칭하신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가 당신들의 한창때였고, 몸은 몰라도 마음은 여전히 그때를 이어 살고 계시리라. 


문득 몇 주 전 우연히 마주친 한 사람이 떠올랐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던 사촌 새언니는 차분하면서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어 엄마보다 몇 살 젊은 정도의 나이 차이였어도 항상 젊기만 한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십몇 년은 족히 되고도 남을 법한 시간 만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사이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그에 걸맞은 한층 여유 있는 표정과 그 느낌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백발의 노인 모습이었다. 시간의 공백으로 인해 변화한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동시에 좋기만 한 반가움으로 언니, 언니!! 하며 얘기하는데, 젊은 사람이 언니라고 부르니 왠지 당신도 젊어진 느낌이라고 재차 말하며 웃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제 저도 당신에게 젊음을 느끼게 할 만큼의 젊은이는 아닌걸요. 


나이는 숫자에서 오는 절대성이 있지만, 사회와 관계에서 오는 상대성 또한 지니고 있다. 때문에 할머니들이 서로를 아줌마라 칭하고, 한 번 새댁은 오래도록 새댁이며, 초등학교 4학년생이 1학년생을 어린 꼬마라고 귀여워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아이들처럼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수영을 했다. 

현관문 밖으로 내디딘 나의 한 걸음과 

알 수 없는 기운이 허락한 번호표 당첨운과 

생활체육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친절이 모여.

언제 다시 수영장에 갈지, 과연 강습 등록은 시도하거나 성공할지, 언제까지 관심을 가질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으나, 일단 시작은 했다.  

그런데 수영장에 계신 어르신들 정말 놀랍다. 우아한 팔의 움직임과 거침없는 발차기로 물을 가르며 쑥쑥 나아가는 건 물론 배영에 평영까지. 저기 아줌마는 수영을 30년 이야, (당신은) 젊을 시작하니 잘 되겠지, 라는 할머니의 제보와 응원처럼 나도 개헤엄에 이르는 날이 올까

끈기 좀 챙겨보자꾸나. 


덧. 내가 이용한 마포아트센터 내 실내수영장은,

- 매일 3회 자유수영 시간이 있다. 오전 8시, 오후 12시와 9시. 평일은 50명, 주말은 100명 정원이다. 도착해서 번호표를 뽑으면 정원 내 포함됐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인원 마감에 걸리지 않았으면 로비에 있는 기계를 이용해 성인 3500원을 결제하고, 창구에 번호표와 영수증 제시, 마지막으로 신분증 등 소지품 하나를 맡기고 개인 락커 키를 받아 입장한다.

- 수심 1.2~1.4미터인 레인이 총 6개, 길이는 25미터로 자유수영 시에는 초보부터 초/중/고급 등 수준별(총 5개 구분이었던 듯)로 레인을 구분해 두어 본인의 역량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 수영장의 두 개 면이 지상이라 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좋고, 50분 수영, 10분 휴식의 원칙에 따라 자유수영 시간에도 안전요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입수 전 다 같이 준비운동을 한다. 

- 신기했던 건 수영장 있는 건물에만 가면 희미하게라도 느껴지는 락스 냄새가 이곳에서는 확연히 약했다(지나친 긴장과 설렘으로 감각이 마비됐던 건... 아니겠지? 설마).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수준. 우리가 흔히 락스냄새라고 인식하는 냄새는 오염물질이 소독되면서 발생하는 냄새이고, 이 냄새가 강할수록 물이든 공간이든 소독 대상의 오염도가 높은 거라는 내용을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말대로라면 긍정적 신호인 것 같다. 하긴 예전에 실내수영장 다니던 때가 언제 적이던가. 생활체육 시설이 전반적으로 좋아진 걸 수도 있겠다.

-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기에 나 같은 최초 이용자를 위해 굳이 적어보자면, 수영 전 비누샤워와 머리 감기 필수. 아무리 본인이 집에서 샤워를 하고 왔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관리를 위한 거니 규칙은 잘 따라야 한다고 어느 할머니께서 조언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수질에 대해 조금 더 안심해도 되겠네요.


이상, 나의 자유수영 도전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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