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푸로레-라벨로-아말피
여행을 하면 누구나 하는 경험이 있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조금 공을 들여야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는
예쁜 해변에서 시간 보내기,
좁디좁은 골목 돌아다니기,
오징어 튀김과 레몬 소르베 등 맛있는 간식과 해산물 음식 먹기 등이 그 첫 번째였고,
절벽에 간신히 나있는 길을 어떤 식(도보,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버스…)으로 즐기는가는 선택사항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일정 다음으로 가장 고민이 많았던 것은 차를 렌트하느냐, 마느냐였다. 특히 남부 도시들이 관건.
포지타노Positano, 아말피Amalfi, 소렌토Sorrento…
해외 유명인사들의 여름별장이 있는 휴양지로 유명한 포지타노를 시작으로 레몬 소르베로 유명한 아말피까지 이어지는 아말피-포지타노 해안은 절벽을 따라 난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계속 이어지는 바다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이 그만큼 운전하기 어렵다고, 렌트하지 말라고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전 다른 렌터카 여행이 얼마나 멋졌는지 경험했다는 이유로, 나이 들수록 더 힘들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래야만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그러고 보니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꽤 많았다) 차량 여행을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물론 초행길 운전이 운전자에게도 탑승자에게도 마음껏 경치를 즐기기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몰리는 휴양철에는 렌터카 여행이 최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다.
중앙선도 어느새 사라지고 길가 주차가 빈번한 좁은 길이었지만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아니라 조금씩 비켜갈 수 있었고,
같은 이유로 길도 막히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표가 안내된 SITA 버스는 이러다 다음 시간대 버스 오는 거 아니야…라고 포기할 때쯤에서야 사람들을 가득 싣고 도착한다. 대부분 여유로운지라 대충 끼여있고 걸쳐있어도 서로 불쾌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실제로 체류 기간 중 1시간 간격으로 운행 공지된 버스를 30분 이상 기다렸다.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자에게 버스는 분명 온다. 이곳은 휴가지의 특성상 4월이 되면서 슬슬 오픈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즐길거리와 먹거리들이 있는 것 같다. 대중교통도 그 시기가 되면 운행을 늘리고. 때문에 그 시기가 이동 면에 있어서는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은 데 가면서 훨씬 많은 아름다운 곳들을 누릴 수 있었다는 거다.
로마에서 렌트를 한 후 나폴리를 지나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인 소렌토로,
소렌토에서 요기를 하고 장을 본 뒤 포지타노를 지나 푸로레Furore 숙소로 갔다.
해 넘어가는 시간에 해안으로 난 절벽의 도로와 끝없는 바다, 도로에서 본 마을과 중간중간 가깝게 또는 멀리 모습을 드러내는 레몬 나무들(아마도 농장이겠지. 노오랗고 커다란, 어떤 것들은 꽤나 울퉁불퉁한 과실을 드러낸 레몬나무도 있었지만, 인삼밭에 쳐 놓는 검정 가리막을 씌워놓은 모습도 많이 보였다. 한여름이 되기 전의 과정인 것 같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절경이다.
하늘은 푸른빛에서 점점 주황색이 되었다가, 보라색으로, 남색으로 변하면서 점차 어두워진다.
하늘에 흩어진 구름은 그 스러져가는 햇빛을 받아 그 색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빛이 있을 때 하늘과의 경계를 알아보기 어려운 바다는 해가 넘어가면서 점점 진해져, 내가 바다고 저이가 하늘이오...라는 듯 본인의 존재를 더욱 드러낸다.
그리고 어두워지면서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자연,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절벽의 곳곳에 자리 잡은 집들이 하나둘 주황색 불을 켜며 뚜렷이 등장한다.
절벽을 따라 켜켜이 쌓여 있는 건물들. 와~를 끊임없이 내뱉어야지만 숨이 쉬어지는 그런 절경.
그런 1분 1초의 변화를 온전히 감각하며,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이런 절경은 페리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볼 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 쪼르륵 자리 잡은 주요 도시들은 페리를 이용해서도 이동할 수 있는데, 우리는 아말피에서 포지타노행을 선택했다. 비수기라 하루에 2번 정도의 운행이 있어 미리 일정을 예측해 두는 것이 좋은데, 처음 방문했을 때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 다음날 다시 방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코스.
생각보다 큰,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빠른 페리가 스멀스멀 아말피 해변에서 멀어지면서 바닷물을 튀기며 속도를 내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와 박력에 비명을 질렀다. 가까이 보는 것과 멀리 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으로 놀라움을 준다. 그렇게 페리는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도 딴짓을 할 수 없는 장면들을 선물하면서 해를 안고 달려가 포지타노 선착장에 가까워진다. 이 뷰가 바로 엽서에 담겨 있는 장면이구나... 몇 년 전 엄마가 이 장면을 보았겠구나... 예쁘다...라는 생각을 한다.
바다에는 못 들어가지만 해변에서 해를 즐기고, 저녁까지 먹고, 다시 SITA 버스를 타고(이번에도 역시 기다리기는 예견된 일) 이동, 멀미로 더 이상 버스에 앉아있기 힘든 딱 그 시점에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멀미 직전까지 갔지만 괜찮다! 오늘은 충분히 아름다운 경험을 했으므로.
예약한 푸로레 숙소는 푸로레 마을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쪽 바다에 있는 곳으로, 포지타노와 아말피 사이에 있어 양쪽으로의 접근이 수월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두 도시와 떨어져 있다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에어비앤비로 찾은 이곳은 바다와 만나는 절벽 위 집이었는데 메인 도로 바로 옆이라 오고 가는 것이 꽤 수월했고, 발아래 바다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실제로도 거의) 집이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지 않고 이곳에만 있어도 충분한 휴양이 되는. 물론 남부에서는 극소수의 호텔을 제외하고는 짐을 들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렌트를 하면 주차장이 있어야 해서 숙소를 잡는데 제약이 따른다. 주차장이 있다 한들 꽤 많은 곳에서 길가 주차를 안내하기도 하는데, 여행 전에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가보니 어떤 건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 또한 선택사항.
바닷가 절벽에 켜켜이 쌓여 있는 알록달록한 마을과 아름다운 바다.
아말피와 포지타노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리고 아말피가 조금 더 구경하고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고, 포지타노는 해변이 조금 더 길다.
그래봐야 아주 작은 차이고 둘 다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만약에 다시 한번 방문한다면 휴양을 하고 싶을 때 포지타노에서 꽉 채운 2박 정도를 하면서 쉴 것 같다.(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예견된 일이기 때문에, 혹시나 다음을 위해 기록 필요. 아, 근력 뿜뿜으로 자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돈이 들더라도 포터서비스는 해야겠다)
이번 여행에서는 선택의 순간도 많았지만, 포기의 순간들도 많았다.
출발 전부터 괴롭히던 허리에서 이어지는 엉덩이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껏 더 높이, 더 멀리 걸을 수가 없었고,
Path of God 트래킹 코스를 맛보기로라도 걷고 싶었지만 하필 그날 아침부터 해가 있음에도 비가 왔고,
여름은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3월의 바다는 완벽하게 겨울바다라서 밭 끝조차 담그지 못했고,
서로 다른 체력과 에너지와 기분으로 일정들을 조정해야 했고,
숙소를 중심으로 방문을 계획했던 인근의 마을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찾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선택과 포기와 수용들이 뒤엉키며 여행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하게 J와 P가 뒤섞여 있는 자의 일정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주변 마을 중 방문지로 꼽아두었다가 갔던 곳은 라벨로Rabello인데(이탈리아의 행정 명칭에 의하면, 푸로레도 라벨로도 살레르노라는 도에 있는 코무네다.) 매년 여름 클래식 콘서트가 열린다는 곳으로 절벽 위 허공에 지어진 무대에서의 공연 사진 하나에 감동 아닌 감동을 받았다. 공연이 열리는 Villa Rufolo의 계단식 정원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도 좋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보다 더 감탄스러웠다. 동해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했던? 한계령 저리 가라 하는 길들, 드문드문 등장하다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집들, 중간중간 자리 잡은 레몬나무. 이 절벽에 어떻게 집을 지었으며,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니는 거야,에 대한 의문은 오늘도, 그리고 상당히 많은 곳에서 여행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탁 트인 바다 전망에서 평화로운 아랫마을을 발견할 때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