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방문기
드디어, 집이다!
떠날 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언제나처럼 떠나기 전 충실히 지우고, 닦고, 비워버린
그래서 오히려 생활의 흔적이 하나 없어 보이는 깔끔한 집.
조금은 부랴부랴 떠났던 집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아쉬움이 아니라 안도감이 든다.
그렇다. 갑자기 일정을 당겨 서울을 떠났다.
선선하고 걷기 좋은 가을이 좋을까,
덥기 전이면서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을 봄의 중간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과연, 여행에 순서가 있을까?
여행을 하고 싶어서 장소를 고르는 경우도 있고,
어떠한 곳에 가고 싶어서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떠나고 싶어서 어디를 갈까를 고민했다.
3개월의 체류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 끝에 나온 나만의 보상심리일까,
아니면 사무실이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 채운 시간이 만족스러우면서도(분명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건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장소를 고르는데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해외여행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가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새로운 곳, 보지 못했던 그래서 궁금한 곳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안 가 본 곳이 너무나 많지만, 어느새 갔던 곳에 계속 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여행에 먼저 목적을 두고 보니, 가고 싶은 곳이 많지 않았다.
막연한 동경이 있는 아이슬란드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오로라보다 그곳의 검은 흙과 초록이 궁금하고,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너무 예뻤다며 꼭 한 번 가보라는 이탈리아 남부와
몇 년 전 출장지에서 만난 이가 추천해서 사진을 본 후 홀딱 반해버린 마테라,
그리고, 20년 전 딱 한 번 갔던 뉴욕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그간 열외였지만, 일을 마무리하면서 그곳의 몇몇 공연장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고민을 하다가, 이탈리아 마테라와 남부 도시를 선택했다.
신기하게도 결정을 하고 보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는 사람, 지난 여행이 너무 좋았다는 사람이 참 많다.
그리고 이왕 맘먹은 김에 있는 시간을 더 투자하기로 한다.
이탈리아 일부 도시에 그리스를 넣어볼까,
지난번에 동선이 맞지 않아 관뒀던 크로아티아를 넣어 볼까,
유럽 사람들이 휴양지로 많이 가기 시작했다는 알바니아를 도전해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탈리아 몇 개 도시와 생뚱맞게 몰타를 더했다.
항상 고민은 길지만, 결정은 순간이다.
바다에 대한 로망 때문에(나는 왜 갑자기 바라보는 바다가 아니라, 바닷물 입수에 꽂혔을까).
그리고 그것만 해도 이미 벅찰 만큼의 이동이 예상되었다.
머무는 여행에 집중하자 싶었지만, 이번엔 새로운 풍경들을 보며 잠시잠깐 스쳐가는 시간이 될 게 뻔했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시작은 항상 그러기 마련이다. 그곳과 나의 궁합을 점쳐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러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곳이 다음에는 조금 친숙한 곳이 된다. 나에게 베를린처럼...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에 덥석 손을 댔다.
한창 여름으로 건너가는 봄이라고 믿었던, 그 어느 곳에서는 바다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하지만 실제로는 겨울이었던 3월에.
친구와 함께 한다는 설렘은 있었지만, 조금은 무성의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