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폼페이-마테라
몇 년 전 출장 중 이탈리아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살고 있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본인의 고향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라고 한 도시를 추천했다.
마테라Matera였다.
그 자리에서 구글지도를 검색했을 때 뜬 사진에 반해서 저장해두고 있던 곳으로 이번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 중 하나이다. 나중에 보니 마테라라는 도시 이름보다는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나 오래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찍은 곳으로 더 설명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제공하는 시티맵(city map)에도 영화 촬영지가 표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푸로레의 숙소를 떠나 험준할 것이 뻔한 가보지 않았던 길로 노선을 잡아 올라간다.
난관일 거라 생각했던 의외의 곳에 길이 잘 닦여 있고, 분명 꽤나 높고 좁은 곳이었는데 갑자기 큰 마을을 만나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장면들로 눈이 뇌를 배신한다. 그렇게 눈호강을 하며, 도시들을 지나 폼페이Pompeii에 도착했다.
폼페이도 주요 목적지 중 한 군데였는데 가기 전 뒤적였던 몇몇 유튜브의 기억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가이드 투어를 할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찾아낸 오디오 가이드를 안내 삼아 들으면서 돌아다녔다. 지금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구역은 실제 존재했던 폼페이의 일부이지만 너무 넓어 그 마저도 하나하나 보자면 버겁고, 핵심이라고 제시해 놓은 곳들만 지도 따라 찾아다니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이렇게 큰 도시가 화산 폭발로 그렇게 사라져 버렸구나, 상투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지구적 종말의 위대함, 또는 두려움을 막연하게나마 실감하면서.
여행에서 돌아와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들이 기록과 상상을 구현해 놓았을 도시 폼페이와 그곳의 사람들은 나의 상상보다 더 화려하고, 거대하고, 발전되어 있으며 동시에 야만적이었다.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누적되고 전수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동시에 집약된 지적 수준이 어느 순간 쾅~ 하고 발현되는 시기들이 있는 것 같다고. 수천 년 전 공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건물들이며, 오랜 과거에 만들었으나 너무나 오랫동안 다시 구현하지 못했다는 물건들에 대해 보고 들을 때,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조금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라진, 수세기가 지나 발견되어 여전히 발굴과 복구 중으로 다시 존재하는 도시 폼페이를 둘러보고 허기진 배를 과하게 채운 뒤, 마테라로 향했다.
남부 바실리카타(Basilicata) 지역에서도 오른쪽 끝 부분 내륙에 있는 마테라는 폼페이에서 이탈리아 반도를 동쪽으로 관통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뻥 뚫리고 잘 닦인 고속도로를 타고 가자니 꽤 어색했다.
하지만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에 한입거리 간식을 사 먹는 것도 제법 익숙하다.
고속도로를 따라 가끔 등장하는 서로 다른(어쩜 이렇게 비슷한 곳이 하나도 없을까)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내가 과연 같은 나라 안에 있는 게 맞나 싶은 의아함과 생경함이 든다.
그리고 그 생경함은 마테라를 두 눈으로 대했을 때 느끼는 위대한 생경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왜 나는 이탈리아의 곳곳에서 감탄사를 내뱉는가.
마테라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그런 곳이었다.
석회암이 주를 이룬다고 하는데 이곳만의 특유의 컬러가 있고,
툭 떼어낸 듯 다듬어지지 않은 바위와 매끈한 건물의 벽이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이어지거나 맞닿아 있고,
건물 안도 동굴처럼 유려한 곡선과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들이 많다.(어떤 곳은 자연을 그대로 유지한 결과일 테고, 어떤 곳은 지역적 특색을 살려 일부러 구현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도시 전체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특유의 고요한 신비로움이 있다. 왠지 사람들도 고양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마테라는 구석기시대(기원전 1만 년)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자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로(검색해 보니 첫 정착한 이후 연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 같다) 협곡을 따라 먼먼 과거의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신앙생활을 했던 동굴들도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실제 생활하던 지역인 사시(Sassi)는 1900년대 중순 더 이상 거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대대적인 이주를 감행했고, 현재는 사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크게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뉘어 있는 마테라에서 일반적으로 여행지로 방문하는 곳이 구도심(Sassi)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신도심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대적인, 하지만 분명 서울의 그것은 아닌,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한국 분.식.점.도 있다! 얏호~ 한국인으로서 응원차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했지만 사실은 메뉴에서 본 떡볶이가 먹고 싶어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여자가 여행 중 이곳에서 불가리아 남자를 만나 정착하다니, 드라마와 같은 실제 이야기다. 그리고, 한국음식점인데 불가리아 남자인 남편분이 요리를 하신다. 그것도 맛있게.
마테라에서는 걷기와 툭툭 가이드투어를 함께 했다.
마을이 크지는 않지만 전체를 둘러보기에는 툭툭투어가 탁월했는데 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비용 대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드에 따라 꽤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이드투어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날씨가 무섭도록 재빨리 변했는데, 3월의 이탈리아 날씨는 워낙에 CRAZY! 하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이미 우리도 꽤 겪었어요... 애착인형처럼 여행마다 가지고 다니는 초경량패딩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곳에서의 여행이 그렇지만 마테라에서도 체력만 된다면, 마음만 있다면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시간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장관이면서 동시에 소박한 풍경이다.(이 둘이 공존할 수 있는가)
낮에 내린 비에 살짝 젖어 불빛을 반사하고 있는 반들반들한 돌 길이나,
한낮의 밝은 해 아래 아이보리와 회색빛의 오묘한 조화로움을 낱낱이 보여주는 건물들이나,
협곡의 엉켜있는 잡목들과 이제 막 푸르러지기 시작한 잔디 사이에 난 좁디좁은 오솔길이나,
험한 바위에 뚫려 있는 동굴들을 보며 걷기.
역시나 켜켜이 쌓인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두리번거리기.
그러다 보면 아, 이건 좀 전에 봤던 뷰인데... 를 깨닫는 순간.은 길을 잃었음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괜찮다.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왔다 갔다 하면 또 어떻게든 길은 찾아진다.
대신 이런 때는 충전이 빵빵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좋다. 물론 지도의 이 길이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맞는지 헷갈리고, 땀은 좀 나지만.
그렇게 돌다 보면 다시 숙소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럼 됐지 뭐.
여행을 한다면 기억할 사항. 중심지나 신도심의 주차장에서 또는 기차역에서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곳 또한 포터 서비스 필수,라고 말하면 너무 손쉬운 여행일까. 하지만, 다시 간다면(정말 다시 한번 가고 싶다) 이때도 역시 포터 서비스를 이용할 거다. 반신반의하며 예약하고 도착해서 현실을 본 후 안도의 팁을 드렸는데, 설상가상으로 체크아웃할 때는 비까지 내린 뒤라 포터분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팁을 또 드릴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 비용에 거의 맞먹는,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친구 왈, 우리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완전 동의.
그렇게 묵직한 여운을 가지고 마테라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