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파쏘 지아우-코르티나 담페초-트레치메
지나쳐 가는 길의 모든 순간과
멀리 또 가깝게 만나는 장면이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답고 멋있어
이 나라와 자연이 경이롭다.
차를 타고 남동부와 남서부를 가로지르며,
기차를 타고 남쪽에서 북동쪽을 향해 몇 시간을 올라가며
불현듯 이탈리아는 꽝 없는 선물상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급선회한 일정으로 찾은 이탈리아의 알프스, 북동부에 위치한 돌로미티Dolomites.
누군가에게는
유튜브 영상이 이 장면을 대신할 수 있겠고,
게임이 이 장면보다 흥미로울 수 있겠고,
잠이 이 장면보다 더 우선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다시 꼭 찾고 싶고, 다른 계절도 궁금해 반드시 만나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돌로미티는 일정을 모두 확정한 후, 남부 아말피-푸로레-포지타노 지역에서 트래킹을 하고 싶어 검색하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등장한 존재이다. 자의로 등산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돌로미티는 언감생심이나 트래킹 코스도 있다는 정보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라며 마음에 담았다. 담아두기만 하기엔 너무 커서 출발 전까지 계속 찾아봤지만.
하지만, 숫자로 짐작하는 기온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이 부족했던 나는 상당 부분을 바다를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었고, 이탈리아 현지에 가서야 나의 바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깨닫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어쩌면 마음의 기울기 때문일 수도) 일정을 틀어 5일 예정되어 있던 섬나라 몰타Malta를 취소하고, 돌로미티와 갑툭튀 밀라노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검색과 예약지옥에 빠졌으니 피곤함은 고만고만이었고, 밀라노는 그저 동선만 생각한 결과물이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돌로미티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손에 꼽을 만한 곳이었다.
넓고 많은 곳 중 어디를 어떻게 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완전히 처음인데 주어진 시간 내 추가 리서치를 하기도, 다른 도시들과 달리 감을 잡기도 어려워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최대 8명의 소규모 투어로 이른 아침 베니스를 출발해 돌로미티 일부를 돌고, 다시 베니스로 돌아오는 하루 일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여름과 겨울 코스가 정해져 있지만,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하고 고도가 높은 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상 상황에 따라 조정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날도 하늘 변화에 따라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케이블카를 탑승해서 올라가는 곳과 차량으로 이동하는 곳이 있는데, 비 예보가 있었던 여행일에는 구름의 흐름을 고려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함께 이동하는 참가자들의 의견이 쉽게 모여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었다.
개별적으로 여행을 한다면 숙소를 잡을 만한 곳으로 고민했던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를 지나가며 만났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인데, 주변 환경을 보면 매우 그럴법하다. 기차에서 옆에 앉은 분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시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담페초...?'라고 얘기했는데, 그분이 고개를 꺄우뚱거리다가 '아~ 코르티나 담페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본인도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갔었는데, 정말 좋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암페초의 코르티나라는 뜻인데, 경상북도 안동에서 경상북도 또는 홍길동의 홍만 얘기한 꼴이었다. 찰떡 같이 알아들은 분에게 감사를.
유명한 고지 중 하나인 트레치메Tre Cime(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인데, 구름에 싸여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든든한 무장을 하고 혼자 또는 2-3명씩 겨울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에는 개 또는 아이들과 함께 오르는 이들도 있어 더 눈길을 끈다. 가이드투어 일행들은 선택에 따라 제트스키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별도 비용), 여행 중 피부와도 같았던 초경량 패딩에 겹겹이, 바지도 두 겹으로 껴입고 갔던 덕에 춥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3월 마지막 주의 이곳은 완벽하게 겨울, 설산이다.
트레치메 2300미터 고도까지 올라가서 눈썰매를 타거나 다시 제트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데, 그 꼭대기에서는 구름 속이라 또는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가 거의 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용기에서 눈썰매를 선택했다. 제트스키를 타고 올라가는 길도 좋았지만, 비명을 지르며 내려오는 눈밭은 스키를 타지 않는 나로서는 눈 위에서 즐길 수 있는 극강의 희열을 주었다. 썰매와 브레이크를 잡는 내 발 끝에서 파스스 부서지는 눈과 적당히 변화를 주며 나타나는 커브와 경사들, 뽀얀 안개에 가려 간간이 보이는 거대한 산들이 추운 이 계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나저나 원래 이곳을 오고 싶었던 이유는 내 발로 하는 트래킹.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서 이름 모를, 자그마하니 예쁜 들꽃들에 반했었는데, 우연히 만난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5월 말에서 6월 초 이곳에 오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을 보면서 트래킹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온 모습을 드러낸 거친 암벽과 초록빛,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은 하얀 눈으로 빛나는 매끄러운 설산과는 완벽하게 다를 게 분명하다. 차 또는 케이블카로 어느 정도 오를 수 있는 곳도 있어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코스가 다양해 등산의 실력자가 아니라도 도전할 수 있다고 한다. 잘 골라서 가야 하겠지만 도전 의지가 뿜뿜 솟는다. 그러고 보니 언제까지 그렇게 푸르고 아기자기한 자연을 즐기며 트래킹을 할 수 있는지는 물어보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