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탈리아 로마
"로마가 좋았나요?" 네에-
"다시 올 예정인가요?" 아마도... 그러길 바래요...
"너무 기쁘네요. 곧 또 봐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로마에 들렀다.
조금은 지친 상태였다. 기간 때문이라기보다는 짐을 싸고 풀고, 그 짐을 들고 이동하는 과정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 이벤트가 은근히 있어 심심찮게 신경 쓸 상황도 많았다. 꽤나 흥미로웠고 지루함이 없는 대신, 상대적으로 여유가 좀 적었다. 게다가 마지막 며칠은 계절 변화 때문인지 느닷없이 찾아온 비염으로 잠을 푹 자지 못해 더욱 피곤했다. 그래서 로마의 마지막 숙소에 들어서며, 안도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이라서인지 여행자 DNA가 가만있질 않는다.
핫하다는 나보나 광장은 광장뿐만 아니라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기꺼이 그들에 섞여 돌아다녔고,
사지도 않을 기념품숍을 기웃거리고,
순교자와 교황의 묘지가 있는 고대 기독교의 지하 통로이자 공동묘지라는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를 다녀오고,
덕분에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아피아 가도의 한 지점에 서 보기도 하고,
지난번 묵었던 숙소 근처 유적지에 가서 오늘은 어떤 길냥이를 볼 수 있을까 숨은 고양이 찾기도 하고,
레드 오렌지와 피스타치오 젤라또에 빠져 젤라테리아를 반복 방문하기도 하고,
점심시간부터 거의 자정까지 영업하는데 지나갈 때마다 몇 십 명은 줄을 서고 있는 파스타 집에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심야 시간이라도 노려 가볼까 고민도 하고,
2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전차 경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Circo Maximo Experience(안타깝게도 유일하게 아쉬운 시간. 로마 유적지에 등장한 VR이라니! 영상으로 구현된 과거 건축물과 주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기기 작동이 다소 원활하지 않고, 아이폰을 장착해 보여주는 영상은 퀄리티 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내가 너무 기대했거나)도 해보고,
탄산수와 포켓 초콜릿을 사기 위해 까르푸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로마를 걷다 보면
길가에서 마주치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유적들, 길 끝에 갑자기 등장하는 유명하다는 관광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누가 봐도 관광객인 사람들과 그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현지인들, 세상의 모든 노랑 컬러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겠다는 듯 밀도 있는 유화 물감을 무심히 발라놓은 것 같은 건물들, 깔끔함과 지저분함이 교묘하게 엉켜 있는 골목들 대부분이 매력적이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내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툭 하고 떨어진 것 같은 느낌.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징과 강점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고, 여행자들에게 꽤나 편리하지 않고, 주의사항으로 소매치기 얘기는 항상 나옴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구와 로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는 선진국인가, 아닌가를 얘기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조상 덕을 많이 본 후손들이라는 생각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이 땅 위에 긴긴 역사를 지나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지니는 것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4월의 로마는 3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 이탈리아 여행의 적기는 4월에 시작한다더니, 현실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은 좋아하지 않고, 찾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여행 중에는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좋다.
사람이 많으면, 나의 선택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라는 사실로 인한 안도감과 함께 그들의 에너지로 덩달아 나의 흥겨움 또한 증폭하는 장점이 있고,
사람이 적으면, 사람들의 발이 아직 닿지 않은 보석 같은 곳에 나의 관심이 미쳤다는 데 대한 만족감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성수기는 그곳의 계절이 주는 매력을 한껏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비수기는 여유로운 가운데 그곳 자체의 분위기와 정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느긋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명상을 하는 것 같은 장점이 있다.
고로, 내가 준비만 된다면 여행은 언제 가도 좋다.
경험의 좋고 나쁨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평가할 수 없고, 그저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할 뿐이다.
로마로 이동하는 날은 마침 부활절이었다. 부활절 휴가로 인해 전 유럽의 차들이 국경을 넘나들어 짧은 여행을 즐긴다며, 로마에 도착하기 전 예약할 것들은 미리 예약을 하라는 조언을 무려 하루 전날 들었다. 한 달 전에 들었어도 부족했을 것을...
바티칸 시티는 예약하는 것도 문제, 예약했다 한들 기다리는 것도 문제, 그도 아니라면 가이드 투어를 통해 패스트 트랙으로 들어가야 한다는데, 그렇게까지 가야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오래전 방문했던 가이드 투어에서 현재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저것을 보았다는 것과 그보다 더 생생한 그때 같이 갔던 사람들뿐이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보다 임팩트가 약했나... 싶지만, 그런 불경함 보다는 그냥 예약하기 어려우니까 패스.
마지막 날 저녁식사 후, 산책 겸 잠시 들러 광장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돌아 나왔다.
빛이 사라지기 직전, 차량 통행은 마무리되고, 사람도 적어 한적한 지금 이곳이 더 탁월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최소한 이번 여행에서는. 판테온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을 먼저 보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로마가 좋았나요?"
네에-
"다시 올 예정인가요?"
아마도... 그러길 바래요...
"너무 기쁘네요. 곧 또 봐요!"
로마 숙소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기시감이 드는 이 대화.
그곳에서 서비스를 주고받은 사람들과 가장 많이 나눈 말인 것 같다.
서비스 제공자는 숙소 또는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들, 서비스 이용자는 물론 우리 또는 나.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반복되다 보니 로마 서비스업 종사자용 매뉴얼, 아니면 자연스럽게 손님과 대화 나누기 가이드의 기초 편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곳에서는 아니었지만,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에서 꽤 많이 들은 질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도 그들의 도시에 대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진심으로 또는 가볍게 묻지만, 대답은 안 들어도 알 수 있다는, 믿는다는 그런 확신.
물론, 그만큼 이탈리아는 너무나 많은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 정도만 조금씩 달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