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취향, 밀라노와 피렌체

이탈리아 대도시, 밀라노-피렌체

by 올디너리페이퍼

밀라노Milano는 처음이었다.

몇몇 나라의 주요 도시들을 찍고 지나가는 첫 유럽 여행에도 이탈리아 밀라노는 포함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이탈리아 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요 도시 중 하나이지만, 밀라노에 대한 수식어들이 개인적으로 선뜻 손이 가는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여행은 취향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1 지망은 아니었지만 결국 몰타를 놓고, 돌로미티와 밀라노를 잡았다. 도착하고 보니 맑은 날이면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알프스 설산의 끝자락이 보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바쁜 대도시의 삶을 살면서 가끔 설산을 마주한다면, 한 해 두 해 시간이 모여 설산의 범위가 달라짐을 눈치챌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모두가 좀 더 경건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후위기 앞에서 초재기를 하며 무언가라도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어 약간, 조금 우울해졌다.


밀라노 대성당 앞에 있는 지하철역 출구에서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며 깜짝 놀랐다.

광장을 채운 많은 사람들 때문에,

드디어 등장한 성당의 너무나 화려하고 정교하고 위풍당당한 모습 때문에.

문부터 첨탑 끝까지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거대한 건물의 모든 부분을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성당을 어디서 보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게다가 하얀 벽이 햇빛을 받아 눈 부시도록 더 하얗게 빛난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내가 와 있구나, 아니면 드디어 여행 성수기가 시작된 것인가.

하루 전날 고민 끝에 입장권을 인터넷 예약했는데, 다행이지 뭔가. 남은 기간 동안 이탈리아 대도시에서의 입장권은 사전 예약이 필수임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이제 여행은 발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한동안 자연이 주인공이고, 사람은 가끔 여백을 장식해 주는 정도의 조용하고, 차분한 소도시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이 낯설었다. 넓은 차선과 박자 맞춰 켜지는 곳곳의 신호등, 빠르게 걷는 사람들, 간간이 등장하는 현대적이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 없는 사각형의 건물들이 이곳이 대도시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시점 이후, 밀집도의 차이가 약간은 있지만 어디든 사람이 적은 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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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이 모두 섬세하면서도 위풍당당한 밀라노 대성당. 건축에만 600여 년이 넘게 걸렸단다


밀라노 대성당을 나오면 바로 오른편에 위치해 있는 쇼핑센터,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지붕이 있어 눈비 오는 날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쇼핑하기 좋을 것 같은 십자가 형태의 길이자 블록은 명품 브랜드 숍으로 채워져 있고 간혹 카페와 젤라또 매장이 눈에 띈다. 쇼핑하다 지치면 양식을 채우십시오. 쇼퍼라기엔 그저 여행자로서 젤라또 하나 사서 먹으며 통로를 뚫고 지나간다.


이 도시에서는 여행자들도 많지만, 확실히 남녀 불문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 그런 이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많이 보인다. 작은 도시들에서는 이곳의 사람들이 어떤 생업에 종사할까 궁금했는데, 밀라노에는 왠지 전형적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달까.



그렇게 새로운 분위기의 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길을 걷다 보면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성벽과 시계탑이 스포르체스코 성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물론 중간에 살짝 지도 커닝. 앞에 있는 분수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뮤지엄도 있고, 잔디밭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카페도 있고... 무던히도 각자만의 활동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목적 없이 대면했기 때문에 그저 나무 아래 그늘에 서서 그리고 커피 한 잔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 잔디밭에서 노는 아이들 구경, 운동하는 사람들 구경,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 가족과 살짝살짝 침입하는 비둘기 구경으로 시간을 한참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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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시간과 해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물 위를 떠나디는 오리들을 보며 멍때리기 딱 좋은 곳, 한참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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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나쳐온 도시들의 기차역을 꼬꼬마 아가 시골 부스레기로 만드는 밀라노 중앙역. 0층에 있는 푸드코트도 구경했지만, 나에겐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곳이다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피렌체Firenze를 대하는 여행자의 자세, 도착 전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볼 예정이었다. 세상 오래된 영화지만,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오모 성당에서 자연스럽게 '냉정과 열정사이'로 연결된다. 사실 질리도록 들었던 음악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과 약간의 얼개만 기억날 뿐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이틀 미루다가, 결국 밀라노에서 비를 핑계로 외출을 패스하고, 넷플릭스 접속.

OMG. 이탈리아에서는 시청이 안된다...... (이날 결국, 비 오는 밀라노에서 K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빠지고 말았다... 아뿔싸)


피렌체 역시 첫 방문이나 마찬가지였다. 20여 년 전에 당일치기로 방문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딱 하나, 두오모 성당을 두 눈으로 봤다는 사실뿐이었으니까.

피렌체는 생각보다 작았고, 또 생각보다 컸다. 주요하게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은 모두 고만고만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모여 있어서 작고, 또 전체 생활권을 보자면 크다. 또한 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곳들이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걸어 다니는 것이 훨씬 빠르고 수월하기 때문에 다시 작아진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외관이 독특해 인상적이고, 의지를 갖고 줄을 서 입장한 성당의 내부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작은 골목들은 완전히 새롭지 않지만, 구성이 다양해 역시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메디치 가의 유산과 우피치 미술관은 엄청난 작품들은 둘째치고 한 가문의 역사와 권력, 세상에 대한 영향 그리고 기여를 생각하면 꽤나 놀랍고 또한 감탄스럽다. 또한 역시나 산책하다 만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과 광장의 플리 마켓은 괜히 반갑고, 같은 이름의 화장품 매장은 공간을 가득 채운 향과 그 화려함이 피렌체 같지 않은데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방문하는지 한국어를 하는 점원이 있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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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유명하고 또 위대하다는 작품들이 수없이 많지만, 이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 그러고 보니 둘 다 수태고지.


하지만,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전시였다. Fallen Angels를 주제로 한 그의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의 규모와 이야기, 소재와 질감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그는 신화나 역사에서 이야기를 가져오고, 나무, 짚, 흙, 납 등의 재료들을 물감과 섞어 다양한 컬러와 질감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전시 공간인 Firenze Palazzo Strozzi의 중정을 위한 작품 Fall of the Angel이 방문자를 맞이하는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 채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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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 of the Angel/ Irradiated Paintings. 40년 동안 그려온 60개의 작품을 사방의 벽과 천장, 바닥의 거대 거울을 통해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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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도 떠나기 전 한 번은 높은 뷰가 필요하다. 조토의 종탑과 미켈란젤로 광장(아니면 산 미니아토 성당) 두 가지 안이 있지만, 사실 선택은 쉬웠다. 예전에 다른 여행지에서 성당 탑에 오르다가 되돌아 나올 수도 없고, 무조건 앞으로, 위로만 전진할 수 있는 계단 지옥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토의 종탑 입구에도 불편함과 폐쇄적인 공간에 대해 사전 경고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은 역시 여행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건물의 붉은 지붕들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도시와 맑지는 않지만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는 아르노 강(전날 비가 꽤 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다리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비가 온 다음날의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시간에 따라 색색의 빛을 반사시킨다.

여행은 시간을 부유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곳에서도 역시 지는 해와 함께 같으나 완전히 똑같을 수 없는 도시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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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는 첫 방문에 도시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피렌체는 첫 방문에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맥락의 이야기) 시간을 들여 볼수록 더욱 매력적인 도시라서, 한 번 잠깐의 방문으로는 피렌체의 진면모를 알 수 없다고. 피렌체를 애정하며 20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분에게 들은 얘긴데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이곳을 제대로 알게 될지 궁금하기는 하다.


참! 산 미니아토 알 몬테에서 보는 피렌체의 전망과 야경이 진수란다. 그 저녁, 피렌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아뿔싸. 택시 기사가(그렇다, 걸어 올라가기 싫어 택시를 탔다) 친절을 베풀며 네가 얘기한 곳이 바로 위에 있지만 여기가 좋다고, 사람들이 다 여기서 도시 전망과 야경을 본다며 미켈란젤로 언덕에 내려주길래 당신 너무 친절하고 엄청 고맙다고 했는데... 에휴, 피렌체를 조금 더 알고 싶어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는 한 칸 더 올라가 진수를 맛봐야겠다.

아니, 거기까지 안 간 게 다행인 건가... 그랬다가 덜컥 사랑에 빠져버리기라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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