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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Apr 24. 2024

이탈리아 사람들의 여름 휴양지, 남동부

폴리냐노 아 마레-알베로벨로-모노폴리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마테라를 중심으로 주변에 다녀올 만한 곳이 있는지 지도를 보며 찍다가 다시 바다에 반한 결과.

그저 서로 다른, 작은 해변을 보고, 어딘가의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는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때니까. 

그렇게 이곳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로마에서 당일치기로 남부투어(라고 하지만 실제는 남서부에 위치)를 하는 아말피와 포지타노는 셀럽과 유럽의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고, 남동부에 위치한 풀리아주의 해변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여름 휴양지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과연 개발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개발이 덜 되고 물가도 낮은 편에 속한다고. 물론 귀에 익은 항구도시도 있지만 실제로 풀리아주는 소박하고 작은 마을들, 에메랄드 빛과 짙푸른 빛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와 각양각색의 해변, 끝없는 올리브나무들... 모든 존재가 햇살 아래 반짝인다. 특별히 물가가 낮다는 판단은 하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건 관광객과 현지인이 찾는 곳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 형편과 취향에 맞게 선택이 가능한 것 같다. 


처음엔 마테라에서의 당일치기를 계획했으나, (일정을 소화하며 보아하니 어째)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숙박일정을 조정해 동부의 한 곳인 폴리냐노 아 마레에 숙소를 잡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보기 드물게 끝없는 웹서핑과 예약 지옥. 여행 중에도 끝나지 않았다.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

넘사벽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암벽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해변 사진으로 홀딱 반했던 곳. 내가 방문했던 계절과 날은 거센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덕분에 해변은 더욱 고즈넉했고,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귀를 꽉 채웠다. 해변이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한껏 들이쳤던 바닷물이 다시 물러날 때에 돌 사이사이를 훑으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너무 예쁘다. 비교를 하자면, 우리나라에서도 몽돌해수욕장에서는 다글다글다그르르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멍 때리고 앉아 먼바다를 보며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다양한 모양의 해안선과 로마와는 다른 컬러의 낮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로 인해 마을 자체가 여유롭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겨울 바다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바람과 물의 격렬한 하모니 
시퍼런 바다, 황무지에도 봄은 오는가,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절로 실감나면서도 그 감각은 절대 상투적이지 않은 장면들  

작은 광장에 도메니코 모듀노Domenico Modugno라는 이탈리아의 유명 가수(이름은 모르는데, 검색해서 들은 그의 음악 '보라레'는 상당히 귀에 친숙한 노래이다)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 뒷 쪽으로 이렇게 멋진 바위와 바다가 펼쳐진다. 바위 틈새에 아주 작은 도마뱀이 숨어있기도 하고. 넋을 잃고 한 발 한 발 다가서면, 바위의 끝과 발 끝이 겹치는 곳에서 바람 따라 부드럽게 그리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바다와 파도를 만나게 된다. 내가 서 있는 땅, 발 끝에서 강한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혼돈의 세상에 나 홀로 안전하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황홀하다. 때문에 계속해서 그 순간이 다시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알베로벨로Alberobello

원뿔 모양 지붕의 트룰리가 마을 전체를 이루고 있어 스머프 마을로 유명한 곳. 옛날에 세금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집, 주거시설이라고 한다. 지붕 가장 꼭대기에 있는 표지석과 같은 돌의 모양이 건축가에 따라 다르다고. 여러 소도시를 찾으면서 무지 설렜던 곳 중 하나였지만 돌아보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는데, 나에게 예쁘고 예쁜 것은 감동이 쉬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곳에서 만난 친절하디 친절한 이탈리아 아저씨와 국적불문 공통의 분위기가 있는 단체 관람 온 학생들, 오고 가는 길에 스치며 마주한 시골길에 하늘 끝에 닿아 있는 것 같이 높은 나무, 넓은 들판에 수없이 많이 심겨 있는 올리브 나무, 드문드문 등장하는 트룰리 등 주변 환경이 훨씬 더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아 있다. 사진이 왜 없을까, 아쉬운 마음뿐. 

트룰리를 직접 체험하는 숙박시설, 예전 생활 환경을 보여주는 박물관, 기념품숍, 카페와 음식점들이 있다



모노폴리Monopoli-Calette di Torre Cintola 

채석장이었던 곳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에게 익숙한 '해수욕장'은 아니라는 것. 자고로 해수욕장이라 함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도로 가에 아무런 표시도 없이 홀로 자리 잡고 있고, 해변이라 함은 성질이 무엇이든 간에 최소한의 땅과 바다가 만나는 걸 상상하는데, 여기는 그런 해변과도 다르다. 

유튜브에서 본 기억이 있어 이름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지도를 엄청 뒤졌다. 전체를 볼 때도 암벽과 바다가 이루는 풍경이 흔치 않거니와 부분적으로 볼 때 또한 크고 작은 개인 수영장의 집합체와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몇몇 검색한 정보에 의하면,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계절에 가족 단위, 일행 단위로 한 칸씩 차지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노천 해수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로테 디 카스텔라나Grotte di Castellana


카스텔라나에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란다. 

장장 3.3km 남짓 이어져 있는 데다, 가장 깊은 곳은 약 120미터 아래까지 내려가는 동굴.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에 따라 좁은 통로로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곳인데 길이 위험하다며 처음에 입장하는 홀과 끝내는 부분 잠깐을 제외하고는 내부에서 사진을 못 찍게 했다.(가이드 왈, 본인 마음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찍는 걸 허용하는 가이드도 있나) 역시나 석회암 베이스의 동굴로 개인의 안전과 동굴의 보호를 위해 내부 벽을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동굴들이 있지만 이 동굴은 암석과 벽의 수없이 다양한 컬러와 결, 규모, 종유석의 모양과 크기, 무늬 등 모든 면에서 정말 압도적이었다. 

짧은 코스와 긴 코스 중 선택할 수 있고, 긴 코스는 길기도 길 뿐더러 지도상 공간이 아주 협소해지는 구간이 있기도 해서 스킵했는데, 오히려 투어를 한 번 하고 나니 긴 코스에서는 과연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곳저곳의 짤막한 방문을 끝내고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의 마지막 날, 목적지 없이 골목 사이사이를 걷는다. 

아니다. 걷지 않은 곳을 걷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낮은 건물과 좁은 골목들, 그 사이를 오가는 차와 사람들, 골목의 끝마다 마주치는 자연과 인공이 만들어내는 절경들. 저 멀리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사라지는 해와 어두워지는 주변을 감각한다. 

저녁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며칠 동안 차분했던 이 동네에 무언가 움찔움찔 낌새가 이상하다. 아침부터 길을 막고 장작을 쌓더니 길 한가운데 2미터 조금 안 되는 커다란 나무더미가 두 개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주변에 다소 조악한 무대에 스피커까지... 체류하는 동안 몇 번 갔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물었더니 매년 진행되는 이곳의 전통 페스티벌이 오늘 밤에 있다고 한다. 바쁜 와중에 무슨 의미를 갖는 페스티벌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용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행사 장소 바로 앞이었던지라 그 짧은 시간 단체 손님은 물론이고 몰아치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진다. 음악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등장하더니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 드디어 점화! 그러고 보니 이 동네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로 골목과 광장에 사람이 꽉 찼다. 커다란 불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나무를 태우고, 바람에 불꽃이 날아다니는데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불 주변을 둘러싸고 돌고, 사람들은 마시며, 웃으며 즐긴다. 

막연한 아쉬움과 조금은 우울했던 이 밤이, 다행히 흥겹게 지나간다. 

마무리가 슬프지 않다. 

어떻게 저런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까/ 왼쪽 암벽 중간에 불이 켜진 곳이 동굴 식당으로 유명한 곳, 호텔에서 운영을 한다
아침에는 해가 뜨는 것을, 저녁에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곳. 아침에 와보지는 않았지만.
12시 넘어까지 진행되는 이 축제는 흥겨웠던 음악소리에 취해있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한 블록만 떨어져도 소리가 잦아든다. 그래서 조용한 밤이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다음을 위해 짐을 싸며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입고 작별하려 가져갔던, 오래되어 끈이 다 삭아버린 수영복을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3월의 이탈리아는 낮의 햇살은 따뜻하지만, 계절은 겨울이었다. 

여행을 끝낸 4월 초도 마찬가지였고. 여름 바다의 문턱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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